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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만능주의와 기술혐오, 그 극단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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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만능주의와 기술혐오, 그 극단을 넘어서

입력
2017.01.1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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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준 교수가 찾은 강북아리수정수장의 활성탄 흡착지. 책에는 그가 풍성한 사유로 들여다 본 도시 구석구석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영준 교수 제공
이영준 교수가 찾은 강북아리수정수장의 활성탄 흡착지. 책에는 그가 풍성한 사유로 들여다 본 도시 구석구석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영준 교수 제공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

이영준 임태훈 홍성욱 지음

반비 발행ㆍ376쪽ㆍ1만7,000원

가제는 ‘불온한 테크놀로지’였다. 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 믿는 안일함에 찬물을 냅다 끼얹겠다는 선전포고다. 인공지능 등 신기술의 쓰나미가 몰려오는데도, 시민의 절대다수는 기술맹(盲)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 그만큼 위중했다. 다만 주제들을 다 아우르기 어려워 가제로만 남겼지만 이 책은 그렇게 기술발전의 방향과 쓰임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했다.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는 기술과 인간, 공동체, 삶에 대한 안내서이자 저자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 시민에게 띄우는 격문이다. 디지털 비평ㆍ기계비평ㆍ적정기술 등 세 축을 각각 임태훈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이영준 계원예술대 교수, 홍성욱 한밭대 적정기술연구소장이 맡아 썼다. 한국일보에 2015년 4~12월 연재했던 글을 대폭 보강해 담았고 함께 한 대담도 실었다.

저자들은 언론과 시민사회가 바쁘거나 게을러서 혹은 어려워서 미뤄뒀던 난제를 모조리 불러낸다. 눈부신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기술과 기계에 무감하게 둘러 쌓여 있는가? 때로 이 기술의 혜택은 서로 다른 집단에게 얼마나 차별적으로 분배돼 있나. 편리하다 믿었던 것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인간의 자유를 얽매진 않나. 더 나은 대안을 남겨두고 우리가 엉뚱한 방향으로 내달리는 것은 아닐까. 저자들의 경고, 사유, 안내가 현란하게 펼쳐지는 만큼 정신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한다.

1부에서 임태훈 교수는 노동자, 인간의 눈으로 디지털 기술을 고민했다. 국내 정보통신기술 담론에서 인간의 존엄, 자율, 공동체의 다양성과 지속가능성 등이 놀라울 만큼 소외돼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런 판단에서 그는 대안적 SNS, 1인 가구를 위한 미디어, 기술과 문학의 협업 등을 다룬다. 기술담론을 그저 정부나 기업, 일부 연구자의 영역에만 내맡겼던 안일함에 경종을 울린다.

이영준 교수의 기계비평이 펼쳐지는 2부는 보다 실천적인 사유의 장이다. 적잖은 이들이 공기나 물처럼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하는 기계와 각종 설계를 면밀하게 관찰한다. 발품을 팔아 잠실야구장, 패스트푸드식당 부엌, 수술실, 정수장, 지하철역, 발전소 등을 찾았다. 한 장소에 동원된 기술의 내용, 작동 방식, 시스템을 들여다보며 펼치는 깊은 사유가 지적 포만감을 안긴다. 직접 촬영해 컬러로 실린 사진들도 압권이다.

3부는 홍성욱 교수가 소개하는 적정기술의 세계가 장식한다. 인간의 선의와 위트, 창의성이 어떻게 기술을 더 많은 사람에게 유용하고 감동적인 것으로 만드는지를 상세히 다뤘다. 저개발국가의 식수난 해결을 위해 개발된 휴대용 정수기, 난방과 조리기구 등의 사례를 비롯해 적정기술 연구의 현황과 성과를 소개한다. 다양한 대안과 노력, 성과들이 마음을 울린다.

세 필자의 공통된 바람은 ‘더 많은 시민들이 기술 리터러시를 키우는 것’이다. 그저 신기술의 등장에 놀라 경악하거나, 현실에 눈감고 옛날이 좋았다고 연발하지 않고, 기술과 인간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런 고민이 절박하다는 사실에 공감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탁월한 기술조차 비루한 일상의 전리품으로 끌어내리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술만능주의와 기술혐오의 양극단을 넘어설 대안을 모색하려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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