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원모 기자

등록 : 2018.05.20 14:03
수정 : 2018.05.22 09:49

해질녘, 자전거 탄 소년이 품에서 꺼내든 것은

[일미갤] 1959년 도쿄 아라카와 묻지마 살인사건

등록 : 2018.05.20 14:03
수정 : 2018.05.22 09:49

게티이미지뱅크

1959년 1월27일 오후 7시30분. 목조주택이 숲처럼 빽빽이 들어선 도쿄 아라카와(荒川)구 한 골목 어귀에서 한 소년과 소녀가 마주쳤다.소년의 행색은 평범했다. 검은 점퍼에 갈색 바지를 입고, 장화를 신고 있었다. 공장 일을 막 마치고 나온 모양이었다. 마침 소녀도 방과 후 공장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소년은 자전거를 타고 소녀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품에서 꺼내든 칼로 소녀의 왼쪽 가슴을 찔렀다. 소녀는 미처 반항할 새도 없이 길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거리가 소녀의 피로 흥건해졌다. 소년은 페달을 밟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쓰러진 소녀의 이름은 타나베 요시코(田辺喜子ㆍ당시 16세). 평범한 여중생이었다.

소년은 이날 오후 5시부터 2시간30분 동안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누비며 여성 9명을 더 난도질했다. 요시코는 이 참극의 마지막 피해자이자, 유일한 사망자였다. 소년의 칼부림에 여성 10명이 가슴, 어깨, 팔 등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여성들은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비슷한 점도 없었다. ‘묻지마’ 범죄였다. 경찰은 범인 검거에 자신감을 보였다. 피해자들 머릿속에 용의자의 인상착의가 정확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고, 검은 점퍼를 입은 10대 소년. 경찰은 신데렐라의 구두 주인 찾기처럼 이 몽타주에 들어 맞는 사람만 찾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오판이었다.

처음이 아니다?

피해자의 연령대는 8살부터 27살까지 다양했다. 범인은 나이와 상관 없이 혼자 걷고 있는 여성들을 마구잡이로 찌른 것으로 추정됐다. 소부 마사코(小部雅子ㆍ당시 17세)도 범인의 마수를 피하지 못 한 피해자였다. 소부는 빌린 책을 반납하러 27일 밤 아라카와의 한 책 대여점으로 향하던 중 문제의 골목에서 자전거를 탄 소년과 마주쳤다. 소년은 요시코와 마찬가지로 소부의 왼쪽 가슴을 칼로 찌르고 달아났다. 소부는 다친 가슴을 부여잡고 200m 가량 소년을 뒤쫓아갔다. 그러나 소년은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소부는 전치 1개월 진단을 받았다.

경찰은 묻지마 칼부림이 있기 6일 전, 골목에서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사실을 파악했다. 한 남성이 가위로 길가는 여성의 속옷을 자르거나 어깨를 찌르고 도망간 것이다. 사건은 하루가 아닌 3~4일 동안 연속적으로 벌어졌고, 피해자만 11명에 달했다. 하지만 당시엔 저급한 치한의 범죄 정도로 취급돼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다. 하지만 칼부림 사건이 발생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범행 수법의 유사성을 고려할 때 21일과 27일 범인은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범행 장소도 27일 사건과 겹치는 곳이 많았다.

경찰은 특히 두 사건의 범행 시간대에 주목했다. 모두 저녁 시간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 이는 범인의 생활방식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었다. 아무리 냉혈한, 강심장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근무시간까지 할애해 범행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범인은 낮에 일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수집한 사실과 피해자들 증언을 정리해 범인의 인상착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특정했다. ▦14~16세 남성 ▦공장 노동자 ▦낮 시간대 근무. 경찰은 범행 장소들을 꼭짓점으로 이어 범인의 거주지도 유추해보기로 했다. 그러자 한 소년이 용의선상에 포착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자전거를 좋아한 신탄집 아들

W(17)는 땔나무, 숯, 석탄 따위를 파는 신탄(薪炭)집 셋째 아들이었다. W의 부모가 운영하는 점포는 오쿠(おく)정 10번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범행 장소인 마치야(町屋)정 13가, 미카와시마(三河島)정 9가 등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모든 정황이 W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W는 평소 검정색 점퍼를 즐겨 입었다. 학교를 마치고 가게에서 일을 돕다 보면 금세 옷이 더러워졌다. 검정색 점퍼는 애초 색이 어두워 그럴 걱정이 없었다. W는 자전거도 즐겨 탔다. 신탄 배달을 하며 생긴 취미였다. W는 앞서 다친 몸으로 범인의 뒤를 200m나 쫓아갔던 소부의 증언에서도 등장했다. “한참 소년을 쫓다 놓친 곳에 신탄집이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 제가 따라갔던 소년과 비슷한 차림의 소년이 서 있었어요. 어머니랑 뭔가 열심히 얘기하고 있던데요.” 소부가 말한 신탄집이 바로 W 부모의 가게였다.

경찰은 W를 불러 27일 오후 행적을 조사했다. W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이케부쿠로에 있는 삼촌네 놀러갔다가 밤 11시쯤 돌아왔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알리바이를 입증할 증거는 없었다. 묻지마 골목 범죄는 30일에도 이어졌다. 한 피해자의 집으로 범인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편지에는 “너무 많이 떠들고 다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주민들은 방범대를 꾸려 자체적으로 범인 검거에 나섰다. 그러던 2월 4일. W부자가 “수사를 받으러 왔다”며 아라카와 경찰서를 제 발로 찾아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경찰은 W부자를 소환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 의미심장한 장난전화를 건 것이었다.

경찰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W부자를 돌려보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다시 W부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불안해서 도저히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보를 입수한 취재진이 W 부모 가게 앞에 모여 있었다. W부자는 경찰 도움을 받아 W를 당분간 학교 기숙사에 대피시키기로 했다. 그러자 취재진은 기숙사 앞으로 몰려들었다. 며칠 뒤, 아라카와 경찰서 수사 과장은 W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증거가 불충분하며 혐의 사실이 없다.” 소동은 그제야 일단락됐다.

공소시효 끝났지만…

사건은 1974년 공소시효가 만료되며 영구 미제사건이 됐다. 아라카와는 물론 주변 지역까지 떠들썩하게 만든 희대의 사건이었지만 마지막은 꽤 조용했다. W가 풀려난 뒤 추가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었을 정도로 수사가 진척되지 못한 탓이 컸다. 시간이 지나며 관심이 시들해진 탓도 있었다. 요즘에는 '5ch' 같은 현지 인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본 내 대표적 미제 사건으로 종종 언급된다. 범인은 W로 거의 확신하는 분위기다.

한편, 1959년 2월 일본의 영상 기업 주니치 영화사(中日映画社)는 해당 사건에 대한 뉴스 영상을 바탕으로 ‘뉴스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다. 뉴스를 한 편의 영화처럼 꾸며 소개하는 방식이다. 영상 제목은 ‘공포의 마을(恐怖の町)’이다. 분량은 3분 정도로 짧지만, 영상에는 딸을 잃고 절규하는 피해자 어머니의 모습 등이 담겼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송영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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