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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 “김영란법, 내수 위축ㆍ생존권 위협”… 일각선 “피해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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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 “김영란법, 내수 위축ㆍ생존권 위협”… 일각선 “피해 과장”

입력
2016.07.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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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 11조 손실” 볼멘소리

“선물세트 모두 수입식품 쓸 판

3만원짜리 횟집이 어디 있나

골프장 내장객 줄어들 것 뻔해”

“긍정 효과” 주장도 나와

“공무원은 이미 강령으로 규제

일시적 소비 부진만 해결되면

기업 경쟁력 향상 등에 도움”

‘김영란법’ 시행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소상공인협회와 한국외식업중앙회, 전국한우협회 등의 소속 관계자들이 지난 5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김영란법’ 개정 촉구 집회를 갖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제공
‘김영란법’ 시행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소상공인협회와 한국외식업중앙회, 전국한우협회 등의 소속 관계자들이 지난 5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김영란법’ 개정 촉구 집회를 갖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제공

A백화점 식품사업부 구매 담당인 김모(34) 과장은 최근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9월 시행 예정인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 때문에 이미 끝냈어야 할 하반기 판매 제품 계획안을 아직 마무리 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영란법에서 정한 5만원 이하로 선물세트를 구성하는 것은 답이 없는 상황이다. 한우농가를 비롯 거래처 불만은 하늘을 찌른다. 김 과장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닌 김영란법 때문에 거래처로부터 ‘여러 사람 죽어나가는 꼴을 봐야 되겠느냐’란 심한 말까지 들으며 납품단가 씨름을 해야 하는 상황에 자괴감마저 든다”고 푸념했다.

김영란법 시행이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며 곳곳에서 흘러 나오는 곡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내수 위축과 소상공인 생존권 위협 등 각종 부작용에 대한 볼멘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장 큰 직격탄이 우려되는 곳은 백화점과 호텔, 요식업 등을 중심으로 한 유통업계다. 당장 백화점 선물세트가 문제다. B백화점 관계자는 “5만원 이하 가격으로는 토종 한우세트는 도저히 맞출 수 없기 때문에 냉동수입육으로 대체해야 할 판”이라며 “굴비나 갈치를 포함한 수산 선물세트 역시 수입산으로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토종 농수축산물은 설 자리를 잃고 외국산이 그 공백을 차지할 것이란 설명이다.

호텔업계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긴 마찬가지이다. 서울 시내 C호텔 최모(38) 매니저는 “지금 호텔에 3만원 이하 식사 단품이 얼마나 있느냐”며 “호텔을 숙박만 해서 운영할 수도 없는데, 참 답답한 노릇”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영란법을 피해갈 편법을 논의하는 곳도 늘고 있다. D호텔 관계자는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컨퍼런스 같은 행사를 호텔에 유치, 2명이 먹은 식대 계산서에 5명이 먹은 것처럼 부풀려서 손님 확보에 활용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꼼수 마케팅이 공공연히 회의 안건으로 올라오는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지방에서도 김영란법에 대한 걱정은 크다. 대구에서 21년간 횟집을 운영 중인 김모(61) 사장은 “김영란법에서 상한액으로 정한 3만원을 갖고 일반 횟집이나 한정식집에 오는 사람은 없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김영란법은 시행돼선 안 되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골프장도 위기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 관계자는 “아직 시행이 되질 않아 피부로 느낄 순 없지만 일단 시행되면 내장객 급감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식당은 단가를 낮춰서 대응할 수 있지만 골프장은 그럴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실력행사에 나서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에서 한국외식업중앙회와 소상공인연합회, 한국농축산연합회 등 10여개 단체 소상공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간담회는 김영란법에 대한 성토장이 됐다. 민상헌 한국외식업중앙회 서울시협의회장은 “법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경기불황으로 자영업자들의 몰락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행은 맞지 않다”며 “김영란법에서 정하는 식사나 선물 가격 상한액은 공직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결국 일반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내수 위축이 심화할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김영란법으로 야기될 경제적 손실 규모는 연간 11조5,6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음식업이 8조4,900억원으로 가장 큰 매출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됐고 선물 관련 산업(1조9,700억원)과 골프장(1조1,000억원)이 그 뒤를 이었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미래성장동력실장은 “소비침체에 따른 간접적 효과는 계산에서 제외된 만큼 실제 손실액은 더 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해가 너무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는 반박도 나온다.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인 김영란법 적용 대상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무원은 이미 공무원행동강령을 통해 3만원이 넘는 식사와 5만원 이상의 경조사비 수령이 금지돼 있다. 기업의 접대비 감소는 기업의 전체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긍정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김영란법의 도입 취지는 이해한다면서도 부정적 부분만 너무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며 “일시적인 소비 부진이나 투자 위축과 같은 단기적인 문제만 해결 되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는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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