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제천 화재 참사] "유리가 안 깨져... 여보 여보,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

알림

[제천 화재 참사] "유리가 안 깨져... 여보 여보,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

입력
2017.12.22 16:56
3면
0 0

비극의 현장…안타까운 사연

대피 도우며 분명히 봤는데…

앞서 가던 아내는 주검으로

노모ㆍ딸ㆍ손녀 단란했던 3대

오랜만에 목욕탕 찾았다 참변

맞은편 헬스장서 운동하던 60대

손도 못 쓰고 부인 잃어

22일 오후 29명 사망자를 낸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서 사망자 지인들이 모여 눈물을 흘리고 있다. 류효진 기자
22일 오후 29명 사망자를 낸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서 사망자 지인들이 모여 눈물을 흘리고 있다. 류효진 기자

“당연히 아내가 먼저 탈출했을 줄 알고 저도 빠져 나왔는데…”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노블 휘트니스 스파에서 발생한 화재로 동갑내기 아내 장경자(64)씨를 잃고 다음날 제일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린 김인동씨 얼굴엔 비통함이 가득했다. 전날 오후 2시50분쯤 아내와 함께 헬스장을 찾은 뒤, 50분쯤 지났을까. 그는 불이 났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뛰쳐나가던 중 아내가 앞서가고 있는 것을 봤고, ‘아내가 무사히 탈출할 것’이라 생각했다.

헬스장이 있는 4층에서 2층으로 내려오니 목욕탕에서 뛰쳐나오는 여성들이 보였고, 김씨는 이들을 구조해야겠단 의무감에 여성 6, 7명을 창 밖으로 던져 탈출을 도왔다. 순식간에 연기가 그를 덮치며 정신이 몽롱해졌고 ‘죽는구나’ 싶을 때쯤 그도 창 밖으로 뛰어 내렸다. 당연히 바깥에 있을 것이라 여겼던 아내는,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하니 “망치로 유리를 깨려는데 안 깨진다”고 했다. 아내는 오후 8시13분,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는 게 수화기 너머로 아내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화마는 29명(22일 오후 4시 기준) 목숨을 앗아갔다. 사망자는 제천 일대 서울병원, 명지병원, 제일장례식장, 세종장례식장, 보궁장례식장에 분산, 안치됐다. 장례식장에 마련된 대기실과 분향소 등에서 뜬눈으로 밤을 보낸 유가족은 갑작스런 비극 앞에 오열하고 통곡했다. 기력을 잃고 바닥에 주저 않는 이도 여럿이었다.

노모와 딸, 손녀 3대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참사도 벌어졌다. 경기 용인시에 사는 민윤정(49)씨는 딸 김지성(18)양과 함께 친정어머니 김현중(80)씨가 거주하는 제천을 찾았다. 평소에도 사이가 좋았던 3대는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목욕탕을 찾았다 비극을 맞았다. 김양은 올해 서울 4년제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유족 박병준(47)씨는 “조카가 꿈도 펼치지 못하고 죽은 게 너무 안쓰럽다”며 “자주 여행을 가는 단란한 가정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내가 있는 건물이 불길에 휩싸여 있는 것을 눈 앞에서 보면서도 손을 쓸 수 없었던 남편 사연도 안타까움을 더했다. 화재로 숨진 박모(68)씨 남편 김모(69)씨는 세종장례식장에서 딸을 끌어안고 “이렇게 갈 줄은 몰랐다”며 목놓아 울었다. 평소 오전에 헬스장을 이용하던 박씨는 이날 이례적으로 오후에 방문했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화재가 난 건물) 맞은편에 있는 건물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하고 있는데 불이 나는 게 보였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기침을 콜록콜록 하다 끊고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미칠 것 같았다”고 당시 심정을 전하며 “아내 칠순을 맞아 4월 제주 여행을 예약해놨는데 죽어서 못 가게 됐다”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세 자녀를 슬하에 둔 최순정(46)씨는 큰딸이 동생 대학 입학을 기념해 준비한 가족여행을 앞두고 변을 당했다. 최씨 영정 사진이 명지병원장례식장에 도착하자 가족 20여명은 고인을 부르며 통곡했다. 시어머니는 “낮에는 급식소에서 조리 일을 하고, 밤에는 아들과 함께 대리운전을 하며 알뜰살뜰 살아온 막내 며느리가 이렇게 갈 거라곤 꿈에도 상상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씨 남편은 “화재 직후 세 번째 전화통화를 하는데… 아내가 쓰러진 것 같더라”며 “그걸 알면서도 차마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평소 효심이 깊던 대학생 첫째는 두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휴학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천=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제천 화재로 사망한 장경자(64)씨 아들이 21일 화재 당시 어머니와 통화한 기록. 강진구 기자
제천 화재로 사망한 장경자(64)씨 아들이 21일 화재 당시 어머니와 통화한 기록. 강진구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