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툭하면 폐교… 안전판 없는 사립특수학교

알림

툭하면 폐교… 안전판 없는 사립특수학교

입력
2017.12.21 15:54
11면
0 0

교인 결정ㆍ재산권 행사 이유로

종교법인 운영 학교 폐교 위기

“장애아동 교육권 보장 어디서…”

교육청, 폐교 신청 반려하더라도

학교서 등교 막을 땐 통제 불가능

21일 서울 동작구 K교회 누리학교 앞에서 장애인부모연대 주최로 열린 ‘누리학교 폐교 추인 규탄 기자회견’에서 장애인부모가 폐교를 반대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21일 서울 동작구 K교회 누리학교 앞에서 장애인부모연대 주최로 열린 ‘누리학교 폐교 추인 규탄 기자회견’에서 장애인부모가 폐교를 반대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21일 오전 서울 동작구 특수학교인 누리학교 앞. 눈물을 뚝뚝 흘리는 학부모가 보였다. 아이가 다니는 이 특수학교가 돌연 폐교 위기에 몰렸기 때문. 1998년 K교회가 설립, 운영해왔으나 지난 17일 사무총회에서 교인들이 폐교를 결정했다. 설립 당시 목사가 학교설립에 대한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날 50여명의 학부모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폐교를 추인한 교회를 규탄했다. 정순경 서울특수학교 학부모협의회 대표는 “숭고한 뜻으로 시작됐던 학교를 하루 아침에 마음대로 폐교하겠다는 것은 장애 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만행”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 특수학교를 짓게 해 달라며 장애아 어머니들이 ‘무릎 호소’를 한 지 석 달, 학교를 운영하는 교회 재단이 개교 19년만에 재산권을 되찾겠다고 나서면서 이번에는 학부모들이 학교를 폐교 위기에서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종교단체 등이 운영하는 사립 특수학교 비율이 높아, 가뜩이나 교육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 아동들이 느닷없는 폐교 위협에 번번이 노출되는 상황이다.

21일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93개 사립 특수학교 중 59개(63%)가 사회복지법인(53개), 재단법인(3개), 사단법인(2개), 개인(1개) 등 비학교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비학교법인 학교는 부정ㆍ비리 문제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인건비ㆍ운영비를 일반 사립학교처럼 교육청에서 지급하지만, 누리학교만 해도 학교 예산이 교회 리모델링 비용 등으로 유용(본보 12월 15일자 13면)된 사실이 적발됐다.

더 큰 문제는 학교 폐교처럼 학생들에게 큰 피해가 발생하는 사안을 교육청의 반대에도 밀어붙이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개인이 설립해 1968년 개교했던 서울 성북구 명수학교는 설립자 사후 상속 문제로 형제간 분쟁을 겪다 2014년 4월 서울시교육청에 학교 폐쇄를 통보했다. 아예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하도록 물리적으로 막았다. 결국 서울시교육청이 2015년 9월 인수해 공립 특수학교인 다원학교로 바뀌었다. 전북 전주 자림학교는 학교를 운영하는 자림복지재단 내 다른 시설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해 전주시로부터 법인허가취소 처분을 받았고, 내년 2월 폐교를 앞두고 있다.

교육청이 학교 폐교 신청을 반려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학교측이 수업을 없애고 학생 등교를 막을 경우, 어쩔 수 없이 폐교에 이를 수밖에 없게 된다. 학교법인은 학내 갈등이 발생하면 교육청이 관선 임원을 선임하는 등 운영을 통제할 수 있지만 학교법인이 아닌 경우에는 보건복지부, 지방자치단체 관할이라 간섭이 쉽지 않다.

지난해 말 사학법 개정을 통해 특수학교의 설립 주체를 학교법인으로 제한했지만 기존에 인가를 받은 특수학교는 대상에서 빠졌다. 학교법인으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수익용 기본재산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익용 기본재산을 확보할 의무가 없는 상태에서 승인을 받고 운영해 오던 것까지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며 “종교법인이나 개인 등이 1960년대부터 사재를 털어 장애학생 교육에 나섰던 기여를 인정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은 속이 탄다. 지적장애 유아를 교육할 수 있는 학교가 종로구, 송파구 딱 2곳만 있어 통학이 힘들다. 누리학교 학부모인 김모(40)씨는 “우리 아이들은 교육을 포기하라는 말이냐”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내년 입학생까지 배정한 상태라, 폐교 신청을 해도 반려할 가능성이 높다. 교육청 관계자는 “일단 갈등이 내부적으로 잘 봉합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21일 서울 동작구 광성교회 누리학교 앞에서 장애인부모연대 주최로 열린 ‘누리학교 폐교 추인 규탄’ 기자회견에서 장애인부모들이 폐교를 반대 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21일 서울 동작구 광성교회 누리학교 앞에서 장애인부모연대 주최로 열린 ‘누리학교 폐교 추인 규탄’ 기자회견에서 장애인부모들이 폐교를 반대 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