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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포커스] 비용 더 들어도… K팝 새 돌파구로 밴드가 뜬다

입력
2017.05.3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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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위너 출신 남태현(앞줄 가운데)이 밴드 사우스클럽과 합주를 하는 모습.
그룹 위너 출신 남태현(앞줄 가운데)이 밴드 사우스클럽과 합주를 하는 모습.

#1. ”기타, 드럼, 베이스, 피아노 연주자 모집합니다.” 그룹 위너 출신 남태현이 YG엔터테인먼트를 떠난 뒤 지난 1월 한 일은 밴드 모집이었다. 넉 달이 지나 그는 밴드 사우스클럽을 결성해 지난 26일 신곡 ‘허그 미’를 발표했다. 춤추며 노래하던 아이돌의 파격 변신이다. 남태현 측에 따르면 그는 ‘글램록의 전설’ 데이비드 보위의 포스터가 붙은 연습실에서 밴드와 합주를 하며 지낸다.

#2. 양 갈래 머리를 한 여성들이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모습이 산뜻하다. 지난 24일 공개된 노래 ‘퍼핏’의 홍보 사진만 보고 걸그룹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마르멜로는 여성 5인조 신인 록 밴드다. 스무 살 동갑내기 친구들이 모여 데뷔 곡의 작사, 작곡은 물론 녹음 연주까지 직접 했다. 여성으로만 이뤄진 록 밴드가 데뷔하기는 이례적이다.

이달 신곡을 낸 남성 아이돌 밴드 데이식스, 허니스트, 더 이스트라이트와 여성 아이돌 밴드 마르멜로. 최근 가요계에는 이례적으로 아이돌 밴드 바람이 불고 있다. FNC엔터테인먼트·미디어라인 등 제공
이달 신곡을 낸 남성 아이돌 밴드 데이식스, 허니스트, 더 이스트라이트와 여성 아이돌 밴드 마르멜로. 최근 가요계에는 이례적으로 아이돌 밴드 바람이 불고 있다. FNC엔터테인먼트·미디어라인 등 제공

음악 순위프로그램, 신비주의 NO!... 1세대 아이돌 밴드와의 차이

가요계에 신인 아이돌 밴드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최근 6개월 사이 더 이스트라이트, 허니스트 등 4개의 밴드가 가요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8월에는 평균 나이 18세인 4인조 남성 밴드 아이즈가 데뷔를 앞두고 있다.

모두 홍익대 인근 인디신이 아닌, 아이돌 댄스그룹이 득세하는 주류 시장에 승부수를 던졌다. 2007~2010년에 데뷔한 FT아일랜드ㆍ씨엔블루 등 아이돌 1세대 밴드와 활동 방식과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도 다르다. 요즘 데뷔한 2세대 아이돌 밴드에 신비주의는 없다. 국내 작은 클럽에서 100회 공연을 한 뒤 데뷔(마르멜로)하거나, 데뷔 곡을 내도 지상파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는다. 대신 길거리 공연(데이식스ㆍ허니스트)에 주력한다. K팝 댄스그룹과 달리 입소문과 친숙함을 바탕으로 팬덤을 쌓으려는 차별화 전략이다. 유행에 맞춰 전자음악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도 변화다.

“K팝 한류 틈새 시장”… 아이돌 밴드에 거는 기대

밴드를 내놓는 음악기획사들의 지형도 넓어졌다. 트와이스가 속한 JYP엔터테인먼트(데이식스)와 FNC엔터엔먼트(허니스트) 등 대형 아이돌 기획사를 비롯해 트로트 가수 홍진영이 속한 뮤직케이도 밴드(아이즈)를 선보이고 있다. 여러 가요 관계자에 따르면 이르면 내년부터 줄줄이 입대를 하게 될 1세대 아이돌 밴드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여러 기획사들이 2~3년 전부터 신인 밴드 기획에 뛰어들었다.

아이돌 밴드를 만드는 데는 위험 요소가 많다. 투자비도 여느 댄스그룹보다 더 든다. 흥국증권이 2015년 낸 보고서 ‘스타가 만들어지기까지’와 하나금융투자가 낸 ‘남자 아이돌이 군대에 간다’에 따르면 3년 연습생 생활을 거친 5인조 댄스그룹이 데뷔하기까지 최소 5억원이 든다. 아이돌 밴드는 수백 만 원을 호가하는 악기와 멤버별 악기 지도 비용 등이 추가로 든다. 밴드 음악의 저변이 일본처럼 넓은 것도 아닌데, 여러 기획사가 아이돌 밴드 제작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댄스그룹이 개척한 해외 시장을 파고 들어 한류의 틈새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포화 상태나 다름 없는 댄스그룹 시장을 피해 밴드 등으로 한류 시장을 다각화하려는 움직임이다. 아이즈를 기획한 권창현 뮤직케이 대표는 “씨엔블루가 대표적이지만 대만에서 특히 K팝 밴드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밴드의 해외 시장성을 높게 봤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 내 한류 시장이 얼어 붙었지만 곧 누그러질 것이란 기대도 작용하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 시장이 있기에 승산이 있다는 설명이다. 가수 김건모와 남성 듀오 클론 등을 배출한 미디어라인의 이정현 대표는 “댄스그룹으로 획일화된 K팝 아이돌 시장을 바꿔보고 싶어 아이돌 밴드를 제작했다”며 “더 이스트라이트 멤버들이 오랫동안 자유롭게 음악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밴드 포맷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인디=록=진정성’ 도식 깨는 신호탄

아이돌 밴드의 잇따른 등장은 그간 인디와 오버그라운드가 극단적으로 분리된 록 음악 시장의 경계가 점점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르멜로는 홍익대 라이브 공연장의 산실인 롤링홀의 문화 기획 레이블인 롤링컬쳐원이 걸밴드 콘셉트로 꾸린 팀이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인디=록=진정성’이란 도식이 깨지기 시작했다는 증거”라고 의미를 뒀다. 록 음악은 꼭 인디에서 해야만 한다는 편견으로 인해 그간 밴드에 얹힌 과도한 음악적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음악평론가는 “아이돌 밴드의 해외 공략도 국내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은 후에나 가능한 일”이라며 “국내 밴드 음악 소비층이 워낙 얇아 제대로 자리 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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