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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짝사랑

입력
2017.04.0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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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주자들은 너나 없이 본인이 다가오는 4차 산업시대에 적합한 리더임을 강조하며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설익은 공약들을 쏟아 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관료들은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정책을 개발해 차기 정권에서도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진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초연결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처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4차 산업혁명을 놓고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는 관련 부처들의 모순된 모습을 보고 있으면, 2차 산업혁명의 틀 속에서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이 지난해 1월에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정의하고 4차 산업혁명이 만들어 낼 사회 각 영역의 변화를 언급한 이후,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이 저성장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 믿으며 4차 산업혁명의 광신도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거둔 완승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부추겼다.

18세기 후반에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시작되어 한 세기 동안 진행된 1차 산업혁명은 공장식 생산체제를 만들었고, 20세기를 전후해서 반세기 동안 진행된 2차 산업혁명은 전기동력을 기반으로 대량 생산체제를 만들어 냄으로써 인류 역사상 경험해 보지 못한 경제성장과 인구 증가의 원인을 제공했다. 식민지 무역으로 축적된 자본과 계몽주의 사상으로 꽃 피운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1, 2차 산업혁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고 난 후 수십 년이 지나서야 정의되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3차 산업혁명은 컴퓨팅 기술 기반의 자동화된 생산체제를 선 보였으며,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으로 요약되는 4차 산업혁명의 기반 기술도 실은 3차 산업혁명의 기반인 컴퓨팅 기술의 갈래일 뿐이다. 그리고 3차 산업혁명의 자동화된 생산체제와 4차 산업혁명의 자율화된 생산체제의 구분도 모호하다. 그래서 좀 더 기술의 진보와 그 기술의 진보가 만들어 내는 변화를 경험하고 4차 산업을 정의해도 늦지 않을 듯 하다.

물론 시장에 소개되는 신기술이 만들어 내고 있는 사회 각 영역의 변화를 간과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저성장 기조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몸부림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지금처럼 대선 주자들과 정부는 홍보성 정책을 쏟아 내고 기업들은 문제 해결을 통해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투자가 아닌 경쟁열위를 피하기 위한 묻지마 식 투자를 이어 간다면 다가올 변화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도 경쟁력을 확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3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정보화시대가 열리면서 우리는 지난 10여 년간 시장 곳곳에서 전자(electronic)와 유비퀴터스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의 첫 영문 철자를 딴 이씨(e-)와 유(u-)씨 성을 가진 수많은 정책과 상품을 질리도록 봐 왔다. 통신인프라에 대한 정부 주도의 과감한 투자로 인터넷 강국이 되었지만, 관련 시장을 육성해서 보다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데는 실패했으며 국제경쟁력을 갖춘 인터넷 기반의 기업은 하나도 키워 내지 못했다.

제대로 정의도 되지 않은 4차 산업혁명을 미케팅적으로 활용하는 데 열을 올리기보다는 편의점 열거식 사고를 버리고 뚜렷한 방향성을 가진 정책과 투자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려면, 우선 2차 산업혁명의 관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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