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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돌' 된 이세돌 9단의 인생 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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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돌' 된 이세돌 9단의 인생 복기

입력
2016.03.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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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권유로 5세 때 바둑 입문

9세 때 전남 비금도서 서울 유학

불과 12세에 ‘별따기’ 프로 입단

2002년 “승단대회는 불합리”

2009년 “기보 저작권료 권리 미흡”

휴직계 제출ㆍ잠적으로 파문

반상 복귀 후 거침없는 상승세

알파고와 대국에 지구촌 감동

이세돌 9단 집안은 바둑 가족으로 유명하다. 1995년 전남 신안 비금도 고향집에서 촬영한 가족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어머니 박양례씨, 아버지 고 이수오 아마 4단, 둘째 누나 이세나 아마 6단, 큰형 이상훈 9단 , 작은형 이차돌 아마 5단, 이세돌 9단. 한국기원 제공
이세돌 9단 집안은 바둑 가족으로 유명하다. 1995년 전남 신안 비금도 고향집에서 촬영한 가족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어머니 박양례씨, 아버지 고 이수오 아마 4단, 둘째 누나 이세나 아마 6단, 큰형 이상훈 9단 , 작은형 이차돌 아마 5단, 이세돌 9단. 한국기원 제공

‘괴짜, 마왕, 왕따, 쎈돌, 야생마, 풍운아.’

인공지능(AI) 알파고(AlphaGo)와 ‘세기의 대국’을 펼치며 전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킨 프로 기사 이세돌(33) 9단에게 항상 따라 붙는 별명이다. 하나 같이 예사롭지 않은 애칭들은 굴곡이 많았던 그의 삶을 압축하고 있다. 정석에도 없고 족보에도 없는 ‘덜컥수’로 보는 이를 당황하게 했던 알파고처럼 이 9단도 예측할 수 없는 ‘변칙수’의 삶을 이어왔다. 바둑계의 반항아 ‘쎈돌’에서 한층 성숙해진 ‘국민돌’로, 이젠 ‘월드스타’가 된 이 9단의 반상(盤上) 인생을 복기한다.

이세돌 9단이 1991년 열렸던 한ㆍ중ㆍ일 국가 바둑 교류전에 참가해 바둑을 두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이세돌 9단이 1991년 열렸던 한ㆍ중ㆍ일 국가 바둑 교류전에 참가해 바둑을 두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미생(未生), 떡잎부터 달랐다

이 9단은 전남 목포시에서 배를 타고 2시간 넘게 들어가야 하는 비금도에서 태어났다. 부친 이수오 아마 5단은 부인 박양례씨와 3남2녀를 뒀다. 이중 이세돌은 말썽꾸러기에 개구쟁이였지만 막둥이의 재롱으로 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했다. 어릴 적 이세돌의 막춤은 농사에 지친 부모님에게 언제나 박장대소를 선물하곤 했다.

이 9단은 부친의 권유로 5살 때 바둑에 입문했다. 자서전 <판을 엎어라>(2012년1월 살림출판사 출간)의 첫 소제목이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아버지에게 배웠다’일 정도로 아버지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이 9단 집안이 바둑 가족으로 울타리 지어진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다. 큰 형 이상훈 9단은 현재 프로바둑리그 신안천일염팀의 감독을 맡고 있고 작은 누나 이세나 아마 6단은 ‘월간바둑’의 편집장이다. 이 중 부친은 막내 이세돌의 기재를 가장 높이 샀다. 이세돌이 바둑 입문 2년, 일곱 살의 나이에 자신을 이기자 부친은 막내의 후원자로 적극 나섰다. 실력을 키우는 데는 무엇보다 실전이 중요하다고 본 부친은 없는 살림에도 빚을 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 9단을 전국 어린이대회에 내 보냈다. 주변에선 모두 “돈만 버린다”며 혀를 찼지만 부친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외딴 섬에서 ‘기경중묘’와 ‘현현기경’, ‘발양론’ 등 성인도 어려운 바둑의 고전을 독파한 이 9단의 기력이 통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 9단도 “아버지의 굳은 의지가 없었다면 내 바둑은 비금도에서 일찌감치 좋은 취미쯤으로 끝이 났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9단의 반상 인생 초반 포석은 그렇게 부친의 헌신으로 이뤄졌다.

이세돌(오른쪽) 9단이 입단동기로 절친인 조한승9단과 앙증맞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이세돌(오른쪽) 9단이 입단동기로 절친인 조한승9단과 앙증맞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반생(半生), 천재적 재능 속 승단대회 거부 파문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각종 대회 우승으로 재능을 확인한 이 9단은 9살 때 서울 유학 길에 올랐다. 이 9단은 당시 국내 바둑계의 한 축이었던 ‘권갑용바둑도장’(현 권갑용국제바둑학교)에 입학하며 본격적인 바둑 기사의 길로 들어섰다. 이 곳에선 서울에 먼저 상경한 형(이상훈 9단)이 지도 사범으로 꿈나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한 이 9단은 1995년 불과 12살에 프로 입단에 성공했다.

그러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형이 군에 입대하며 12살 아이의 힘겨운 객지 생활이 시작됐다. 그는 오락실에서, 만화방에서 허송 세월을 보냈다. 정신적 부담이 극에 달하면서 급기야 실어증 증세까지 나타났다. 기관지도 점점 약해졌지만 보호자도 없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치료는 기대할 수 없었다. 현재 이 9단의 갈라지는 듯한 쉰 목소리는 당시의 후유증이다. 98년에는 이름만 걸려 있던 중학교에서도 자퇴했다. 같은 해 큰 버팀목이었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공교롭게 아버지 기일은 이 9단의 생일과 같은 날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망은 오히려 반전의 계기가 됐다. 세상을 떠나기 전 입버릇처럼 “우리 막둥이가 타이틀 하나 따는 거 보고 가자”고 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내재됐던 승부욕과 독기가 발동했다.

지난 2000년말 열렸던 ‘제5기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이세돌(오른쪽) 선수가 류재형 선수와 결승전을 벌이고 있다. 이 선수는 이 대회에서 우승, 생애 첫 타이틀을 획득했다. 한국기원 제공
지난 2000년말 열렸던 ‘제5기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이세돌(오른쪽) 선수가 류재형 선수와 결승전을 벌이고 있다. 이 선수는 이 대회에서 우승, 생애 첫 타이틀을 획득했다. 한국기원 제공

2000년 ‘제5기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올린 이 9단은 그 해 32연승으로 질주하며 최다승 및 최다연승을 기록, ‘불패소년’으로 거듭났다. 2002년엔 ‘제15회 후지스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첫 세계 타이틀까지 거머쥐며 상종가를 쳤다.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 등을 비롯, 이 9단의 개성 강한 어록은 이 때부터 등장했다.

그러나 마찰과 시련도 뒤따랐다. 2002년 그는 대국료도 없이 연간 10판씩을 소화해야 하는 한국기원의 승단 대회는 제대로 된 실력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거부 선언을 했다. 당시 3단으로 국제대회와 각종 기전에서 우승을 휩쓸던 이세돌의 반란에 보수적인 한국기원도 결국 ‘일반 기전의 승단대회 대체’, ‘주요대회 우승시 승단’ 등의 규칙 개정으로 물러섰다. 그는 또 2009년 기보 저작권료 지급에서 프로기사 개인들의 권리 보장이 미흡하다며 휴직계를 내고 항명한 뒤 잠적해 버렸다. 기원측과 대화 끝에 2010년1월 복귀를 했지만 바둑계에 풍파를 일으킨 사건이었다.

완생(完生), 中 구리 9단과 10번기 ‘완승’

우여곡절 끝에 반상으로 복귀한 이 9단은 그 동안 체력이라도 비축한 듯 24연승 행진으로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세돌(맨 왼쪽에서 두 번재) 9단이 2010년 광저우(廣州)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대표로 참가, 금메달을 딴 이후 태극기를 들고 이창호9단(여섯 번째) 등 동료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이세돌(맨 왼쪽에서 두 번재) 9단이 2010년 광저우(廣州)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대표로 참가, 금메달을 딴 이후 태극기를 들고 이창호9단(여섯 번째) 등 동료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운도 따랐다. 이 9단이 복귀한 해 실력으로 그 동안의 잡음을 잠재울 판이 깔렸다. 한국과 함께 세계 바둑계를 좌우하는 중국에서 열린 2010년 광저우(廣州) 아시안 게임에 바둑이 첫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이다. 이 9단은 우리나라 국가대표로 출전, 보기 좋게 금메달을 따며 다시 한번 녹슬지 않은 기력을 입증했다.

2014년 동갑내기이자 필생의 라이벌인 중국의 구리(古力) 9단과 10억원의 상금(우승 8억5,000만원)을 걸고 벌인 10번기에서 6승2패로 승리한 것도 이 9단의 반상 인생에 또 다른 전기가 됐다. 이 9단은 현재까지 총 18번의 세계대회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면서 누적 상금만 100억원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알파고와 대결에서 1승4패로 지긴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전 세계인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9단은 알파고와 5번기를 끝낸 직후 “프로든 아마추어든 바둑은 즐기는 게 기본인데 이번 알파고와 대국은 정말 원 없이 즐겼던 것 같다”며 “제 부족함이 다시 한번 드러났고 더 열심히 노력해서 발전하는 이세돌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이 9단의 반상 행마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허재경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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