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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는 왜 쿠르디스탄ㆍ카탈루냐에 냉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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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는 왜 쿠르디스탄ㆍ카탈루냐에 냉정한가

입력
2017.09.3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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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5일 쿠르디스탄 독립 주민투표가 92%의 지지로 마무리된 데 이어 10월 1일에는 스페인 카탈루냐주가 독립 주민투표를 앞두고 있다. 분리독립파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하지만, 세계 각국은 이들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독립파는 제1차 세계대전 이래 국제법에 포함된 ‘민족 자결권’을 행사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민족 독립의 역사적인 정당성도 설파하고 있지만, 이미 수립된 주권국가의 법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또 다른 국제법 원칙 때문에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카탈루나 주민들이 29일 주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분리독립 주민투표 찬성 집회에 참석해 카탈루냐주 깃발을 흔들고 있다. 바르셀로나=AP 연합뉴스
카탈루나 주민들이 29일 주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분리독립 주민투표 찬성 집회에 참석해 카탈루냐주 깃발을 흔들고 있다. 바르셀로나=AP 연합뉴스

투표 앞둔 카탈루냐도, 마친 쿠르디스탄도 긴장 고조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이틀 앞으로 다가온 29일(현지시간) 스페인 중앙정부와 카탈루냐 주정부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고 있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불법화된 투표의 진행을 막겠다고 선언했고 공권력을 동원해 투표소로 예정된 장소를 폐쇄하고 있다. 주정부의 오리올 훈케라스 부지사를 비롯한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장들은 “투표소 2,315개를 확보했으며 투표가 1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이상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25일 이미 독립투표를 마치고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고 발표한 이라크 쿠르디스탄도 이라크 바그다드 중앙정부의 집중 압박을 받고 있다. 이라크 정부의 선언에 따라 29일부터 쿠르디스탄 지역을 오가는 비행기는 전면 차단됐다. 이라크 정부는 뒤이어 이란ㆍ터키와 협력해 쿠르디스탄 지역의 이라크 국경 통제권을 되찾아오겠다고 선언하는 등 압박을 강화했다. 이에 마수드 바르자니 쿠르드 자치정부 수반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바할 알리 공보국장은 “이 조치들은 임시적일 것이라 믿는다. 전환은 평화적이어야 한다”면서도 “바그다드(중앙정부)가 공격적 태도를 고수한다면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쿠르디스탄과 카탈루냐에 이렇다 할 지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이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명의로 “쿠르디스탄 독립투표를 승인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쿠르디스탄 독립을 공개 지지한 국가는 이스라엘뿐으로,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터키 등 중동 강국 모두 독립투표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틸러슨 장관은 쿠르디스탄 자치정부와 이라크 정부 모두를 향해 “상호 비난과 보복성 행동의 자제를 촉구”했다. 쿠르드군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집단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 나선 핵심 동맹 중 하나인 점을 의식한 것이다.

서구는 쿠르드에 우호적이지만 중동 강국들은 쿠르드 민족국가의 등장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쿠르드 독립을 섣불리 지지했다 자칫하면 ‘동서대립’으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미 28일 “또 다른 아라비아의 로런스(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투르크에 대항해 아랍 봉기를 지원한 영국 장교)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발언, 쿠르드 분리독립 운동이 서구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시선을 던진 바 있다.

유럽 국가들은 카탈루냐 독립 투표에는 철저히 말을 아끼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 국민투표의 충격을 수습하고 있는 EU 입장에선 영국의 스코틀랜드, 벨기에의 플랑드르 지방, 덴마크의 페로 제도 등 여타 독립 추구 지역을 자극할 행동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이 사건을 “스페인 국내 정치 문제”로 대우했다.

29일 이라크 북부 쿠르디스탄 자치구의 에르빌에 있는 에르빌 국제공항에서 쿠르드인들이 이라크 정부의 쿠르디스탄 자치구 국제 비행 노선 차단 방침에 항의하는 ‘풍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에르빌=EPA 연합뉴스
29일 이라크 북부 쿠르디스탄 자치구의 에르빌에 있는 에르빌 국제공항에서 쿠르드인들이 이라크 정부의 쿠르디스탄 자치구 국제 비행 노선 차단 방침에 항의하는 ‘풍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에르빌=EPA 연합뉴스

영토 보전권 대 민족 자결권

카탈루냐와 쿠르디스탄이 강렬한 의지를 표명했음에도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두 독립파가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고 평하며, 이는 현대 국제법의 모순된 두 원칙이 충돌해서 발생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하나는 ‘국경은 절대적이다’라는 원칙이고 또 하나는 ‘국민은 스스로의 정치적 지위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원칙이다. 전자는 영토 보전권(또는 주권), 후자는 민족 자결권으로 불린다.

이미 수립된 주권 국가 내 특정 분파가 독립을 선언할 경우, 민족 자결권에 의거해 그 선언은 지지를 받아야 하지만 영토 보전권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주권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다. 이 때문에 국제법상 분리독립을 다루는 제도나 규정은 공백지로 남아 있다. 크리스 보건 세인트존스대 법학교수는 우크라이나와 크리미아의 분리 논쟁이 한창이던 2014년 “분리독립은 권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법도 아니다”라고 요약했다.

결국 독립파는 주권 국가인 본래 자국 정부의 주권을 우회하고 국제적으로 더 중시되는 가치를 내세워 독립을 추구해야 한다. 예를 들면 해당 주권국으로부터 중대한 인권 침해 혹은 박해를 받고 있음을 주장하거나, 주변 강대국의 지지를 받아 자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 최종적으로 자국 정부의 승인을 얻어 낼 수 있다. 카탈루냐와 쿠르디스탄 분리독립 운동은 모두 스페인과 이라크 중앙정부에 철저히 부정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 강대국의 지지도 끌어들이지 못했다.

29일 카탈루냐 독립 주민투표 유세에 참석한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주지사가 “주민투표”라 적힌 글자를 앞에 두고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바르셀로나=AP 연합뉴스
29일 카탈루냐 독립 주민투표 유세에 참석한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주지사가 “주민투표”라 적힌 글자를 앞에 두고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바르셀로나=AP 연합뉴스

그럼에도 이들의 독립투표에 힘이 없다고 말하기는 섣부르다. 미네소타대학의 정치학자 타니샤 파잘은 이를 ‘분리주의자의 딜레마’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유엔 체제가 수립된 이래 국제사회는 일방적인 분리 독립 선언을 싫어하기 때문에 분리주의자들은 섣불리 독립을 선언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리독립파가 국제사회의 규칙을 충실히 따른다고 그들이 원하는 독립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면) 분리주의자가 득세하는 시점이 오기 마련”이라고 적었다. 결과적으로 중앙정부가 탄압하고 국제사회가 외면한다고 해서 이들의 독립투표 자체의 정당성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각국 정부가 독립투표 반대 또는 중립을 고수하고 있는 것과 달리 서구 언론은 스페인과 이라크 중앙 정부의 일방적인 압력이 사태를 악화시킬 것이라며 이들이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사이먼 젠킨스는 “중앙 정부가 지방의 분리주의에 민감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나 민주주의란 근본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통치임을 생각해야 한다”며 “무력 충돌이나 국가 분할까지 가는 극단적 상황을 피하려면 정부가 협상을 통해 지방과 합의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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