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등록 : 2018.05.07 04:40
수정 : 2018.05.07 11:57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일제에 맞선 詩, 민족적 양심ㆍ실존적 성찰의 등불 되다

<11>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록 : 2018.05.07 04:40
수정 : 2018.05.07 11:57

사후 남긴 단 한권의 시집

양심ㆍ자유ㆍ저항 등 실존적 고뇌

일제 강점기 후반 야만의 시대

더없이 드높았던 이상을 추구

윤동주는 양심의 수난자

강한 자기희생ㆍ굳은 결의 무장

사유와 실천, 삶과 예술이 일치

시 못지않게 깊은 감동 남긴 삶

닫힌 텍스트가 아닌 열린 세계

‘밤이 어두워도 씨앗 뿌려라’처럼

망각해선 안될 기억을 소환하고

미래 준비하는 ‘삶의 용기’ 전달

일본 교토 우지강에서 열린 윤동주(앞줄 왼쪽 두 번째) 송별회 사진. 윤동주의 마지막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별 헤는 밤 윤동주, 종두 지석영, 33인 손병희, 만세만세 유관순, 도산 안창호, 어린이날 방정환 (...) 날자꾸나 이상, 황소 그림 중섭. 역사는 흐른다.” 딸아이가 어렸을 때 부르곤 했던 동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마지막 구절이다. 20세기 전반의 결코 잊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오늘 다루려는 이는 맨 앞에 나오는 시인 윤동주다.

지난 100년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광복,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로 이어졌다. 일제 강점기의 역사는 일본 제국주의 지배와 이에 맞선 민족해방 투쟁의 역사다. 이 역사를 배우는 방식의 하나는 그 한가운데를 걸어갔던 인물들에 대한 기억을 통해서다. 일제의 식민 지배가 더욱 악랄해진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 전반은 시대의 어둠이 가장 깊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던 사람이 바로 윤동주였다(‘쉽게 씌어진 시’).

어떤 이는 윤동주의 시가 뛰어난 게 사실이더라도 우리 100년의 지성사에서 크게 다룰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윤동주가 남긴 것은 그가 죽은 지 3년 후인 1948년에 출간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뿐이었다.

이러한 반문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성은 지식을 넘어선다. 지성에 중요한 것은 정신이다. 정신의 다른 이름은 마음의 태도다. 우리가 율곡과 다산을 지성으로 기리는 까닭은 조선 중쇠기와 쇠퇴기라는 시대에 맞서 개혁의 방법과 마음의 태도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윤동주는 야만의 시대에 맞서 민족적 양심과 실존적 고뇌라는 마음의 등불을 밝혔다. 더없이 드높았던 이상을 추구한 그의 마음이 존재해 있었기에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 전반 우리 지성사는 황량하지 않았다.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인

2008년 한국방송공사(KBS)는 한국 현대시 탄생 100주년 기념 특집 프로그램 ‘시인 만세’에서 국민 애송시를 조사한 바 있다.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는 ‘서시’와 ‘별 헤는 밤’을 쓴 윤동주가 꼽혔다. ‘진달래꽃’과 ‘초혼’의 시인 김소월은 2위를 차지했다. 국문학자 김응교는 전문가보다 시민들이 윤동주를 더 좋아한다고 분석했다.

1941년 윤동주가 자필로 써서 만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표지. 가운데를 접어서 오른쪽 절반이 앞표지, 왼쪽 절반이 뒷표지가 되도록 했다. 앞표지에 '病院(병원)’이라 썼다 지운 흔적이 있다. 원래 시집 제목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또 작가 이름을 童舟(동주)라 쓴 게 눈에 띈다. 정병욱에게 전해진 이 원고 뭉치가 해방 뒤 빛을 보면서 ‘시인 윤동주’는 부활했다.

우리 국민들이 윤동주 시를 특별히 사랑하는 까닭은 뭘까.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교과서의 힘이다. 우리가 시를 처음 접하는 것은 주로 교과서를 통해서다. 김소월, 한용운, 정지용, 이육사와 함께 윤동주는 지난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소개돼 있다. 윤동주의 시는 우리 현대시 정전(正傳)의 반열에 올라 있는 셈이다.

둘째, 작품의 탁월성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필사본을 간직해 윤동주 시를 만날 수 있게 한 연희전문학교 후배 국문학자 정병욱은 말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하던 동주의 시혼은 (...) 조국과 자유를 밤새워 지키는 ‘별’을 노래하였다. (...)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기를 각오한 그는,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날에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를 남기고 ‘진정한 고향’을 찾아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고 했다.”

윤동주 시의 해석은 열려 있다. 민족적 양심과 저항, 실존적 고뇌와 성찰, 자연의 아름다움과 고향에의 그리움은 그가 다뤘던 주제들이다.

예를 들어,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시와 / 별 하나에 어머니 (...)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 내 이름자를 써보고, /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라는 구절(‘별 헤는 밤’)을 읽었을 때 느끼는 그리움과 공감의 자리는 우리 한국인이 갖고 있는 정서와 마음의 고향일 것이다.

셋째, 삶의 고결성이다. 윤동주의 삶에 대해 작가 송우혜는 ‘윤동주 평전’을 발표한 바 있다. KBS 박진범ㆍ박병길 PD는 다큐멘터리 ‘불멸의 청년 윤동주’를, 이준익 감독은 영화 ‘동주’를 만들었다. 1917년 북간도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평양으로, 서울로, 그리고 도쿄와 교토로 공부하러 갔다. 1943년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1944년 독립운동 죄목으로 수감됐다. 광복을 앞둔 6개월 전인 1945년 2월 16일, 오랜 벗 송몽규와 함께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안타깝게도 절명했다.

1941년 18편의 시를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을 만들면서 윤동주가 그 앞에다 새로 써서 붙인 시. 원래는 제목이 없지만, 지금은 '서시'라는 작품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원고 끝에 시집을 묶은 뒤 새 시를 써 붙인 '1941년 11월 20일'이란 날짜가 선명하다.

이러한 윤동주의 삶은 그의 시 못지않은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영문학자 김우창이 지적했듯, 윤동주는 ‘양심의 수난자’다. 그가 남긴 시에서 읽을 수 있는 민족적·종교적·실존적 양심은 그의 삶을 이끌어간 힘이자 가치였다. 그의 삶은 시대를 증거했고 그 시대를 넘어서려 했다. 사유와 실천, 삶과 예술이 정확히 일치했던 이가 바로 윤동주였다.

열린 텍스트로서의 윤동주 시

윤동주의 시를 최초로 평가한 이는 시인 정지용이다.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고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해 본 적도 없이! (...)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초판 서문(1948)에서 정지용이 한 말이다.

“윤동주는 이육사와 함께 식민지 후기의 저항시를 대표한다.” 국문학자 김윤식과 문학평론가 김현이 ‘한국문학사’(1973)에서 평가한 구절이다. 이들에 따르면, 윤동주의 강한 자기희생과 굳은 결의의 배경에는 선한 것이 결국 이긴다는 기독교적 확신이 놓여 있었다. 이러한 윤동주의 시 세계를 김윤식과 김현은 ‘순결한 젊음’이라 불렀다.

해방 뒤인 1948년 정음사에서 정식으로 출간된 윤동주의 시집. 한국일보 자료사진

윤동주의 인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초판본 디자인을 고스란히 살려서 곧 발간될 예정인 윤동주 시집.

2016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 포스터. 윤동주는 여전히 매력적인 시인이다.

윤동주의 정체성은 저항 시인이자 민족 시인, 그리고 기독교 시인이다. 동시에 양심의 시인이자 자유의 시인, 그리고 성찰의 시인이다. 더불어 그는 우리 모국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하는 시인이자, 우리 민족의 삶의 영토가 멀리 북간도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새삼 돌아보게 하는 시인이다.

윤동주의 시는 닫힌 텍스트가 아니라 열린 세계다. 앞서 나는 지성에 내재된 마음의 태도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무시무시한 고독에 맞선 시인이라는 운명의 자각, 순결한 젊음, 양심의 수난 등은 윤동주가 가졌던 마음의 태도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면서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서시’)는 독백과 결의는 윤동주가 품었던 마음의 태도를 생생히 웅변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억의 미래

이 기획의 이름은 ‘100년에서 100년으로’다. 지나간 100년이 과거의 역사라면, 다가올 100년은 미래의 역사다. 우리가 지난 역사를 돌아보는 까닭은 과거에 대한 탐구가 미래 전망의 출발점을 제공하기 때문일 터다.

릿교 대학 시절 윤동주(뒷줄 오른쪽). 송몽규(앞줄 가운데)도 보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렇다면 역사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억일 것이다. 기억이란 의식 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경험과 사유다. 기억은 실존적 기억과 집합적 기억으로 나눠진다. 실존적 기억은 개인의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사랑과 미움의 기억, 성공과 좌절의 기억, 고독과 연대의 기억은 현재의 삶을 성찰하게 하고 미래의 삶에 용기를 준다.

집합적 기억은 민족 또는 국민이라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기억이다. 역사학자 육영수는 역사란 기억과 망각 사이의 투쟁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망각해선 안될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승하는 것은 지식인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다. 실존적 기억처럼, 집합적 기억은 우리라는 공동체를 더 나은 삶의 미래로 고양시킨다. 기억의 미래가 중요한 까닭이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왓작 떠라.”(‘눈 감고 간다’ 전문)

딸아이가 어렸을 적 읽어준 윤동주 시다. 윤동주라는 이름과 밤이 어두워도 씨앗을 뿌리라는 그의 맑고 굳은 정신을 딸아이가 오랫동안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말처럼 역사가 삶의 스승이라면, 기억은 지나간 삶의 증거다. 그리고 다가올 삶의 용기다. 딸아이가 자신의 아이에게, 그 아이가 다시 자신의 아이에게 윤동주 삶과 시의 기억을 전달하길, 그리하여 삶의 용기를 갖게 되길 바라는 작은 소망을 여기에 적어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장일순의 ‘나락 한 알 속의 우주’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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