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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두 인연’ 이어가는 박찬호와 타티스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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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두 인연’ 이어가는 박찬호와 타티스 부자

입력
2018.03.2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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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시절의 박찬호(왼쪽)와 뉴욕 메츠 시절의 페르난도 타티스(오른쪽). 연합뉴스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시절의 박찬호(왼쪽)와 뉴욕 메츠 시절의 페르난도 타티스(오른쪽). 연합뉴스

1999년 4월23일 미국 LA 다저스타디움.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경기 3회초 무사 만루에서 타석에 세인트루이스의 3루수 페르난도 타티스가 들어섰다. 다저스의 선발 투수는 박찬호. 타티스는 박찬호의 공을 좌측 담장으로 넘겨 만루홈런을 기록했다. 계속된 3회초 공격. 타순이 한 바퀴 돌았고, 아웃카운트는 단 두 개만 올라갔다. 2사 만루 상황에서 다시 타석에 들어선 타티스는 박찬호의 변화구를 걷어 올려 또다시 좌측 담장을 넘겨버렸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 한차례 밖에 없었던 이른바 ‘한만두(한 이닝 만루홈런 두 개)’ 기록이 작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9년이 흘렀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디 애슬레틱’의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담당 기자인 데니스 린은 지난 5일 ‘한만두’의 두 당사자인 박찬호와 타티스, 그리고 타티스의 아들이자 파드레스의 유망주인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의 기묘한 인연을 기사로 다뤘다.

당사자들이 기억하는 ‘한만두’

‘디 애슬래틱’에 따르면 타티스는 박찬호를 처음으로 상대했던 1999년 시즌 스프링캠프를 기억했다. 당시 승부는 박찬호의 압승으로 끝났다. 박찬호를 상대한 세 타석에서 전부 삼진으로 물러난 타티스는 팀 동료였던 에릭 데이비스를 찾아가 “참 지저분한 공을 뿌리는 투수다. 시즌 중에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타티스는 그때 자신을 격려해준 데이비스 덕분에 부담을 떨칠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타티스는 대기록을 달성했던 그 순간에는 자신이 어떤 업적을 이뤄냈는지를 알아채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한 동료가 다가와 ‘네가 방금 야구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얘기해줬다. 그제야 깨달았다”는 타티스는 “아직까지도 그 사건에 대해 매일 신에게 감사드린다. 그 사건이 나와 내 가족들의 삶을 바꿔놓았다”고 회상했다.

대기록의 희생양이 된 박찬호는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투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이라며 말문을 연 그는 “하지만 그 사건은 역사가 됐고, 나는 배리 본즈가 73홈런으로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세웠을 때도 71호, 72호 홈런을 내줬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박찬호는 “어차피 (투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을 던져 타자와 승부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타티스의 기록에 대해서는 “앞으로 다시는 재현되지 않을 기록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1999년 4월 23일(현지시간) LA 다저스 박찬호가 페르난도 타티스(세인트루이스)에게 공을 던지고 있다. KBS 뉴스 캡처
1999년 4월 23일(현지시간) LA 다저스 박찬호가 페르난도 타티스(세인트루이스)에게 공을 던지고 있다. KBS 뉴스 캡처

타티스와 박찬호의 기묘한 인연

디 애슬레틱은 타티스와 박찬호의 기묘한 인연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뤘다. ‘한만두’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얽혔던 두 선수는 2007년 뉴욕 메츠 산하 트리플 A 구단인 뉴올리언스 제퍼스에서 팀 동료로 재회했다. 다시 만난 두 선수는 동병상련의 처지가 돼 있었다. FA 계약 이후 하락세를 떨쳐내지 못한 박찬호는 마이너리그에서 시즌 개막을 맞이했고, 타티스 역시 2004년부터 2년간 프로 생활을 중단하는 등 굴곡 있는 커리어를 보내고 있었다.

제퍼스에서의 둘은 음식이라는 공통의 관심사와 빅리그 복귀라는 동일한 목표를 공유하는 가까운 동료 사이로 발전했다. 타티스는 “우리가 함께 다닐 때면 사람들은 모두 (대기록의 당사자들이 함께 다니고 있다는) 한 가지 사실에 주목했다”며 “찬호가 ’우리끼리 같이 다니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똑같은 이야기만 한다. 우리끼리라도 다른 얘기를 하자’며 부탁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아들에게도 이어진 인연

타티스의 아들인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19ㆍ샌디에이고 파드레스)는 ‘한만두’ 기록이 작성되기 전인 1999년 1월 2일 태어난 19세의 야구 선수다. 현재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리그 최고 수준의 유망주다. 타티스 주니어는 2018 시즌 개막을 앞두고 발표된 베이스볼 아메리카(BA)와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BP)의 유망주 랭킹에도 나란히 9위로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아버지의 ‘업적’은 타티스 주니어에게도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무렵부터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항상 따라다녔다”는 타티스 주니어의 말처럼, 아버지의 대기록에 관한 주변 사람들의 언급은 성장기 내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랬던 타티스 주니어가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었던 박찬호를 처음 만난 것은 2016년 9월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였다. 샌디에이고의 최고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던 타티스 주니어는 아들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아버지와 담소를 나눴고, 마침 교육 리그 현장에 초청받아 애리조나를 방문중이었던 박찬호가 이 자리에 합류했다. 셋은 웃음을 나누며 즐겁게 캠프 주변을 거닐었다.

타티스 주니어와 박찬호의 인연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박찬호는 2017년부터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야구 운영 자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덕분에 둘은 올 봄에도 샌디에이고의 스프링 캠프에서 만나 교류를 이어갈 수 있었다. 기사를 쓴 데니스 린 기자는 타티스 주니어를 향한 박찬호의 응원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타티스)는 아들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가 부디 슈퍼스타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타티스 주니어는 얼마 전 ‘샌디에이고 유니온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내 나이대의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겠다. 그것이 내 마음가짐”이라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이 패기만만한 청년조차도 아버지의 대기록을 재현할 수 있겠느냐는 데니스 린의 질문에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그런 일은 불가능할 것 같다. 다른 기록을 달성해보도록 하겠다”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타티스 주니어는 19살의 어린 나이로 참가한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32타수 9안타(1홈런) 3도루의 준수한 성적을 남겼다. 그는 올 시즌 더블A와 트리플A 무대를 오가며 활약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의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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