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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지성을 만든 인생연기 4

입력
2017.02.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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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은 현재 SBS '피고인'에서 검사에서 사형수로 나락에 떨어진 박정우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SBS 제공
지성은 현재 SBS '피고인'에서 검사에서 사형수로 나락에 떨어진 박정우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SBS 제공

답답한 전개로 ‘고구마 드라마’라는 오명까지 쓴 SBS ‘피고인’이 예상 밖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14일 방송이 시청률 22.2%(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하며 같은 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경쟁 드라마인 KBS2 ‘화랑’의 시청률(7.7%)과 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의 시청률(10.6%)을 합한 것보다 더 높은 시청률이다.

트렌디한 화면 구성과는 거리가 멀다. 요즘 유행하는 ‘사이다’ 전개도 아니다. ‘피고인’은 딸과 아내를 죽인 누명을 쓰고 사형수로 전락한 검사 박정우가 잃어버린 4개월간의 기억을 추적하고 진실을 밝히는 복수극이다. 감방 장면은 영화 ‘7번방의 선물’을, 탈옥한다는 설정은 미국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를 연상케 한다.

진부한 설정과 무거운 분위기에도 ‘피고인’이 인기를 끄는 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카타르시스에 대한 갈증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상황이 극으로 치달으면서 마지막 반전에 대한 궁금증이 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처절한 지성의 감정 연기가 한몫 했다. 14일 방송에서 지성은 사건 당일의 기억을 찾은 후 비명을 지르며 가족을 잃은 상실을 표현해 ‘로맨스 전담 배우’라는 꼬리표를 떼어냈다. 1999년 SBS ‘카이스트’의 풋풋한 대학생은 어떻게 재벌남(SBS ‘올인’)을 거쳐 사형수(SBS ‘피고인’)가 됐을까. 오늘날 지성을 만든 인생 연기를 되돌아봤다.

지성은 SBS '올인'에서 조연을 맡았다. 이 드라마 이후 그는 스타덤에 오른다. SBS 방송화면 캡처
지성은 SBS '올인'에서 조연을 맡았다. 이 드라마 이후 그는 스타덤에 오른다. SBS 방송화면 캡처

1. SBS ‘올인’ (2003)

신인이던 지성을 단숨에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도박 세계의 사랑과 성공을 그린 ‘올인’은 당시 도박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톱스타들의 열연으로 최고 시청률 47.7%를 기록했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주연인 배우 이병헌과 송혜교를 받쳐주는 조연 최정원 역을 맡았다. 재벌 아들인 최정원은 아버지의 부도덕한 모습에 실망해 반항하다가 김인하(이병헌)와 친해진다. 그러나 자신이 저지른 사건 때문에 김인하가 수감되자 죄책감을 느끼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이후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은 최정원은 김인하와 다시 만나 사랑과 성공을 두고 삶의 경쟁을 벌이게 된다.

이미 톱스타 주연 사이에서 신인배우가 노련하게 연기하기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성은 드라마 캐스팅 과정부터 패기를 보였다. 당초 캐스팅에 난항을 겪고 있던 제작진에게 직접 찾아가 “그 역할을 달라”고 부탁했고 ‘올인’의 유철용 PD는 지성의 모습에 마음이 움직여 그를 캐스팅했다. 이 같은 열정은 드라마를 촬영 할 때도 여지없이 발휘됐다. 지성은 최정원을 부드러우면서도 남성미까지 갖춘 인물로 해석해 그 해 SBS 연기대상에서 생애 첫 연기상을 수상했다. ‘올인’이 일본 NHK에도 방송되면서 그는 한류스타 이미지도 구축하게 됐다.

지성은 MBC '뉴하트'에서 지방 신설 의과대학 출신으로 서울 명문 대학인 광희대학의 흉부외과에 입사한 의사 이은성을 연기했다. MBC 방송화면 캡처
지성은 MBC '뉴하트'에서 지방 신설 의과대학 출신으로 서울 명문 대학인 광희대학의 흉부외과에 입사한 의사 이은성을 연기했다. MBC 방송화면 캡처

2. MBC ‘뉴하트’(2007)

“넌 교수 무서워 해, 난 환자 무서워 할 테니까”

꼬불거리는 머리에 발랄한 성격, ‘꼴찌’ ‘꼴통’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남자. 그래도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투철한 직업 정신이 발휘된다. MBC 드라마 ‘뉴하트’ 속 이은성(지성)은 지방에 새로 생긴 의과대학 출신이다. 소년의 집 출신으로 험난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내색하지 않고 명랑한 성격을 과시한다.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는 확고한 신념 덕분에 서울 명문 대학인 광희대학 부설 병원의 흉부외과까지 들어오게 된다.

지성은 이 작품에서 반듯하고 진중한 이미지를 벗었다. 풍성한 머리에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여심을 공략했다. 이은성은 홈쇼핑을 좋아하고 커피 전문점보다는 자판기 커피를 선호하는 남자 캔디형 캐릭터였다. 여자친구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그룹 빅뱅의 ‘거짓말’, 김종국의 ‘사랑스러워’ 안무 정도는 항상 준비돼 있다.

여기에 지방 출신이라 겪는 차별과 치료 윤리를 두고 상사와 겪는 대립을 돌파해나가는 반전 매력이 공감을 샀다. 혈기흉으로 쓰러진 환자를 살리기 위해 급하게 응급처치를 했다가 흉부외과 부교수 김태준(장현성)에게 “감히 인턴 나부랭이가 흉관을 꽂냐”며 혼나자, “환자가 죽어 가는데 보고만 있을 순 없는 거 아니냐”며 반발하는 장면에서 ‘사람이 먼저’인 이은성의 직업관이 잘 드러난다.

지성(왼쪽)은 KBS2 '비밀'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복수를 꿈꾸는 재벌을 연기했다. KBS2 방송화면 캡처
지성(왼쪽)은 KBS2 '비밀'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복수를 꿈꾸는 재벌을 연기했다. KBS2 방송화면 캡처

3. KBS2 ‘비밀’(2013)

사랑하는 여자가 교통사고로 숨지자 그를 죽게 한 여자 강유정(황정음)에게 복수심을 품는 재벌총수의 후계자 조민혁(지성). 그러나 자신의 오해였음을 깨닫고 강유정과 새로운 사랑에 빠진다. 까칠하고 제멋대로지만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재벌 이미지는 2000년대 초반부터 많이 나온 고전적인 캐릭터다. 자칫 진부한 신파극으로 묻힐 뻔한 드라마를 살린 건 지성의 열연이었다.

지성은 사랑하는 여자가 죽었을 때 실의에 빠진 모습을 절절하게 그려 공감을 끌어냈다. 뺑소니범이 강유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후에는 눈물이 맺힌 채 실성한 듯 웃어 감정을 극적으로 표출했다. SBS ‘보스를 지켜라’(2011) 등을 통해 젠틀한 이미지를 구축한 지성이 복수심에 불타는 남자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작품이라 더욱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지성은 MBC '킬미, 힐미'에서 7개의 인격을 가진 다중인격자를 연기했다. MBC 방송화면 캡처
지성은 MBC '킬미, 힐미'에서 7개의 인격을 가진 다중인격자를 연기했다. MBC 방송화면 캡처

4. MBC ‘킬미,힐미’ (2015)

차도현, 신세기, 페리박, 안요섭, 안요나, 나나, 의문의 인격X…

한 작품에 무려 7명을 연기했다. 지성은 ‘킬미, 힐미’에서 해리성 인격 장애를 앓는 재벌 3세 역을 맡아 7개의 다중인격 연기를 펼쳤다. 단순히 다중인격자의 ‘원맨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몸보다 마음이 아픈 현대인들에게 정신적인 상처의 근원과 치유 방법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지성은 2015년 1월 서울 상암동 MBC에서 진행된 제작박표회에서 “이 드라마는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진실된 격려와 따뜻한 위로, 사랑 등을 제시하고 있다”며 드라마의 주제를 밝히기도 했다.

7개의 인격을 다채로우면서도 산만하지 않게 표현해야 했다. 잘생기고 능력 좋은 ID엔터테인먼트의 부사장 차도현은 갑자기 안하무인에 반사회적인 신세기로 돌변한다. 오리진(황정음)에게 “기억해. 내가 너에게 반한 시간”이라며 느끼한 대사를 던지다가도 다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40대 페리박으로 변신한다. 후에 차도현은 오리진의 도움을 받아 인격들이 하나씩 소멸되며 상처가 치유된다. 40대 남자부터 7세 여자아이까지 다양한 세대의 인격을 소화한 지성은 캐릭터 해석에 대한 능력을 인정받아 그 해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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