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등록 : 2015.09.29 13:51
수정 : 2015.09.30 04:15

[이정모 칼럼] 슈퍼문은 없다

등록 : 2015.09.29 13:51
수정 : 2015.09.30 04:15

추석인 지난 2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창덕궁 처마 끝 옆으로 보름달이 떠 있다. 뉴시스

추석 연휴 첫날인 토요일 아침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가 쓴 ‘빛의 복면을 벗자 행성의 몸이 드러났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었다.

이명현은 텔레비전에서 하는 인기 음악 프로그램인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이야기를 했다. 가수들이 복면을 쓰고 얼굴을 가리니 그 가수의 진면목이 보이더라, 예전에는 미모로만 주목 받던 가수가 가창력으로 승부할 수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도 한가위 달에 소원을 비는 대신 그 빛을 가려보자고 했다. 그러면 더 많은 것이 보일 것이라고 했다.

이명현의 칼럼은 감동적이었지만 나는 도저히 한가위의 달빛을 내 눈에서 가릴 수는 없었다. 추석 연휴 둘째날인 일요일 저녁 나는 당연히 발코니에 서서 아파트 앞 동 위로 떠오르는 환한 한가위 달을 보았다. 한눈에 봐도 크고 밝았다. 착시가 아니었다. 실제로 컸다. 흔히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가 38만㎞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평균 거리일 뿐이다. 태양 주변을 도는 모든 행성들이 그러하듯이 달도 지구 주위를 타원형으로 돈다. 따라서 가까울 때와 멀 때의 거리 차이가 꽤 난다. 가장 가까울 때를 근지점이라고 하고 가장 멀 때를 원지점이라고 하는데, 근지점의 평균 거리는 36만㎞ 정도고 원지점의 평균 거리는 40만㎞ 정도다. 이번 추석 보름달은 가장 작은 추석 보름달보다 면적이 27%나 컸으며 그만큼 더 밝았다.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단체 문자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사람들은 이런 문자들을 하찮게 여기고 귀찮아하기도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고맙게 여긴다. 덕분에 생존확인도 하고 덕담도 골고루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내가 단체 문안 문자를 보내지 않는 것은 순전히 게으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추석에는 단체 문자가 몇 건 안 들어왔다. 내심 꽤나 실망했다.

그런데 웬걸! 추석 보름달이 뜨자 친구들은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그리고 문자메시지를 통해 자기가 찍은 달 사진을 보내기 시작했다. 벗들은 달 사진을 보내고자 문자를 꾹 참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친구들은 사진과 함께 아쉬움을 전했다. 자기들이 찍은 사진은 너무나 작게 보인다는 것이다. 아니, 그러면 뭐! 크레이터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기라도 할 줄 알았나? 실망이 과했는지 대학 같은 과 동기인 이석훈은 달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폴로 우주인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큰 기대에 이은 큰 실망을 나름 유머로 푼 것이다.

슈퍼문은없다.jpg

친구들의 기대와 실망은 ‘슈퍼문’이라는 출처 불명의 용어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 달의 운행이 크게 달라졌을 리 만무한데 몇 년 전까지는 들어보지도 못한 슈퍼문이란 말이 매년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소백산천문대장인 성언창 박사는 슈퍼문은 최근 2~3년 전에 등장한 것 같으며, 자기도 처음에는 동네 슈퍼에 달린 문인 줄 알았다는 농담까지 했다.

슈퍼라는 접두어가 붙으려면 웬만큼 차이가 나서는 안 된다. 보통 사람보다 기껏해야 힘이 두 배쯤 세다고 해서 슈퍼맨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날아가는 비행기를 손으로 잡아서 세우고 빛보다 빨리 날아서 소녀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에 언론이 호들갑을 떨었던 슈퍼문의 정체를 따져보려면 먼저 지구와 달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 달의 위상(모양)이 변하는 과정을 알려주던 과학 교과서 그림을 생각해 보자. 한가운데 아름다운 지구가 있고 양 옆과 위아래에 각기 모양이 다른 달이 놓여 있다. 이때 달과 지구는 기껏해야 지구 지름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실제는 많이 다르다. 500원짜리 동전을 식탁 위에 놓자. 이걸 지구라고 하자. 달은 500원짜리 동전 28~31개 거리만큼 떨어진 곳에야 있다. 76~84㎝ 떨어진 곳이다. 달은 워낙 멀리 있고 거기서 조금 가까워졌다고 해서 엄청나게 커지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은 아니다.

혹시 정말로 두 배쯤 달이 커 보이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슈퍼문이 뜰 때마다 해안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내륙 깊숙이 대피해야 한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커질 뿐만 아니라 밀물 때 바닷물의 높이가 엄청나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대피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강물은 역류하고, 화장실에는 오물이 넘치고, 바닷가에 있는 핵발전소는 붕괴할지도 모른다.

슈퍼문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 과학자들은 이런 호들갑스러운 말을 하지 않는다. 단지 ‘근지점 보름달’, ‘원지점 보름달’이라는 용어를 쓸 뿐이다. 슈퍼문이라는 말은 1979넌 한 점성술사가 처음 썼다고 한다. 주술적인 용어라는 뜻이다. 달은 인간에게 특별한 천체다. 서양 점성술에서 달은 약간은 불길한 상징이다. 하지만 근지점 보름달은 대략 14개월에 한 번쯤 찾아오는 흔하고도 평범한 일이다.

올해 추석 달의 특징은 따로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보름달을 보지 못했다. 달이 가장 크고 둥글게 보인 시간은 추석 다음날인 월요일 오전 11시 51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해가 하늘 높이 떠서 달이 보이지 않을 시간이다. 하지만 바로 그 시간에 아프리카 동부와 유럽 서부 사람들은 둥근 보름달이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개기월식을 볼 수 있었다. 개기월식 때 달은 붉은 빛을 띤다. 서양사람들은 이번 달을 핏빛이 도는 큰 달이라는 뜻으로 슈퍼블러드문이라고 불렀다. 33년만에 찾아온 점성술사들의 추석 대목이었다.

추석 연휴 대체휴일인 어제 미항공우주국(NASA)은 2011년 사진을 바탕으로 세웠던 화성에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다는 가설과 추정을 확인하는 증거를 새로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과학은 꾸준히 앞으로 가고 있다.

슈퍼문 따위는 없지만 덕분에 온 세계인이 하늘을 쳐다본 아름다운 주말이었다. 하사(!)받은 특식에 다소 실망한 우리 국군장병들도 한가위 달을 보고 위로 받았기를 바란다.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오늘의 사진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