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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화도 잘 내고, 화풀이도 잘 해야

입력
2017.09.1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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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천주교가 안 좋은 뉴스로 언론에 등장하고 또 신부와 수녀가 분노 조절에 실패하여 정말로 국민들께 충격을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저 또한 이들과 같은 신부와 수도자로서 그리고 저 또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분노 조절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서 국민 여러분에게 사과를 드립니다. 비록 제가 천주교를 대표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누구라도 사과를 드려야 하겠기에 저라도 드린다는 마음에서 이 지면을 통해서라도 사과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께 실망과 충격을 안겨 드린 것은 신부와 수녀마저 그럴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신부와 수녀마저 그럴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분노의 사회가 되었습니다. 한때 자동차 경적을 한 번 울렸다고 해서, 또는 앞지르기를 했다고 해서 보복운전을 하거나 보복 폭행을 한 얘기가 언론에 자주 나왔는데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그렇게 분노하는 것이 바로 우리 국민의 분노지수가 얼마나 높은지를 말해주는 것이겠지요. 사실 우리 국민들 상당수는 분노로 포화 상태가 되어 있어서 마치 휘발유가 잔뜩 묻은 솜방망이가 성냥을 켜기만 해도 폭발하는 것처럼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분노의 포화, 이것이 지금 우리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렇게 분노가 폭발하지 않도록, 아니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분노가 폭발할 단계까지 가지 않도록 분노를 잘 조절해야 되는데, 이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 생각한 것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화는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물론 상책입니다. 화를 내지 않는 것보다 화가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화는 언제 생기는 겁니까? 제 생각에 소소한 것이 내 뜻대로 안 될 때 나는 것 짜증이라면 화는 크고 중요한 것이 내 뜻대로 안 될 때 나는 것으로서 짜증이나 화 모두 뭣이 내 뜻대로 안 될 때 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무엇이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비우면 화나 짜증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마음 수련이라는 것이 이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 수련이 덜 된 우리가 어떻게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큰 거 바라다가 작은 거 바라는 정도의 수련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바라는 것이 아예 없을 수는 없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니 이런 우리에게는 화가 안 나는 것이 상책이 아니라 화를 잘 내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화를 잘 내는 것이란 물론 화를 자주 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조절을 잘 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제 생각에 화를 잘 내는 것은 화를 쌓아 두지 않는 것이요, 화가 포화 상태가 되지 않도록 생긴 화를 잘 내보내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내다’라는 말은 물건을 ‘들이다. 내다’의 경우처럼 내 보낸다는 뜻이 있잖습니까? 그러니까 화도 생기는 족족 바로 내보내면 화를 잘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를 잘 내면 화풀이가 되고, 반대로 화풀이를 잘 하는 것이 화를 잘 내는 것입니다. 화풀이를 아무에게나 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막 하지 않는 것이 화풀이를 잘 하는 것이고 화를 잘 내보내는 거라는 얘깁니다. 남편 때문에 화가 났는데 애한테 화를 낸다든지, 상사 때문에 화가 났는데 부하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 잘못이고, 노래로 풀 것을 술로 푼다든지, 운동으로 풀 것을 주먹질로 푸는 것이 문제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자기에게 가장 잘 맞는 ‘화풀이 방법’을 나름대로 찾아야 합니다. 운동, 등산, 독서, 음악 감상, 호흡 조절, 대화, 명상 같은 것은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건 그때, 그때 내보내는 것이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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