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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리더] "의류에 AI 접목... 구글ㆍ아마존도 라이벌"

입력
2017.10.14 10: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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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 유니클로 홈페이지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 유니클로 홈페이지

“의류 소매업계 종사자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른 점은 기회를 보는 시각이다. 대개는 한정된 의류 시장에서 경쟁자들과 어떻게 뺏고 빼앗기느냐에만 매달리며, 의류와 대적할 수 있는 상품은 의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좁은 시장 안에서 서로의 밥그릇을 빼앗으려고만 한다. 하지만 나는 휴대폰을 의류의 경쟁자로 본다. 휴대폰보다 더 매력적이고 사고 싶어지는 옷은 어떤 상품일지 생각한다. 시장을 폭넓게 보기 때문에 차이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일본 SPA(자가상표부착 유통방식ㆍ의류 기획 디자인부터 생산 제조 유통 판매까지 전 과정을 한 회사가 맡는 사업 방식) 브랜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柳井正ㆍ68) 회장 겸 사장이 쓴 자서전 ‘성공은 하루 만에 잊어라’의 한 대목이다. 그는 혁신적인 사고와 경영으로 경기불황과 패션업계 침체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며 시골 양복점을 ‘유니클로’라는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냈다. 패스트리테일링은 지난해 유니클로를 포함해 1조7,864억엔(약 18조원)의 매출을 올려, 글로벌 SPA 업계에서 스페인의 자라(인디텍스), 스웨덴의 H&M(헤네스앤드모리츠)에 이어 3위에 올랐다. 1986년 SPA 모델을 처음 선보인 미국의 갭(GAP)을 4위로 밀어낸 것이다.

시골 양복점 사장의 혁신

야나이 회장은 1949년 2월 일본 서부 야마구치(山口)현 우베(宇部)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1971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교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슈퍼마켓 체인인 ‘자스코(Jusco, 현 이온그룹의 전신)에서 생활용품 판매사원으로 근무했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그는 9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우베시에서 양복점 ‘오고리(小郡)상사’를 운영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가업을 잇기 위해 1972년 오고리상사에 입사했다.

그는 상품조달, 진열, 판매, 재고관리 등 밑바닥부터 일을 배웠다. 이때 재고품과 반품을 고려해 처음부터 이윤을 높게 책정하는 의류사업의 문제점에 주목하게 됐고, 기존 사업구조와 관행을 깨뜨리면 충분히 사업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오고리상사’가 22개 체인점을 거느릴 만큼 기반을 다진 1984년 그는 마침내 사장에 오르면서 그동안 구상했던 자신만의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남성 정장 판매로 가업 승계를 소망하던 부친을 설득해 히로시마에 정장이 아닌 캐주얼을 판매하는 별도의 매장 ‘유니크 클로딩 웨어하우스(Unique Clothing Warehouse, 현 유니클로 1호 매장)’를 차린 것이다.

이 매장은 당시 여러 면에서 파격적이었다. 우선 소비자를 생각해 학생들도 등교하면서 필요한 옷을 살 수 있도록 오전 6시에 문을 열었고, 의류 판매업체들이 주로 옷걸이에 제품을 걸어 진열했던 것과 달리 제품을 선반에 가지런히 진열하는 방식을 선보였다. 또, 점원이 따라다니며 손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마트처럼 마음껏 구경한 뒤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SPA 모델로 전성기 구가

야나이 회장은 다른 기업처럼 제조업체가 생산한 의류를 저렴하게 구매해 유니클로 매장에서 판매했다. 1985년 태국을 방문하던 중 중국산 캐주얼 의류가 놀랄 만큼 싼값으로 대량 판매되는 것을 보고, 중국 광저우(廣州), 상하이(上海) 등에서 직접 수입 판매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꿔 생산비를 일본의 10분의 1로 줄였다.

그 후 1987년 홍콩 지오다노가 미국의 갭과 흡사한 SPA 모델로 성공한 사례를 보고, 유니클로에도 SPA 모델을 도입하기로 결정한다. SPA는 중간 유통 단계를 줄여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못 판 재고 상품 손실을 모두 떠안아야 해 부담이 크다. 결국 판매력이 성공의 관건이다. 야나이 회장은 1991년 사명을 오고리상사에서 패스트리테일링(Fast Retailing)으로 바꾸면서 “판매력을 키우기 위해 매장을 매년 30개씩 늘리겠다”고 천명한다.

1998년 도쿄(東京) 하라주쿠(原宿) 매장을 열 때쯤 SPA 방식으로 전환한 유니클로는 대성공을 거둔다. 특히 1994년 일본 화학소재 기업 도레이와 협업해 내놓은 ‘후리스(가볍고 따뜻한 의류소재 fleece로 만든 재킷ㆍ상의)’는 유니클로를 널리 알린 간판 상품이다. 이 제품은 좋은 품질에도 1,900엔(약 1만9,000원)이란 합리적인 가격 때문에 1998년 200만장, 1999년 850만장, 2000년 2,600만장이 팔리면서 ‘유니클로’라는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각인시켰다.

유니클로의 성공전략을 분석한 책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이야기'는 대량 발주를 기반으로 생산량을 조절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성공 비결로 꼽았다. 이는 공정마다 일정량의 재고를 확보해둔 다음, 염색 단계에서 매출 상황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작업 라인을 일일이 변경하지 않더라도 소비자의 요구에 부합하는 상품을 생산할 수 있어 1,900엔이라는 경이적인 가격 정책을 펼칠 수 있다.

후리스의 성공 덕분에 실적이 급상승한다. 1992년 143억엔에서 매년 100억엔 안팎 늘어나 1998년 831억엔이었던 매출이 1999년 831억엔, 2000년 2,290억엔, 2001년 4,186억엔으로 매년 두 배씩 뛴 것이다. 야나이 사장은 일본 국내 시장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2001년 영국을 시작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한다.

저가정책 중단ㆍ첨단 소재 개발로 위기 돌파

그러나 야나이 회장은 여러 가지 새 사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해 위기에 직면한다. 야심 차게 진출한 영국 중국 등에서 고전했고, 야채 판매 사업이나 몇 차례 인수ㆍ합병(M&A)에 나서 실패했다. 매출도 2002년 3,442억엔, 2003년 3,098억엔으로 하락하고, 영업이익도 감소했다. 그러자 “고객 수요가 포화점에 이르러 대량생산판매 방식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유니클로는 2004년 9월 전국 신문에 "유니클로는 저가 정책을 그만두겠다"고 폭탄 선언했다.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네이멍구(內蒙古)산 ‘캐시미어’를 사용한 캐시미어 스웨터,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폴란드 ‘다운’을 사용한 다운 재킷 등 질 좋은 상품을 팔고 있는데도 고객들은 ‘가격이 싼 것은 품질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오해하는 것이 문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야나이 회장은 이 같은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고 판단해 장문의 글을 광고로 실으며 "가격에 비해 좋은 상품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좋은 상품을 판매할 테니 사달라"고 호소했다.

대대적인 혁신도 진행한다. 2004년 12월 미국 뉴욕에 R&D센터를 건립해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디자이너 등 인재를 기용하고, 이후 도쿄, 파리, 밀라노에도 R&D센터를 설립해 '글로벌 상품개발체제'를 본격 가동했다. 일본은 물론 해외 매장, 거래처로부터 세계적 트렌드, 고객 요구, 라이프스타일, 소재 등 최신 정보를 모아 상품을 각국 시장에 맞는 상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는 도레이와 소재 개발에도 적극 뛰어들었다. 1만벌이 넘는 샘플을 만들고 찢기를 반복해 인체에서 발생하는 수증기를 열에너지로 변환해 발열하는 원리를 적용한 발열기능 내의 ‘히트텍’을 선보여 전 세계에서 1억장 넘게 팔았고, 자외선을 90% 차단하는 기능성 라인 ‘UV-CUT’ 컬렉션을 내놓기도 했다.

덕분에 유니클로는 지난해 패스트리테일링 총 매출(1조7,864억엔)의 81.5%를 차지하는 1조4,552억엔의 매출을 기록했고, 그중 해외 사업이 절반에 육박(45%)할 정도로 성장했다. 유니클로는 한국에도 2004년 12월 롯데쇼핑과 합병회사인 ‘FRL코리아’를 설립해 진출해, 현재 180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조1,822억원이다.

”경쟁자는 아마존”… 의류에 AI 접목 승부수

야나이 회장은 올해 초 도쿄 아리아케(有明)에 지상 6층 규모의 신사옥 ‘유니클로 시티 도쿄’를 공개하면서 “유니클로를 SPA에서 ‘정보제조소매업’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자태그나 인공지능(AI) 등 첨단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지금까지 1년이 걸리던 옷의 기획, 생산, 판매까지의 시간을 2주일 내로 대폭 단축하는 스피드 경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고객이 인터넷에서 자신의 신체 치수를 입력하고 색상ㆍ디자인을 선택하면 10일 안에 제품을 집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이렇게 되면 시장수요를 잘못 판단해 생기던 재고를 줄이고, 고객수요를 빠르게 파악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상품기획, 판매영업, 물류, IT 등의 담당 직원 1,000명이 신사옥 6층에 칸막이가 없는 1만6,500㎡(약 5,000평)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며 의사결정 시간을 단축하게 했다. 또 나머지 5개 층의 절반을 물류센터로 만들고, 모든 작업을 IT기술로 전산화ㆍ자동화했다.

야나이 회장은 "의류제조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이 정보산업과 서비스산업으로 변하고 있다"며 “구글이나 아마존이 라이벌”이라고 말하고 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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