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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 중] 반이민 정서 득세로 기회 잡은 우파, 반얀샤 정서 돌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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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 중] 반이민 정서 득세로 기회 잡은 우파, 반얀샤 정서 돌파할 수 있을까

입력
2018.05.31 15: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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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로베니아 체라르 총리 조기 사퇴… 3일 총선

난민 등 이민자 유럽 입성 길목

“이민 엄격해야” 목소리 높아져

헝가리 ‘오르반 모델’ 영향력 확대

# 얀샤 전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

1당 유력하지만 연정 난항 가능성

금융위기ㆍ부패 전력도 발목 잡아

미로 체라르 총리의 지난 3월 조기 사퇴 선언으로 곧 치러질 총선(6월3일)을 앞둔 슬로베니아에 반(反)이민 바람이 불고 있다. 두 차례 슬로베니아 총리를 역임한 야네즈 얀샤(60)가 2015년부터 ‘발칸 루트’로 몰려드는 난민에 시달린 슬로베니아의 반 이민 정서를 이용해 입지를 강화하면서, 그가 이끄는 보수 정당 슬로베니아민주당(SDS)이 총선에서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선거를 치르는 슬로베니아 총선의 특성상 다양한 정당이 난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정권의 향방은 연정 협상에 걸려 있다.

‘발칸 루트’ 여파 직격탄

지난 5월11일, 자국에서 집권 4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슬로베니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야네즈 얀샤와 그가 이끄는 민주당의 선거 유세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오르반 총리는 유세장에서 “유럽이 대규모 인구 이동과 이민을 수용한다면, 유럽 대륙 자체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주의하지 않으면 나라들을 잃게 된다”고 역설했다. 야네즈 얀샤와 오르반 빅토르의 공통점은 우파 대중주의자로, ‘반 이민’ 수사를 내세운다는 것이다. 오르반 총리의 지지에 힘을 얻은 얀샤는 이날 연설에서 “퇴락한 좌파가 전혀 다른 문명권에서 온 이민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우린 그런 짓을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슬로베니아는 오스트리아ㆍ헝가리 등과 함께 터키와 그리스를 거쳐 서유럽으로 향하는 중동과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발칸 루트’ 길목에 있는 국가들 중 하나였다. 2015년 이민자 대거 유입 사태 이후, 2016년 터키와 유럽연합(EU)의 난민 제한 합의로 발칸 루트를 타는 이민자 숫자는 급감했지만, 올해 들어 그 수가 다시 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슬로베니아로 유입된 이민자는 1,22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22명에 비해 4배 늘었다. 다시 이민자 비판 여론이 고개를 들면서 민주당과 새 슬로베니아 기독민주당(NSi) 등 우파 정당들이 수혜를 보고 있다.

물론 “이민에 엄격해야 한다”는 태도는 슬로베니아에선 우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미로 체라르 현 총리도 ‘비인도적’ 조치만 취하지 않았을 뿐 난민을 무조건 수용하지는 않았다. 2016년 초 슬로베니아는 크로아티아와의 국경에 가시철선 울타리를 세우고 경찰을 동원해 이민자들을 통제했다. EU가 유럽 각국에 부과하려 하는 ‘난민 쿼터제’에도 집권당을 포함한 슬로베니아 정치권 대부분이 반대 입장이다. 난민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정파는 군소정당인 좌파당 정도다.

국민 여론 역시 반 이민 정책을 지지한다. 수도 류블랴나에 거주하는 나타샤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슬로베니아는 이민자를 강제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라며 “가난한 우리 국민들을 먼저 돌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직 표를 어디에 던질지 고민 중이지만 아마도 민주당을 택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EU가 슬로베니아에 잠정 배정한 난민 수는 567명이다.

부패 연루ㆍ대외 개입 논란에… “얀샤는 안돼”

하지만 민주당이 제1당이 되더라도 집권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두 차례 총리로 집권하면서 형성된 ‘반 얀샤’ 정서도 강력하기 때문이다. 진보 정당들은 앞다퉈 자신들이 얀샤의 집권을 막을 적임자라고 자처하고 나섰고 중도 정당들도 얀샤의 ‘극단적’ 태도에 경계심을 드러내며 그가 이끄는 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여론조사 3위 사회민주당(SD) 대표 데얀 지단은 민주당이 “지나치게 극단적”이라고 주장했고 중도 현대중앙당(SMC)을 이끄는 미로 체라르 현 총리도 “우리는 자유로운 사고를 지지하는 정당과 연대할 것”이라며 “위험한 대중주의를 내세우고 사람들을 위협하는 극단적인 태도는 지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역시 중도 성향으로 2012년 얀샤 내각에 참여해 외교장관을 역임한 연금민주당(DeSUS)의 카를 에르야베츠도 얀샤와의 연정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나마 여론조사 2위 ‘마르얀 샤레츠 정당명부’의 대표인 마르얀 샤레츠가 모든 정당에 연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보수세력만이 통합하는 연정에는 부정적이다.

언론도 민주당의 부상에 우호적이지 않다. 이들은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얀샤의 긴밀한 관계를 우려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슬로베니아 일간지 드네브니크와 베체르는 29일 헝가리 정부가 민주당과 연결된 기업들에 최소 80만유로를 쏟아 부었다는 보도를 내놓으며 오르반 정부가 사실상 슬로베니아 선거에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당은 의혹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얀샤가 두 차례 총리 집권 시절 벌였던 실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비록 반이민 노선을 타고 있기는 하지만, 얀샤는 EU 회의주의자가 아니다. 그의 총리 임기가 시작된 2004년 슬로베니아는 EU 가입으로 인한 경제성장 수혜를 봤고, 2007년에는 유로존에 가입했으며 2008년에는 유럽이사회 의장까지 지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유럽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슬로베니아도 덩달이 위기를 맞자 얀샤는 총선에서 패했다. 2012년 다시 집권했지만, 2013년 슬로베니아 역사상 최대 스캔들 중 하나인 ‘파트리아 스캔들’에 연루되며 총리직을 잃었다. 핀란드산 파트리아 장갑차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200만유로를 착복했다는 판결을 받고 6개월간 실형을 살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지지자들은 오히려 표심을 결집하는 모습이다. 이들은 여러 의혹을 “과거 공산당 엘리트들의 모함”이자 정치 공작으로 치부하고 있다. 슬로베니아 정치운영연구소의 알렘 마크수티 연구원은 “슬로베니아 정치권은 좌파당을 제외하고는 정책 방향에 실질적 차이가 없다”라며 “경쟁자들 간의 사적 적개심이 투표 결과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동부 유럽에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오르반주의’의 영향력도 무시하기 어렵다. 스르잔 츠비이치 열린사회유럽정책재단 수석분석가는 폴리티코EU 기고문을 통해 “발칸 국가들은 공산주의 시대의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으며 발전 수준도 불안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또 오르반 총리가 내놓고 폴란드의 법과정의당(PiS) 정권이 따라가고 있는 반자유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 청사진에 발칸 국가들도 동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슬로베니아 연금민주당 당수 에르야베츠도 이번 총선을 계기로 “우파 정당들이 원하는 ‘헝가리 모델 시나리오’가 진행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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