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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천고사설] 불효

입력
2015.05.0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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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집안에 충신 난다’는 말이 있는데, 이를 줄여서 ‘이충(移忠)’이라고 한다. 부모에 효도하는 마음을 나라로 옮겨 충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효경(孝經)’ ‘광양명(廣揚名)’의 “군자는 어버이를 효로써 섬기는데 그 마음을 임금에게 바꾸어 충성할 수 있다(君子之事親孝 故忠可移於君)”는 데서 나온 말이다. 국가에서는 효자ㆍ충신이 난 집안에 부역인 호역(戶役)을 면제해 줬는데 이를 복호(復戶)라고 했다. 충신뿐만 아니라 효자 집안에도 호역을 면제해 준 것은 집안에서 효도하는 사람이 결국 나라에 충성하기 때문이다. 효자가 자신의 몸을 아끼는 것은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 두려워서다.

그런데 효도도 중요하지만 나라에 대한 충성도 그 못지 않다는 뜻으로 질어(叱馭)라는 말을 쓴다. 마부를 재촉한다는 뜻인데, 나라에 대한 충성의 마음을 뜻한다. 험한 산길을 구절양장(九折羊腸)이라고 부르는데 아홉 번 꺾어진 양의 창자라는 뜻이다. 구절(九折)은 길이 험하기로 유명한 촉군(蜀郡) 엄도현(嚴道縣)에 있는 험한 산길을 뜻한다. ‘한서(漢書)’ ‘왕준(王尊) 열전’에는 이 길을 구절판(九折阪)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낭야(琅邪) 왕양(王陽)이 익주자사(益州刺史)가 되어 이 길을 넘어야 했는데, 몸이 상해 부모를 슬프게 할까 두려워서 그냥 돌아왔다. 그 후에 왕존(王尊)이 자사가 되어 구절판에 이르러 “이는 왕양이 두려워했던 길 아닌가”라고 물었다. 수행원이 “그렇습니다”라고 답하자 왕존은 마부를 재촉하면서(叱其馭) “달려라. 왕양은 효자지만 왕존은 충신이다”라고 말한 데서 나온 고사다.

‘설문해자(說文解字)’는 후한의 허신(許愼)이 2세기경에 편찬한 고대 한자어 사전이다. ‘설문해자’는 ‘효도할 효(孝)’자에 대해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다. 노(老)자의 생략형 ‘노(?)자’와 아들 ‘자(子)’자로 구성되었는데, 자식이 노인을 잘 받드는 것이다(子承老也)”라고 설명하고 있다. 동양 고전에서 덕(德)자만큼 설명하기 어려운 글자도 없다. 그런데 ‘효경(孝經)’ 1장에는 “무릇 효라는 것은 덕의 근본으로서 모든 가르침이 여기에서 시작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효도에 대해서 무조건적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에 대해 ‘효경’은 “부자의 도(道)는 천성(天性)이다”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부자의 도는 하늘이 부여한 성품이란 뜻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 ‘맹동기(孟冬紀)’ ‘절상(節喪)편’에는 “효자가 그 어버이를 중하게 받드는 것과 자애로운 어버이가 그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살과 뼈에 사무치니 타고난 성품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버이의 자식 사랑과 자식의 부모 받듦은 하늘에서 내린 성품이란 뜻이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이런 천성을 어기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제재가 필요했다. 우리 선조들은 불효에 대해서 아주 강하게 처벌했다. 지금 사람들이 보면 놀랄 정도이다. ‘고려사’ ‘형법지(刑法志)’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조부모와 부모가 생존해 계시는데 자손이 따로 호적과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 공양에 소홀하면 징역(徒) 2년에 처한다(‘호혼(戶婚)’)” 지금 이런 법을 통과시키면 교도소가 넘쳐나서 새로 지어야 할 것이다. 조선은 상당 부분에서 고려의 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이런 법 정신을 그대로 계승했다. 명나라의 법전인 ‘대명률(大明律)’을 조선 실정에 맞게 개정한 것이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인데, 그 ‘예율(禮律)’편에는 “무릇 조부모ㆍ부모가 나이 80 이상이거나 또는 병으로 기동할 수 없는데 자신 이외에 동복(同腹ㆍ형제)가 없으면서 돌보지 않으면…장(杖) 80대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부모에게 해를 입혔을 경우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고려사’ ‘형법지’는 “조부모나 부모를 구타한 자는 목을 베어 죽인다. 고발하거나 욕한 자는 목을 달아 죽이다. 실수로 상해를 입힌 자나 실수로 욕을 한자는 징역 3년에 처한다. 실수로 구타한 자는 3,000리 밖으로 귀양을 보낸다(‘대악(大惡)’)”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국왕이 즉위했거나 병에 걸려서 죄수를 사면할 때도 사면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서울시에서 최근 노인학대 실태를 조사했더니 40.9%의 가해자가 아들이었고, 딸이 15.4%라는 결과가 나왔다. 가정의 달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으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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