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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등록 : 2017.06.08 15:24
수정 : 2017.06.08 15:24

[천종호의 판사의 길] 정의란 무엇인가

등록 : 2017.06.08 15:24
수정 : 2017.06.08 15:24

법관은 법과 정의(正義)의 수호자라고 한다. 정의는 사람에 따라 아주 다양하게 정의(定義)되나, 정의의 문제는 ‘생명, 자유, 소득과 부, 권리와 의무,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 이른바 ‘사회적 가치’의 분배 상태의 평가와 개선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정의의 문제는 현재 분배 상태의 평가에서 그치는 정태적(情態的)인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동태적(動態的)인 것이 되고, 이를 기초로 접근하면 정의가 문제되는 국면은 크게 세 가지가 된다.

첫째, 사회적 가치의 향유 국면이다. 개인이 자신에게 이미 분배된 사회적 가치를 제약 없이 누리는 국면이다. 이 국면에서 개인은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유롭게 행동하며, 자신에게 분배된 소득과 부를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처분하게 된다. 그리고 정당하게 취득한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을 그 목적에 맞게 행사하거나 누릴 수 있다. 만약 사회적 가치의 향유를 방해 받았거나 방해 받을 우려가 있다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 그 시정이나 예방을 요구할 수도 있다.

둘째, 사회적 가치의 확대 국면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회경제적 활동을 통해 자신에게 분배되는 사회적 가치를 확대시켜 나가고, 이를 통해 자아를 확장시켜 나간다. 자산이 없는 개인은 노동의 제공을 통해 소득을 얻고, 반대로 자산을 가진 자는 자산과 제공받은 노동을 결합해 얻은 수익으로 부를 창출해 나간다. 하지만 아동노동은 거래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데 아동노동을 허용할 경우 아동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재화의 거래에서는 매수인은 재화를 얻는 대신 매수대금만큼의 부의 감소를 당하나 매도인은 거래를 통해 발생한 이윤만큼의 부의 확대를 얻는다.

사회적 가치 확대 국면에서는 ‘공정한 거래’와 ‘공정한 경쟁’이 핵심 쟁점으로 대두된다. 먼저, 공정한 거래 문제는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의 형평성 문제다. 법이 정한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급여를 받는 경우, 동일한 노동을 제공하고도 하청업체 직원 또는 비정규직 직원이라는 이유로 원청업체 직원들이나 정규직 직원들보다 낮은 급여를 받는 경우가 여기에서 다루어지는 문제고,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하거나 사재기를 통해 폭리를 취하는 경우도 여기에서 다루어지는 문제다. 다음으로, 공정한 경쟁 문제는 경쟁의 룰(기회, 조건, 절차)을 공정하게 만들어 경쟁의 결과가 매번 특정 경쟁자에게 귀속되는 것을 사전에 예측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경주는 동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승패가 항상 예측되므로 공정한 경쟁이라 할 수 없다. 불공정한 거래와 경쟁은 사회적 가치 분배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켜 나간다. 이와 관련해 민법 제104조나 공정거래법 등에서 폭리행위나 불공정한 행위를 단속하고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소득과 부의 적정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공정한 거래와 경쟁은 반드시 달성되어야 하고, 이는 신뢰사회를 이루기 위한 초석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셋째, 사회적 가치의 조정 국면이다. 사회적 가치 보유의 차이는 불평등을 초래한다. 그런데 인류역사상 평등한 시대보다는 불평등한 시대가 더 많았다. 오늘날에는 불평등 정도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정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사회적 가치의 분배 상태를 평가하고 그 개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함이라고 했으므로, 현재의 불평등 상태가 상호성에 바탕을 둔 공동체 구성원간의 연대를 깰 정도에 이르렀다면 그러한 상태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이를 부정하여 불평등 상태를 고착시키거나 심화시켜나가는 것은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고대 그리스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분배상태의 불평등을 조정하는 방법은 국가가 시행하는 복지정책과 개인이 자발적으로 베푸는 자선행위가 있다. 복지정책은 보통 국민건강보험 등과 같이 소득에 비례하여 책정되는 보험료를 납부하고 혜택은 필요한 만큼 누리는 ‘사회보험’,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 최저생계비 지원을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공적부조’, 의무교육의 실시와 같은 ‘보편 서비스’로 나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을 실현함에 있어 필요한 재원은 세금 등을 통해 조달되므로 조세정책은 복지정책의 실현에 필수적인 것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의관에 따라 정의의 국면을 본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위에서 본 첫째 국면만이 정의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법관으로서는 정의의 문제를 판단함에 있어 위의 세 국면 모두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모든 국면을 고려해야 한다면 정의란 ‘사회적 가치를 적법․공정하게 분배하고, 분배된 사회적 가치를 배타적으로 향유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이것이 바로 법관이 수호해야 하는 정의다.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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