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의 아이러니의 하나로 ‘행복추구권’을 꼽을 수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진 불가침의 기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 10조(당시에는 9조)는 8차 개헌 때 신설됐다. 1980년 10월27일 서슬 푸른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이다. 총구로 권력을 잡고 정치, 사회를 망라한 전 분야에서 기본적 권리를 억압하던 암흑기에 국민 기본권의 하나로 행복추구권을 넣은 것은 ‘미사여구’ 이상의 의미가 아니었을 게다.
▦ 당시 헌법 개정을 맡았던 법학자들이 참고했을 터이듯, 미국의 국부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한 1776년 독립선언서는 ‘창조주로부터 부여 받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 그 가운데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며 행복추구권을 천부인권의 하나로 들었다. 계몽주의시대 사상가 존 로크의 사회계약설이 기본권으로 내세운 생명 자유 재산에서, 재산을 행복추구로 살짝 바꾸었다는 게 정설이다. 행복추구권을 명시한 역사적 첫 걸음이지만, 정작 미국 헌법에서는 빠졌다. 오늘날 행복추구권을 명시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 몇 나라 안 된다고 한다.
▦ 행복이 주관적이고도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개념이란 점도 한 배경이다. 국가ㆍ사회로부터 침해 받지 않을 소극적 권리냐, 행복한 삶의 실현을 요구할 수 있는 적극적 권리냐는 성격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다만 민주화 이후 환경권은 물론이고 흡연권, 쇼핑할 권리 등 행복추구권에 기댄 소송이 다방면에서 봇물 터진 듯하다. 행복이 추상적 미사여구가 아니라 구체적 ‘실체’로서 고개를 들고 있다. 35년 전 권력의 성격과 전혀 다른 권리 하나가 헌법이란 연못에 던져져 일으킨 파문이 곳곳으로 번지고 있는 셈이다.
▦ 한국일보의 행복 여론조사에서 노년층의 행복감이 나라 별 비교에서도 그렇고, 국내 각 세대 별 비교에서도 상대적으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요인을 꼽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경제 문제가 가장 클 것으로 짐작된다. 노후 준비는 제대로 하지 못한 반면 과거처럼 자식들이 부모 봉양을 제대로 하지 않는 세태의 변화가 상대적 박탈감을 키웠을 성싶다. 노년층이 행복추구권을 들어 국가와 자식들을 상대로 소송이라도 제기해야 조금이라도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까.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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