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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핑퐁외교(4.10)

입력
2018.04.09 14:4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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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탁구대표팀의 중국 방문 10개월 뒤인 1972년 2월 닉슨과 마오쩌둥이 베이징에서 만났다. AP 자료사진
미국 탁구대표팀의 중국 방문 10개월 뒤인 1972년 2월 닉슨과 마오쩌둥이 베이징에서 만났다. AP 자료사진

미국-중국 관계가 경색되고 있다. 미국이 지난 1월 일부 중국산 가전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면서 본격화한 미ㆍ중 무역분쟁은 3월 초 철강ㆍ알루미늄을 시작으로 1,300여 품목의 고율관세와 중국의 대미 투자 제한으로 확산됐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달 16일 ‘타이완여행법’에 서명, 중국의 가장 예민한 통점인 ‘하나의 중국’ 원칙에 상처를 냈다. 이어 20일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대만을 전격 방문하자 중국은 항공모함을 대만해협에 들이댔다. 타이완여행법이 1979년 이후 끊긴 미국-타이완 정부 교류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47년 전 상황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미국 탁구 선수단 15명이 중국 마오쩌둥의 공식 초청으로 1971년 4월 10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핑퐁외교’가 그렇게 시작됐다고 말해도 되겠지만 실은 그건 리허설을 끝낸 뒤의 첫 ‘합동공연’ 같은 거였다. 앞서 갓 취임한 닉슨 대통령은 외교교서를 통해 ‘중공’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처음 예를 갖췄고, 3월 25일 미국 시민의 중국 여행을 합법화했다. 양국이 견제하고자 한 것은 소련이지만, 타이완에게는 비수를 가슴에 들이댄 것처럼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이후 대만은 국제무대에서 급격히 배제됐다.

양국 탁구 대표단은 한 달 전인 71년 3월 일본 나고야에서 제3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안면을 텄다. 66년 문화혁명이 본격화하면서 국제 탁구무대에서 사라졌던 중국은 70년 스칸디나비아 오픈에 다시 등장해 총 7개 종목 중 5개 종목을 석권했고, 저 대회에서도 4개 종목을 휩쓸었다. 소련을 견제하려던 미국으로선 새로운 외교 파트너 중국을 돋보이게 하는 데 탁구만한 게 없었다. 양국 탁구 기량의 격차가 워낙 커서 말 그대로 정서적 의미에서의 ‘친선’도 가능했을 것이다. 두 나라는 79년 1월 수교했다.

물론 그 상황이, 보이는 것처럼 역전됐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당시와 달리 지금의 미-중 경제ㆍ정치적 마찰은 트럼프라는 불안정한 동력으로 움직이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중 관계는, 천안문사태(89년)와 소련 해체(91년) 9ㆍ11사태(2001) 등을 겪으며 출렁이긴 했어도, 지금처럼 냉랭해진 적은 없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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