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경찰, 촛불집회 당시에 교통통제 양해 구하며 표현
이 청장, 직접 전화 걸어 “성지 근무하니 좋으냐” 질책
해당 글 하루 만에 삭제되고 광주청장 10여일 뒤 좌천 인사
이 청장 “직접 전화 안했다” 부인
이철성 경찰청장이 국정농단 촛불시위 과정에서 호남을 ‘민주화의 성지’로 표현한 글을 트집잡아 광주청장을 호되게 질책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장이 일고 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광주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질서의식을 높이 평가한 광주경찰청의 글을 보고 당시 강인철 광주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민주화의 성지에서 근무하니 좋으냐”는 등 비아냥 섞인 막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6일 경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 청장은 광주경찰청이 지난해 11월 18일 SNS 공식계정에 올린 ‘광주 시민의 안전, 광주 경찰이 지켜드립니다’는 제목의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자 참모회의에서 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글은 다음날 도심에서 촛불집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리고 교통 통제에 대한 양해를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민주화의 성지, 광주 시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문구와 ‘국정농단 헌정파괴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플래카드 아래로 경찰이 도로를 통제하는 모습이 함께 실렸다. 차별화된 문구에다, 시민안전을 위해 애쓰는 경찰의 모습이 담겨 네티즌의 관심이 쏟아졌다.
이를 보고받은 이 청장은 다음날 오후 4시쯤 강 광주청장에게 휴대폰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민주화의 성지에서 근무하니 좋으냐”, “당신 말이야. 그 따위로 해놓고” 등의 막말을 쏟아내며 언성을 높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청장의 호된 질책을 받은 광주청은 하루 만에 해당 글을 없애고 촛불집회 예고와 교통 통제 안내 글로 대체했다. 강 전 청장이 “본청에서 글을 내리라고 한다”며 과ㆍ계장 10여명을 불러 대책을 논의한 뒤였다. 사라진 첫 글과는 달리 후속 글에는 ‘민주화의 성지’, ‘경찰이 지켜드립니다' 등의 문구와 플래카드 사진 등이 없어졌다. 그 배경에 의문이 일자, 광주청은 ‘집회 상황을 알리기 위해 상황을 업데이트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한 경찰간부는 “홍보를 담당하는 하위 직원이 순수하게 올린 글인데도, 본청 수뇌부가 과민하게 반응해 당혹스러웠다”고 전했다. 강 전 청장은 논란 발생 10여일 뒤인 같은 달 28일 단행된 인사에서 지휘관에서 물러나 치안감 승진자가 주로 받는 경기남부경찰청 1차장으로 사실상 좌천됐다.
올 1월 ‘인사청탁’ 업무 수첩 논란으로 감찰조사를 받았던 박건찬 전 경찰청 경비국장이 경기남부청 1차장으로 이동하면서 경찰중앙학교장으로 자리를 옮긴 강 전 청장은 최근 교비 편법 운용 의혹으로 감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 내부에선 “국정농단 세력의 눈치를 보며 조직을 이끈 이 청장에게 치안총수 자리를 계속 맡겨두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등 뒷말이 무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청장은 이에 대해 “(강 전 청장에게) 직접 전화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도 “광주청이 SNS 글을 올린 경위를 확인해보라는 (이 청장) 지시가 없었다”고 했다. 강 전 청장은 “이 청장과의 통화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알려왔습니다]
경찰청은 “본지의 광주지방경찰청 SNS 논란 보도와 관련하여 경찰청장은 페이스북 글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없으며, 2016년 12월 강인철 치안감이 경기1차장으로 전보된 것은 정기인사에 따른 정상적 인사이동이었다. 또한 신상털기식 감찰 보도와 관련해서는 강인철 중앙경찰학교장이 자진해서 감찰을 요청하여 절차에 따라 진행한 것이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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