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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진퇴양난을 헤쳐 나가는 기준

입력
2018.01.15 15: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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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엎드려 있다. 청나라 황제 앞에 치욕스레 절을 하는 인조 임금, 그 뒤에서 숨죽여 통곡하는 이조판서 최명길, 그리고 자결하며 거꾸러지는 예조판서 김상헌. 이렇게 세 사람은 각자의 모습대로 엎드림으로써 나라와 백성의 살 길을 찾았다.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이다.

원작소설을 읽으며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공감과 고민을 했던 것에 비해, 영화는 비교적 간결하게 이야기를 정리해 놓아서 쉽게 역사의 한 장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하는 생각과 행동의 과정을 섬세하게 보려면 소설이 좋겠고, 시원스런 전개와 인간사의 핵심적 사안을 선명하게 보려면 영화도 좋은 선택이다. 시나리오 작업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영화 ‘남한산성’은 버릴 대사가 없다.

소설과 영화를 보며 등장인물 모두의 입장에 골고루 서 보았다. 내가 어떤 소견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다른 인물들의 생각에도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와서 그때 일을 논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미 이런저런 결론이 났고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빚어졌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모든 역사가 그렇다.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는 말하기 쉽지만, 어떤 일이 진행되는 그 시점에서는 현명한 답을 찾아내기 어렵다.

청의 군대가 세자를 보내라고 한다. 보내지 않으면 더 큰 요구를 할 것이라는 의견과, 보내면 더 큰 요구를 해올 것이라는 의견이 맞선다. 청나라 황제와 추가 병력이 도착하기 전에 빨리 싸움을 해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싸움을 해야 한다는 의견과, 더 막강한 세력이 왔을 때의 후폭풍을 생각해서 관계 개선을 하자는 의견이 충돌한다. 말은 사람처럼 의지를 갖고 있지 못하므로 말을 우선 먹여야 한다는 의견과, 사람은 말과 달리 마음을 다치게 되니 사람을 우선 돌봐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뉜다.

살다 보면 이런 진퇴양난에 처할 때가 수없이 많다. 이럴 때 어떤 기준을 갖고 판단과 선택을 해야 할까. 소설 ‘칼의 노래’ 속 이순신은 모든 임무를 수행할 때 이런 기준을 품는다.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무와 충이 소멸해주기를 나는 바랐다.” 이순신 주변에는 그를 깎아내려 사욕과 영달을 채우려는 인물들이 많았다. 임금은 이순신의 충심과 용맹을 높이 사기도 경계하기도 했다. 이순신이 간사한 자들의 행동에 일일이 응수했다면 온전히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이순신은 자신이 왜 그 위치에 있는지를 되새긴다. 자신은 백성의 목숨과 나라의 존립을 위해 칼을 든 사람임을 잊지 않는다.

‘남한산성’의 김상헌은 그 동안 잊고 있던 백성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게 백성이구나. 이게 백성일 수 있겠구나.’ 백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시간만큼 백성은 임금과 조정에서 멀어져 있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사공은 우리 임금의 행렬이나 청나라 군사나 구분 없이 얼어붙은 강의 길을 안내한다. 그에겐 품삯 한푼 주지 않는 임금의 행렬이나, 자신을 해하지 않는 청나라 군사 행렬이나 별 다를 바가 없다. 말을 먹이려고 추위를 막아주는 가마니를 거두어 가버리는 관리들이 오랑캐와 뭐가 다르냐고 산성의 병사들은 수군거린다.

최명길 역시 방법이 다를지언정 백성과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같았다. 그는 명분을 앞세운 무력 충돌로 인해 백성이 해를 입을까 걱정했고, 대의를 위해 민족의 영원한 역적으로 남을 수도 있는 길을 택했다. 어떠한 일에도 주변 상황보다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지키고 아껴야 할 사람을 생각하면 좀 더 올바른 선택에 다가설 수 있다.

제갈인철 북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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