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해림 객원기자 기자

등록 : 2017.10.27 04:40
수정 : 2017.10.27 14:49

[푸드 스토리] 찬바람의 계절...뜨끈한 곰탕 한그릇의 세계

등록 : 2017.10.27 04:40
수정 : 2017.10.27 14:49

서울 마포구 현석동 ‘곰탕 수육 전문’의 곰탕 토렴. 황금빛 고기 국물이 탱글탱글한 밥 사이로 뜨끈하게 파고든다.

북서쪽으로부터 건조하고 찬 바람이 밀려온다. 이럴 때 떠오르는 음식, 상투적이기 그지 없는 뜨끈한 국물.

그 중에도 고기 국물. 몸 속 ‘내연기관’까지 뜨겁게 덥혀 움츠린 어깨를 다시금 펴게 하는 곰탕 한 그릇. 점심에 곰탕 한 그릇 할 까, 생각이 절로 드는 날씨다. 한겨울 곰탕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몸이 사르르 녹는다. 칼날 같은 추위와 메마른 습도에 시달리던 몸은 곰탕집 안의 후끈한 열기를 만나 거기서부터 위안의 시작이 된다. 단백질과 지방이 녹아든 국물은 그 자체로 체온 유지에 급급하던 몸 속 내연기관을 다시 활활 불타오르게 하는 요긴한 에너지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시하는 곰탕의 표준 칼로리는 700g 한 그릇에 579.62kcal로, 여기에 밥 한 공기까지 보태지니 겨울철 쓰기 좋은 장작임이 틀림 없다.

후끈함의 적정 온도는

앗 뜨거워! 그런데 그 뜨끈함의 적정온도를 두고 말이 많다. 우리는 뚝배기에 가득 담겨 나와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국물 요리에 매우 익숙하며, 아예 테이블 위에서 국물 요리를 펄펄 끓여가며 그것을 ‘시원하게’ 훌훌 떠먹기도 한다. 너무 뜨거운 음식의 위악은 잘 알려져 있다. 짠맛을 덜 느끼게 해 과도한 나트륨을 섭취하게 한다. 혀와 입천장을 데는 것은 미미하더라도 엄연히 화상이다.

그렇다면 미지근한 온도가 국물 음식의 최적치일까. 그렇지도 않다. 뜨겁긴 뜨거워야 한다. 지혜로운 곰탕 전문점들은 뜨거움과 미지근함 사이, 적정 온도를 정해두고 있다. 곰탕의 성지이자 표준으로 꼽히는 서울 명동 하동관 본점에서 갓 나온 곰탕 국물은 섭씨 76도였다. 채 썬 파를 얹고 밥을 뒤섞고 나서는 70도로 내려가 딱 좋게 훌훌 먹을 수 있는 온도가 됐다. 후후 불거나 조심할 필요 없이 숟가락으로 팍팍 떠먹을 수 있는 온도다. 여기에 깍두기 국물을 부으면 온도는 더 내려간다. 하동관의 이 절묘한 온도를 두고 단골들 사이에선 우스갯소리로 “빨리 먹고 나가게 하려고 안 뜨겁게 낸다”는 음모론이 잊을 만하면 부상하곤 한다. 그러나 손님의 회전이야 식당의 염려이고, 객이야 그것이 딱 먹기 좋은 온도를 배려한 것이라는 의도 그 자체에만 주목해도 충분하다. 아래서 소개할 솜씨 좋은 신흥 곰탕집 역시 대개 70도대의 온도를 정해두고 곰탕을 낸다.

곰탕이 100도 가까운 뜨거운 온도로 나온다 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유기나 그 비슷한 재질의 스테인리스 식기에 담겨 나오는 곰탕은 열 전도율이 낮은 뚝배기에 담긴 것에 비해 빠르게 온도를 잃고, 하동관에서 그러했듯 송송 썬 파를 넣거나 깍두기 국물을 부으면 국물 온도는 계단식으로 툭툭 내려간다. 더구나 요즘처럼 식사 전 기도마냥 사진부터 찍고 수저를 드는 때엔 펄펄 끓어 나온 국물이 차라리 더 맞을지도 모른다.

곰탕 명가, '하동관'의 곰탕. 한국일보 자료사진

밥의 예술, 토렴의 지혜

곰탕의 완성은 밥이고, 토렴이다. 보온 기능이 있는 전기 밥솥이 없던 때에는 곰탕의 밥이 무조건 토렴한 것이어야 했다. 찬밥을 뜨거운 국물에 말아 먹어서는 온도 손실이 너무나 크다. 그 손실의 결과는 면을 건져먹고 식은 라면 국물에 찬밥을 넣었을 때 어떤 온도가 되는지 연상해 보면 될 것이다. 그래서 개발된 기술이 토렴이다. 밥이 차게 식었지만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라내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해 밥의 온도를 덥히고, 국물도 뜨거운 채로 먹을 수 있게 했다.

찬밥의 문제는 단지 온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밥엔 다량의 전분이 있는데, 쌀알일 때 단단한 전분조직은 물과 열을 만나 쫀쫀한 젤리처럼 변한다. 말랑말랑하면서도 찰기 있는 상태로 쌀을 변화시켜 소화되기 쉽게, 그리고 맛도 좋게 하는 것이 밥 짓는 의의다. 문제는 갓 한 밥이 식으면서 일어난다. 온도가 낮아지면 밥의 전분은 다시 뻣뻣한 상태로 변해 맛도 없고 먹기에도 좋지 않다. 이때 수분을 더하고 온도를 높이면 다시 전분을 말랑말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현대 조리 과학의 원리로 밝혀진 현상이다. 토렴은 어디까지나 경험 원리에서 나온 선조의 고급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전자레인지로 밥을 데우고 국물을 부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토렴을 지속한다. 이 시대에도 토렴이 이어지는 것은 토렴한 밥의 고유한 특성 때문이다. 뜨거운 밥에 뜨거운 국물을 붓는 것만으로는 토렴한 것처럼 탱글탱글한 상태의 밥이 되지 않는다. 국에 밥을 말았을 때처럼, 퉁퉁 붓고 흐들흐들하게 풀어질 뿐이다. 밥이 죽으로 가는 중간 단계다. 식힌 밥을 이용해 토렴을 하면 맑은 곰탕 국물 안에서도 밥이 갓 지은 밥에 가까운 탄성과 동시에 부드러움까지 갖추게 된다. 아무리 신중히 토렴을 해도 소량의 전분이 풀려 나와 국물이 탁해지지만, 그것은 공평한 ‘기브앤테이크’의 결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곰탕 재료는 전통적으로 양지 같은 소의 살코기와 벌집양, 홍창, 곱창과 때로 지라를 비롯한 각종 소화기와 소량의 뼈다. 적은 양의 지방도 육수에 흘러나오지만, 단백질로 똘똘 뭉친 육수 그 자체가 곰탕의 본질이다. 단백질은 곧 고소한 감칠맛이다. 또한 ‘육향’이라는 한 마디로 정의되는 고소한 아로마도 풍긴다. 그리하여 풍부한 맛과 향을 가진 곰탕은 다소 염도가 덜해도 먹는 데에 불편함은 없다. 나트륨 과잉 섭취가 걱정된다면 소금간을 싱겁게 해도 그럭저럭 괜찮다는 이야기다. 살짝 짭짤하다 싶은 적정한 염도, 그러니까 0.9~1% 정도의 염도로 간을 하면 달고 고소하고 국물 맛이 확 살아나 더 맛있게 된다. 바닷물의 염도가 3.5%이고 흔히 쓰는 양조간장과 진간장의 염도는 16%다.

곰탕의 신흥 세력

곰탕은 절대 강자 하동관이 이미 정해져 있고, 동네마다 지역에서 손꼽히는 명가들이 포진해 있다. 각 식당의 전통 방식을 그대로 고수해 이어 내려오는 음식이지만, 그 절대성에 도전하는 새로운 강자가 속속 등장했다. 최근 곰탕의 새로운 명소로 꼽히는 두 곳은 서울 마포구 현석동의 ‘곰탕 수육 전문’, 그리고 마포구 합정동의 ‘합정옥’이다.

'곰탕 수육 전문'의 곰탕

곰탕 수육 전문

유명 곰탕 전문점에 오랜 단골로 드나들다 곰탕집 창업을 결심하고 그 전문점 주방에 취업해 곰탕 국물 내는 법을 정식으로 배워 나왔다. 전통 있는 곰탕, 냉면 전문점들이 개업 당시부터 소고기를 받아 쓰는 서울 종로구 팔판정육점에서 암소를 받는다. 매일 130~150인분 분량의 곰탕을 끓이는데, 차돌양지, 업진살, 우삼겹, 벌집양, 양, 홍창, 곤자소니, 애기보 등 다양한 부위를 사용해 풍성한 맛이 우러나온다. 알이 크고 탱글탱글한 품종인 신동진 쌀을 사용하는데, 토렴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대부분 식당이 토렴용 국물을 따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이곳은 국물용과 토렴용을 구분하지 않고 같이 쓴다. 밥의 전분과 고기의 향이 국물에 섞여 나와 있어야 국물 맛이 더 좋다는 것이 사장 김정길씨의 이야기다. 점심에 사용한 국물은 버리고 휴식시간 후 저녁 장사에 쓸 국물을 따로 데워 낸다. 소금간은 최소한으로 해 염도가 0.16%에 불과하다. 물론 식탁에 볶은 소금이 놓여있어 간은 취향껏 맞출 수 있다.

'합정옥'의 곰탕

합정옥

“곰탕집 하나 차리자” 시아버지가 말했고, 며느리 차계민씨는 곰탕집 사장님이 됐다. 합정동 토박이인 시아버지 윤홍렬씨가 수십 년째 집에서 손수 끓여 가족과 친지를 대접하던 솜씨 그대로 매일 새벽 곰탕을 끓인다. 서울 마장동에서 고기를 떼오는데, 양지, 양, 벌집양, 곱창, 홍창, 대창, 목 힘줄, 사골 등 다양한 부위의 재료를 쓴다. 한 번 끓일 때 400인분을 끓이며, 무려 150㎏ 정도를 쓴다. 상당히 많은 양이다. 국물 맛과 향의 진하기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합정옥의 소금간 역시 ‘셀프’다. 맞춰 나온 염도는 0.24%에 불과하다. 국물은 91도로 꽤 뜨거운 편이지만 금세 온도가 내려가 먹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다. 평소에는 탄성이 좋은 오대쌀을 쓰는데 요즘은 햅쌀 철이라 쌀가게에서 토렴에 더 좋다고 추천한 햅쌀 혼합미로 밥을 짓고 있다. 아침에 지어 식힌 밥을 토렴할 때는 토렴용 국물을 따로 쓴다. 그 국물에 배추와 양념을 추가해 끓여내는 ‘속대국’이 독특하다. 곰탕과 마찬가지로 이 집안에서 먹던 음식이다.

서울 종로구 수하동 시절의 하동관. 지금 본점은 명동에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소는 곰탕이나 설렁탕을 내고, 돼지로는 국밥만 말라는 법도 최근 바뀌었다. 올해 나란히 문을 연 서울 중구 정동의 ‘광화문 국밥’과 합정동의 ‘옥동식’은 돼지고기로 곰탕을 끓여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기름기가 적은 돼지 살코기 부위를 사용해 끓여낸 두 곳의 돼지 곰탕은 국물의 맑기나 구수한 맛이 소 곰탕에 비해 전혀 빠지지 않는다.

'옥동식'의 곰탕

옥동식

상호와 오너셰프의 이름이 같다. 몇 해 사이 새로 육종돼 시장에 등장한 돼지 품종인 버크셔K를 적극적으로 내세운 곰탕 전문점이다. 버크셔K 앞다리살, 뒷다리살로 낸 국물은 눈으로 보면 맑기가 그지 없어 꼭 평양냉면의 색을 하고 있다. 맛을 보면 소 곰탕인가 닭 곰탕인가 싶을 정도로 감칠맛이 강하고, 돼지고기 특유의 단 맛이 묵직하게 치고 올라온다. 밥을 지어 식힌 후 사용하는데, 쌀 품종은 토렴에 적합한 것으로 그때그때 상태가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쓴다. 날에 따라 신동진일 때도, 오대일 때도 있었다. 토렴은 신중하게 한다. 밥과 하루 식혀 얇게 썬 고기를 그릇에 담고 토렴용 국물을 조심스레 붓고, 부드럽게 빙빙 돌려 밥알 사이로 국물이 파고들게 한다. 한 번 따라내고 국물을 새로 부어 나온다. 0.75~0.77%로 잡는 염도는 짠 입맛이 아니라면 그대로 먹기에도 딱 좋고, 국물 맛을 살리기에도 가장 적절한 온도로 옥 셰프가 실험 끝에 잡은 것이다. 온도는 70도에서 80도 사이로 맞춰 나온다.

'광화문 국밥'의 곰탕

광화문 국밥

이탈리아 요리를 전문으로 해온 박찬일 셰프가 ‘무국적 술집’을 표방한 ‘몽로’에 이어 돼지 국밥 전문점을 낸다고 했을 때 적잖이 많은 이들이 놀랐다. 까탈스러운 입맛으로 유명한 그가 낸 돼지 곰탕은, 놀란 이들의 고개를 결국은 끄덕이게 했다. 제주 흑돼지의 엉덩이살과 털이 붉은 듀록 돼지의 어깨살로 낸 광화문 국밥의 국물 맛 역시 맑고 투명하다. 그러면서도 달고 감칠맛이 돌아 여운이 길게 남는다. ‘국밥’으로 명명했지만 ‘따로 국밥’이라 하는 것이 정확하다. 손님들이 밥 자체의 맛도 즐기게 하고자 국물에 말거나 토렴하는 대신 시시때때로 짓는 밥을 그때그때 밥솥에서 퍼서 따로 낸다. 곰탕의 분류로 설명하는 것은 부산식 돼지국밥과는 또 다르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맑은 육수를 내는 돼지국밥집도 있지만 그와도 다른 장르다. 국물 위에 ‘정구지(부추)’를 잔뜩 썰어 얹는 것은 박 셰프가 부산의 돼지국밥에 헌정하는 오마주다. 영업 비밀에 부친다고 했지만 양해를 구하고 재본 염도는 0.7%로 정확히 맞춰져 있었다. 온도는 85도. 첫 술을 떴을 때 살짝 뜨거운 정도다. 곰탕집의 또다른 자존심은 국물 맛뿐 아니라 김치, 깍두기에도 있다. 네 곳 모두 김치는 사서 쓰지 않고 담근 것을 내는데, 광화문 국밥에서는 국물에 딱 맞는 깍두기를 담가 손님 상에 낸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사진 이가은(Afro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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