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외면해 14년 만에 제작
CGV도 배정, 스크린 크게 늘어나
예매율 1위… 500만까지 예상
"마음 아파도 봐야 할 영화" 입소문
정부 합의·역사교과서 반작용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를 담은 영화 ‘귀향’이 개봉 4일만에 누적관객수 75만명을 모으며 기적 같은 흥행성과를 보이고 있다.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14년 만에 제작된 이 영화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한일 위안부 협상을 타결한 데 대한 반사작용으로 ‘시민들이 봐줘야 할 영화’라는 운동이 번지며 아무도 예상치 않았던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8일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귀향’은 27일 하루에만 전국 769개 스크린에서 29만6,524명의 관객들이 관람해 누적관객수 75만6,665명을 기록했다. 상영 첫날인 24일 15만4,728명을 모아 할리우드 영화 ‘데드풀’을 밀어내고 일일 흥행순위 1위에 오른 뒤 나흘째 흥행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귀향’의 300만 관객 달성은 시간 문제이며 500만명 동원도 가능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마음 아프더라도 꼭 봐야 할 영화”라는 입소문은 ‘귀향’ 흥행몰이의 주요 추력이다. 지난해부터 전국 각지에서 시사회를 열었던 ‘귀향’은 인터넷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조용히 바람을 일으켰다. 초등학생 두 딸을 둔 박수진(38)씨는 “막상 눈으로 확인하면 두렵고 망설여지기도 했던 영화”라며 “아이들이 지금은 너무 어려서 보여줄 순 없지만 나중에는 관람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60대 조인해씨도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고 아팠지만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를 재조명한 것에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스크린 수를 많이 확보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전해지면서 ‘우리가 봐 주자’는 움직임을 촉발한 면도 있다. 개봉 전까지만 해도 ‘귀향’을 상영할 스크린 수는 50여개로 예상됐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체인 CJ CGV가 정부 눈치를 보다 경쟁사인 롯데시네마나 메가박스와 달리 ‘귀향’에 상영관을 배정하지 않는다는 소문도 동정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귀향’이 예매율 1위를 차지하는 등 대중의 관심이 커지면서 CJ CGV도 ‘귀향’에 스크린을 배정하는 등 스크린 수는 급격히 늘었다.
지난해 연말 정부가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이해와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한 채 일본과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다는 사회적 반감이 형성된 점도 ‘귀향’이 주목 받는 주요 이유 중 하나다. 대중문화평론가 김경남씨는 “정부의 위안부 합의 과정과 최근 국정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표현 등이 빠진 것이 대중의 ‘귀향’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계기가 됐다”고 짚었다.
SNS 등을 통한 관람 독려와 단체 관람도 다른 영화에서는 찾기 힘든 현상이다. SNS에는 지인들에게 ‘귀향’을 소개하며 함께 보러 가자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귀향’ 관계자는 “다른 영화와 달리 오전 관객이 많은 편”이라며 “친구나 가족끼리 몰려서 본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귀향’은 제작에 들어간 지 14년 만에야 개봉할 정도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상업성이 결여돼 투자자들이 외면하자 크라우딩 펀딩(7만5,000여명)을 통해 12억원을 모은 끝에 완성됐다. 영화 완성 뒤엔 배급사가 나서지 않아 개봉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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