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등록 : 2017.05.08 15:40
수정 : 2017.05.08 15:40

[김월회 칼럼] 선거와 빈 배[虛舟] 만들기

등록 : 2017.05.08 15:40
수정 : 2017.05.08 15:40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는 ‘지도자’가 아니라 ‘대리자’를 뽑는 정치행위다. 내가 따르고 복종할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나를 대리하여 나의 이로움을 증진시켜주고 공동체와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줄 이를 뽑는 것이다. 대리자가 좋은 지도자가 갖춰야 할 품성과 역량, 영혼을 갖췄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를 지도자로 섬기기 위해 투표로 뽑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대리자를 뽑는다면 그건 비유컨대 두둑한 성과급이다. 기본급은 어디까지나 나의, 또 우리의 이해관계를 온전히 대리해줄 정신과 능력을 지닌 이를 뽑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선거에 우리가 거는 평균치의 기대다.

다만 작금의 현실에선 거의 대부분 그런 기대를 회수하지 못했다. 19세기에 이미 나왔던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회의, 가령 “지금까지의 민주주의는 특정집단만 대표하는, 그저 다수파 인민에 의한 정부에 지나지 않았다”(존 스튜어트 밀)와 같은 일갈은 21세기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대의민주주의의 현실이 민주의의의 원 의도를 왜곡해 “평등하게 대표되는 전체 인민에 의한 전체 인민의 정부”는 구현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민주(民主) 곧 ‘인민이 주인’이기에 투표로 대리자를 뽑았는데 그들이 ‘인민의 주인’ 노릇을 하는 이율배반의 반복. 이는 민주가 중국에선 전근대기 내내 그런 뜻으로 쓰였다는 사실 따위론 정당화되지 못한다.

그래서 선거는 대리자로서 부적격인 자를 ‘뽑지 않는’ 정치행위기도 하다. 이때 적격 여부를 따지는 기준의 하나는 자기를 비워낼 줄 아는 역량의 구비다. 자신을 뽑아준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선 자기 이해관계를 비워낼 줄 알아야 하기에 그렇다. 달리 말해 대리자 자신은 ‘빈 배’, 곧 허주(虛舟)가 돼야 한다. 여론의 바다를 잽싸게 가로지르며 자기 이익이나 챙기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서로 다른 목소리로 그득하기 마련인 사회, 배 자체에 균열을 가하는 목소리가 아닌 한 실을 수 있는 목소리를 최대치로 담아내기 위해 그러라는 뜻이다.

더구나 대리자는 뽑아두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대리자 역할에만 충실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론적으로, 윤리적으로는 당연히 그래야 마땅하겠지만 작금의 현실은 가만 놔두었을 때 그리 되는 일이 극히 적었음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그래서 선거는 단발성 정치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다음 선거가 있을 때까지 지속되는 정치행위의 시작점이다. 투표로 우리는 좋은 지도자가 아니라 최악 또는 차악이 아닌 대리자를 뽑기 때문이다. 그들이 유용하고 합당한 빈 배로 작동되는지는 투표가 아니라 그 이후에 어떤 활동을 지속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기에 그렇다.

대통령 임기 5년, 곧 43,800시간 동안 주인으로 존재하느냐, 객체 또는 노예로 존재하느냐는 이에 따라 결정된다. 투표하러 오가고 기다리다 기표하여 투표함에 넣는 그 한 시간도 채 안 될 시간에만 주인 노릇하고 나머지는 대리자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게 되면, 선거 때 투표장에서만 민주주의의 원 의도가 실현되고 평소에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그러한 역사를 우리는 반복하여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시민이 뽑은 대리자를 빈 배로 만들어가는 활동이 일상적으로 지속돼야 하는 까닭이다. 뽑힌 이는 단지 대리자일 뿐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자신의 삶이 표준이고 자기 승리가 국민의 승리며 국가의 미래라고 되뇌는 이들을 다만 대리자이게 해야만 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들을 우리 곧 시민의 지도자로 봐서는 안 된다. 뽑힌 다음에 좋은 지도자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기대도 금물이다. 선거로는 결코 좋은 지도자 여부를 가릴 수 없기에 그렇다. 아니, 기본을 갖춘 지도자인지 그 여부조차 선거는 가려내지 못한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라는 국가장치는 애초부터 출마한 이가 어떤 지도자인지를 검증하는 장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여 우리는 집요하고도 치열하게 선출된 이를 대리자로 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를 연신 빈 배로 만들어가야 한다. 옛적 이사는 타향서 온 이들을 추방하려 한 진시황에게 “태산은 작은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거산이 될 수 있었다”고 간했다. 진시황이 쫓아내려 한 이들은 평소 자신을 비워내 주던 이들이었다. 진시황은 이사의 간언을 들어, 다시 말해 자기 욕망 대신 타향서 온 이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자신에 담음으로써 대통일이란 당대의 시대과제를 실현할 수 있었다.

대리자를 빈 배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가능한 최대치로 비워낸 자리는 시민의 흙으로 채워가야 한다. 그래야 지금 우리 사회의 시대과제, 곧 평화롭고 풍요로우며 공정하기에 미래가 예측 가능한 삶과 사회를 구현할 수 있게 된다. 투표는 이렇듯 대리자를 뽑아 그를 가능한 최대치로 빈 배로 만들고 거기에 시민의 흙을 꾸준히 담아가는 활동의 시작이다. 시민이 떠 담는 흙, 그러니까 목소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배였다면 바로 가라앉게 놔두면 된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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