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기업 임원인 지인이 딸과 용돈을 나눠 쓰게 된 이야기를 했다. 대학을 졸업했으나 취직 못한 딸이 엄마와 심각하게 다투면서 용돈이 끊기자 회사로 찾아왔다고 했다. 벌이도 못하면서 자꾸 돈만 달라고 하니 엄마가 화가 난 것이다. 결국 자신의 용돈 절반을 딸에게 줬다고 했다. 50년대 생인 다른 지인은 아들과 딸이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서 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는데 정년이 다가오고 있어 걱정이란다.
▦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안되고, 취직을 하더라도 80%는 비정규직이다. 6,000원에 못 미치는 시급에 의존하는 청년들도 부지기수다. 결혼은 물론 연애도 없다. 그러니 출산은 불가능한 삼포세대가 된다. 나중엔 인간관계, 내집 마련까지 포기한다. 오포세대다. 이들의 특징은 그저 조용히 아끼며 사는 것이다. ‘아끼니까 청춘’이다. 당연히 큰 꿈도 미래도 없다. 결정할 것도 없고 방향을 정하지도 않는다. 20년 전 일본 청년들의 행태와 유사하다.
▦ 독일의 작가 올리버 예게스는 요즘 청년들의 행태를 분석해‘결정장애 세대(Generation Maybe)’라고 했다. “우리는 방향을 잃었다. 결정을 내리고 싶지도,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주의력 결핍에 결단력 박약이다. 그런 우리에게 정치참여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기를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가 아닐까? 연금 문제에 대해서도 나중에 한 푼도 받을 수 없다는 둥, 받게 되더라도 우리가 부은 만큼은 분명 아니라는 둥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데, 정작 우리는 거기에 대해 별생각이 없다.”
▦ 청년실업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다. 벌써 20년 가까이 청년실업은 각종 구조적 문제를 누적하고 있다. 취업률 하락은 결혼기피, 출산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사회의 고령화를 재촉하고 있다. 청년실업이 확대되면서 가계소득은 정체되고 소비도 둔화한다. 결혼과 출산을 통해 아파트 평수를 키우는 추격매수가 실종됐으니 부동산거래도 위축된다. 그래서 경제는 이미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청년실업을 어쩌지 못하는 동안 국가의 미래조차 장담할 수 없는 무서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