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반석 기자

등록 : 2017.11.13 20:00
수정 : 2017.11.13 22:54

호기심에 클릭했다가 ‘몸캠 노예’ 된 청소년들

등록 : 2017.11.13 20:00
수정 : 2017.11.13 22:54

“영상통화 해요” 채팅앱 기승

악성앱 설치 유도해 연락처 빼내

“지인들에게 알몸 영상 유포” 협박

사이버 호객 등 범죄 가담시켜

피해학생 “두려워… “자살 충동”

현행법으로 규제 못해 단속 손 놔

인권센터 등 고발에도 ‘불기소’

“저랑 (음란) 영상통화 하실래요?” 고등학생 A군은 최근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만난 B씨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자기소개에 사는 곳과 이름, 사진을 당당히 올린 모습에 별의심 없이 응한 A군은 영상에도 여성이 등장하자 “소리가 안 들리니 앱을 설치하라”는 상대 요구를 흔쾌히 들어줬다. 그러나 3분 간 영상통화가 끝난 직후 악몽이 시작됐다. B씨는 앱을 통해 빼돌린, A군 휴대폰에 내장된 연락처 전체 목록을 보내며 “통화 중에 알몸을 찍었다. 돈 주고 합의할래, 지인들에게 (영상을) 유포할까” 협박했다. “학생이라 돈이 없다”는 A군에게 B씨는 “매일 랜덤채팅 앱에 들어가 여성인 척하며 호객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견디다 못한 A군은 경찰서에 신고했지만, 영상이 유포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접근해 알몸 영상이 찍히게 한 뒤 동영상 유포를 빌미로 협박, 범죄에 동원하는 ‘몸캠 노예’ 피해가 늘고 있다. 성인 남성의 휴대폰에 악성코드를 심어 전화번호부를 빼돌린 후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금품을 뜯어내던 기존 ‘몸캠피싱’과 달리, 청소년 대상 몸캠 노예는 범행도구로 활용하려는 목적이 다분하다. 청소년들은 호기심에 클릭 한 번 했다가 가족이나 학교에 영상이 퍼질까 두려워 범죄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장기간 범죄 행위에 가담하거나 학교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지난달 몸캠피싱 피해를 당한 고등학생 C군은 일부 금액을 입금했음에도 3주간 몸캠 노예 생활을 했다. “유튜브에 알몸 영상을 올린 후 지인들에게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라며 “매일 새벽 2시까지 랜덤채팅 앱 수십개를 이용해 사이버 호객에 나섰다”고 털어놨다. 고등학생 D군은 “창피해서 학교에 가는 게 두려워졌고 거듭된 협박에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고 말했다.

경찰청이 2015년 8월부터 집계한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15년 102건에 불과했던 몸캠피싱 발생은 지난해 1,193건으로 급증했다. 반면 범죄가 교묘해지면서 검거 건수는 이에 미치지 못하는 형국이다.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 신고를 피하는 경우가 잦아 실제 발생 건수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디지털정보삭제 전문가 이덕영(코드네임 제로)씨는 “최근 랜덤채팅 앱에서 몸캠피싱에 동원되는 청소년들이 급증하고 있다”라며 “일주일간 접수된 유사 사례만 5건”이라고 했다.

정작 관계당국은 현행법상 채팅 앱 자체를 규제하거나 운영자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아 랜덤채팅 앱 단속에 손을 놓고 있다. 십대여성인권센터 등 255개 시민단체가 채팅 앱 운영자들을 아동ㆍ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고발했지만,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검은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시민단체들은 “성범죄 조장 앱에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하며 검찰 결정에 항고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로선 악성코드가 의심되는 앱은 절대 설치하지 않는 등 채팅 앱 이용자들이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범죄조직은 가족 학교 등 단계별로 협박 수위를 높이며 끊임없이 금품을 요구하므로, 어떠한 요구에도 응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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