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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신흥3국] 재선 위해 저금리 고집 ‘에르도안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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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신흥3국] 재선 위해 저금리 고집 ‘에르도안 리스크’

입력
2018.05.31 16:53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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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흔들리는 술탄 경제’ 터키

# “지난해 성장률 7.4% 달했지만

올해 모든 경제지표서 경고음”

# 자금 해외유출... 리라화 가치 급락

물가도 4개월 만에 10% 뛰어

정치적 분열 탓 대응도 어려워

한 상점 주인이 23일 이스탄불에서 좀체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가게 앞을 지키고 있다. 이스탄불=AP 연합뉴스
한 상점 주인이 23일 이스탄불에서 좀체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가게 앞을 지키고 있다. 이스탄불=AP 연합뉴스
사람들이 23일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환전소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이스탄불=AP 연합뉴스
사람들이 23일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환전소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이스탄불=AP 연합뉴스

“물가가 높고, 이윤도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더 큰 일이 닥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대통령을 바꾼다고 나아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주방 용품 도매업자 메흐멧 컬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친이슬람주의의 정의개발(AK)당이 주세(酒稅)를 부과한데다가 리라화가 폭락해 수입산 위스키를 더 이상 사들일 수 없게 됐어요. 가게 문을 닫고 취업을 준비할 생각인데, 문제는 메르신에 근무할 만한 공장이 없다는 거죠. 경제에 관해서는 정부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계속 에르도안 대통령을 찍어왔지만,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누굴 선택할 지 결정하지 못했습니다.”(담배ㆍ주류 판매점 운영자 네딤 카라카스)

터키 중부 해안 도시 메르신에 거주하는 컬트와 카라카스는 블룸버그에 최근 악화된 그들의 살림살이에 대해 각각 이렇게 말했다. 리라화 가치가 하락하고 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등 위기에 처한 터키는 국론마저 분열된 모습이다.

3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성장률이 7.4%에 달했던 터키가 올 들어서는 모든 경제지표에서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로 자금이 대거 해외로 유출되면서 리라화는 달러당 4.87리라(5월23일 기준)까지 치솟았다. 2014년(평균 2.19리라)은 물론이고 지난해(3.65리라)와 비교해도 가치가 크게 하락한 것을 볼 수 있다.

고물가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터키의 소비자물가는 11.14% 상승했지만, 올 들어서는 4개월만에 10%가 넘었다.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 생기는 경상수지 적자도 지난해 3월 기준 31억2,000만달러에서 올해 3월(48억1,200만달러)로 17억달러 가량이 늘었다.

터키 경제가 흔들리는 건 단기자금을 외채에 의존하는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FT는 “터키는 대출 상환과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외부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데, 대부분이 ‘핫머니’(국제금융시장의 단기성 자금)’”라며 “핫머니는 정치적 경제적 충격으로 투자심리가 바뀔 경우 빨리 증발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분석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9일 이스탄불 인근의 초를루에서 열린 선거 유세 현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초를루=AP 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9일 이스탄불 인근의 초를루에서 열린 선거 유세 현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초를루=AP 연합뉴스

더욱 심각한 건 곧 대선을 치러야 하는 정치변수 때문에 위기 상황에 정공법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대선 승리를 위해 유권자들에게 당장 욕을 먹는 금리ㆍ물가 인상조치에 소극적이다. 실제로 지난주 터키 중앙은행이 환율 방어를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했지만, 전문가들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영국 경제분석기관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우리는 긴급 금리 인상이 최소한의 것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고, 워싱턴포스트(WP)는 “아르헨티나의 경우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연 27.5%였던 기준금리를 연 40%까지 올리는 극약처방을 썼지만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며 “국제금융시장은 터키 중앙은행의 조치가 충분하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전했다. WP는 “(선거를 앞둔) 에르도안 대통령은 높은 금리가 물가 상승을 이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터키의 경제가 회복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현재로선 비관적 전망이 더 우세하다. 터키에서 유통사업을 하고 있는 한 경영인은 FT에 “1990년대 말 금융 위기 당시 한 모임에 들어갔다 몇 시간 후 나오자 회사 가치가 75%나 하락한 경험이 있다”며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지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그 땐 터키가 최소 통합된 국가였지만 지금은 정치적으로 너무 분열됐다”고 우려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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