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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제는 말할 수 있다-황금알을 낳는 거위

입력
2017.12.11 12:4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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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인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좀 달리 읽어보았다.

숲 속에서 우연히 그 거위를 발견한 건 6개월 전. 농부 부부는 다 죽어가는 녀석을 데리고 와서 잘 먹이고 보살폈다. 며칠 뒤 녀석이 알을 낳았는데, 세상에나 황금알이었다. 색깔만 노란색인가 싶었는데 시내에 가서 확인해 봤더니 99% 순금이란다.

없는 살림에 열심히 착하게 살았다고 하늘이 선물이라도 내리신 걸까? 거위는 거르지 않고 매일 1개씩 황금알을 낳았다. 농부 부부는 그 마을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부부는 혹시라도 누가 거위를 훔쳐갈까 봐 걱정됐다. 취업준비를 위해 학원 다니던 아들과 함께 3교대로 거위를 감시했다. 거위가 매일 낳은 황금알은 시내 은행 금고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

아들이 학원을 그만둔 것은 거위를 들여온 지 석 달쯤 됐을 때였다. 한시라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던 녀석인데. 누군가와 술을 먹고 취해서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다.

농부는 아들에게 물었다. “학원은 왜 그만뒀니?” “아빠. 어차피 요즘은 취직해 봐야 오래 다니지도 못해요. 작은 가게를 하나 열어서 사업을 하는 게 빨라요. 제 선배가 멋진 동업제안을 했어요. 한 4억 원 정도 투자하면 아주 수익성 좋은 아이템이 있대요.” “그런 큰돈이 어디에 있다고?” “에이, 아빠도 참. 앞으로 한 1년만 저 거위가 황금알을 낳아주면 10억 원은 거뜬히 모을 수 있어요. 우린 저 거위만 잘 지키면 돼요.”

농부는 아들을 혼냈다. 아들이 대들었다. “아빠도 요즘 농사일 거의 안 하시잖아요? 농기구들에 거미줄 친 거 안보이세요? 솔직히 아빠도 저 거위를 의식하고 계신 거잖아요? 우린 이제 다른 프레임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구요.”

반박하기 어려웠다. 농부는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거위는 질병에 강해서 수명이 보통 40~50년이었다. 잘 관리하면 최소한 20년 동안은 황금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들은 이제 완전히 예전과는 달라졌다. 뭔가 헛된 꿈을 꾸며 다니는 것 같았다. 농부 본인도 이제 농사일이 예전 같지가 않다. 주위에서는 좋은 투자처를 소개해 주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 밤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집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거위를 노리는 것 같았다. 보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남편 : “나라고 아깝지 않겠소? 하지만 저 거위가 이렇게 우리를 힘들게 할 줄 몰랐어. 영호도 은행에 있는 황금알 세는 데 정신이 팔려 있어.”

부인 : “맞아요. 전 모든 이웃들이 도둑처럼 보여요. 그리고 저 거위가 갑자기 어느 날부터 황금알을 안 낳으면 어떻게 해요? 전 매일 밤 그런 악몽을 꿔요.”

남편 : “우리가 저 거위 배를 가르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부인 : “뭐라고 하든지요. 배를 갈라 한꺼번에 더 많은 황금알을 얻으려고 한다고 그럴 수도 있겠죠.”

남편 : “그래, 차라리 그렇게 핑계를 대자구. 내가 어리석은 사람 되는 거지 뭐. 남들 말은 무섭지 않아. 여보.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자신 있소?”

부인 : “... 쉽진 않겠지만 그렇게 해야죠. 지금까지 모은 황금으로는 농사를 더 잘 지을 수 있는 기계를 두 대 샀으면 해요. 그리고 나머지는 정말 어려울 때를 대비해서 저축해 두고요.”

남편 : “영호가 많이 실망할 테지. 하지만 녀석도 언젠가는 알아줄 거야. 이게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걸.”

농부는 뒷방에 특별히 모셔진 거위에게 다가갔다. 거위는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체념하는 눈빛으로 농부를 쳐다봤다.

‘분에 넘치는 행운이었다. 이 정도만 받을게. 고맙다. 잘 가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용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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