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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토머스 블러드(5.9)

입력
2018.05.09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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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범죄자으로 꼽히는 토머스 블러드가 1671년 오늘 왕관 등 영국 왕가의 보물을 훔쳤다.
희대의 범죄자으로 꼽히는 토머스 블러드가 1671년 오늘 왕관 등 영국 왕가의 보물을 훔쳤다.

크롬웰의 청교도 혁명으로 아버지(찰스 1세)가 단두대에 서고,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1660년 가까스로 왕위를 되찾은 찰스 2세의 반역 노이로제는 거의 병적이었다. 집권하자마자 우편국을 설립해 의심할 만한 이들의 편지를 노골적으로 검열했고, 암호 해독 전문가들까지 고용해 잔존 의회주의자들의 동태를 살폈다. 밀봉(wax sealed)된 편지를 흔적 없이 뜯었다가 붙일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한 것도 그의 기술자들이었다.

비밀 정보기구도 가동했다. 정보원들은 대부분 의회파에서 사면받고 전향한 이들이었지만, 범죄자들도 적지 않았다. 왕관과 왕홀을 훔치다 체포된 토머스 블러드(Thomas Blood, 1618~1680)도 그중 한 명이었다.

블러드는 1671년 5월 9일 목사로 변장해 왕가의 보물을 보관하던 런던타워 지하 창고에서 이 물건들을 훔쳤다. 먼저 창고지기와 안면을 트고 자녀 혼사를 주선하는 척하며 접근한 그는 함께 간 아들 등 공범 세 명과 함께 목봉으로 창고지기를 제압했다. 그들은 왕관을 우그리고 왕홀을 잘라 감춰 경비병의 감시를 피했지만, 도주 중 체포됐다.

아일랜드 출신인 그는 내전 초기 찰스 1세의 군인으로 복무하다 패색이 짙어지자 크롬웰 군으로 전향한 전력이 있었다. 1653년 혁명 성공 후 봉토를 받았지만 왕정복고로 가산을 잃었고, 옛 동지들과 더블린 성을 공략하려다 사전에 정보가 새는 바람에 네덜란드로 도망을 갔다. 1670년 다시 귀국해 더블린 성주(Duke of Ormonde)를 납치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그의 왕관 절도는 영국 범죄사에서 가장 대담한 사건으로 꼽힌다.

그는 언변이 빼어났다고 한다. 누범으로 사형될 운명이었던 그는 찰스 2세를 설득, 사면과 함께 연봉 500프랑의 급료를 받는 비밀 정보요원이 됐다. 하지만 한때 상전이던 귀족(Duke of Buckingham)을 모욕한 혐의로 1만파운드 배상 판결과 함께 1680년 다시 투옥됐고, 그 해 8월 옥사했다. 배상금을 떼어먹으려고 죽음을 가장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무덤을 파서 확인까지 했다는 기록이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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