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계성
논설실장

등록 : 2014.10.06 20:00
수정 : 2014.10.07 17:52

[이계성 칼럼] 박근혜의 기회, 김정은의 기회

등록 : 2014.10.06 20:00
수정 : 2014.10.07 17:52

北 권력 실세 3인 파견은 자신감 과시

남북관계 개선에서 출구 찾으려는 의지

박 대통령, 대북구상 실현 계기로 삼아야

지난 4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등이 북한 선수단이 입장하자 일어나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한 권력 실세 3인방 전격 방남(訪南) 충격의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 주말 12시간의 짧은 체류를 하고 돌아간 지 사흘이 지났는데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화제는 단연 그들의 깜짝 방문이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매체들이 앞다퉈 배경 분석과 해석을 내놓고는 있지만 사람들은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자신 다음으로 최고 실세인 세 사람을 한꺼번에, 그것도 자신의 전용기에 태워 남한에 보낸 것은 그 만큼 의도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시중에는 김정은이 한 달이 넘도록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과 연관 지어 그의 건강 이상설, 정변설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김정은이 통풍 등으로 치료 중이지만 권력 장악과 행사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 측근 실세 3인방 파견이라는 파격적 카드를 꺼내든 것은 김정은 나름의 강한 자신감의 발로일 수 있다. 북한 경제는 최근 3년간 1%대의 성장을 기록했다. 낮은 수치이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마이너스 성장이 일반화하다시피 한 것에 비춰 상당한 성취다. 주민들의 식량 사정이 전반적으로 나아졌다는 보도도 많다.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한선수단의 차림새나 예전에 비해 상당히 자유스러워진 분위기 등은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의 형편이 적잖이 나아졌음을 뒷받침한다.

게다가 북한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ㆍ은 각 11개, 동메달 14개로 참가 45개국 가운데 7위를 기록,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에 톱10에 진입했다. 김정은은 여기에 크게 고무됐을 게 틀림 없다. 북한 매체들은 이 모든 성취들이 김정은의 지도력 때문임을 적극 부각시키고 있다. 5일 평양시 일대에서 수십만 인파가 몰린 가운데 벌어진 대대적인 선수단 환영 퍼레이드는 김정은 체제를 한층 단단하게 하는 효과를 냈을 법하다.

김정은은 이런 성과를 대내외에 과시할 겸 남측에 강력한 대화 의지를 보이기 위해 아시안게임 폐막일이자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물인 10ㆍ4선언 7주년 기념일에 맞춰 자신을 실질적으로 대리하는 실세 3인을 남측에 파견했을 것이다. 기회를 민첩하게 포착하고 대담하게 활용했다는 점에서 김정은은 결코 상대하기가 간단하지 않은 인물인 것 같다.

김정은은 권력을 승계한 뒤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을 강행하며 핵ㆍ경제 병진노선을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다. 동시에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인 2000년대 전반 시장경제적 요소를 일부 도입한 경제개혁을 주도한 박봉주를 다시 내각총리로 기용해 경제발전을 꾀하고 있다. 이런 시도가 아버지 시대의 실패 전철을 밟지 않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외화 등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북한은 그간 지하자원 수출, 근로자 해외파견 등으로 외화를 확보해왔지만 충분했다고 보기 어렵다. 김정은 정권은 이제 남측과의 관계개선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분석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번 북한 정권 실세 3인방 파견은 1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남측이 호응해주기만 한다면 나름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보다 대담하게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관건은 우리 정부의 대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이번 북측 고위 방문단을 통해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에 합의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북한에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상대방의 진정성만 바라고 있을 게 아니라 보다 선제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진정성을 견인해 내고 만들어간다는 적극적 자세가 아쉽다.

요즘 나라 안팎의 여러 상황은 그간 상승일로를 달려왔던 우리의 국운이 꺾이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들 정도로 암울하다. 우리에게도 이런 암울한 상황을 돌파할 출구가 절실하다. 그 길이 북한을 포함한 북방에 있다는 건 이미 상식이다. 드디어 박 대통령에게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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