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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제품은 뭐든 뚝딱 수리, 제가 진짜 ‘시골경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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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제품은 뭐든 뚝딱 수리, 제가 진짜 ‘시골경찰’입니다.”

입력
2018.03.0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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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 대구 서부경찰서 정보화장비계 경위

김길태 경위가 고장난 영상정보처리기기를 수리하고 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김길태 경위가 고장난 영상정보처리기기를 수리하고 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100미터가 넘는 철탑이라 바람이 불면 철제 구조물이 휘청휘정거렸죠.”

1995년 이른 봄, 포항제철 사령탑 꼭대기에 경찰관 한 명이 밧줄을 허리에 묶고 매달려 있었다. 자살자 구조 임무가 아니었다. 전자통신장비를 수리하고 있었다. 수리 업체에서 “위험해서 올라갈 기술자가 없다”고 손사래 치는 바람에 통신 담당 경찰관이 직접 올라간 것이었다.

당시 철탑을 올랐던 김길태(46) 대구 서부경찰서 정보화장비계 경위는 관내에서 ‘전기 장인’으로 통한다.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전자기기도 그가 손만 대면 금세 팔딱 팔딱 소생한다.

1993년부터 정보화장비업무를 맡은 뒤부터 폐기 직전의 장비를 되살리거나 제구실을 못하는 장비를 혁신해 33차례가 넘는 예산 절감 관련 표창을 받았다. 그중에서 2016년에는 한해 8억 원을 아낄 수 있는 예산 절감 아이디어를 낸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지난해에는 노후화로 폐기될 처지였던 영상녹화기를 직접 수리해서 3,800여만원을 아끼기도 했다.

김 경위는 경북 경주 감포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때 상위 2%안에 들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다. 고등학교도 등록금 무료에 기숙사까지 제공되는 구미전자공고로 진학했다.

경찰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의경 근무였다. 의경에서 근무하면서 경찰이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 순경에 지원했다. 지원 자격 조건에 맞추려고 체중을 22kg이나 감량했다.

울릉도에 근무할 때부터 그는 주민들 사이에 '맥가이버 경찰'로 통했다.
울릉도에 근무할 때부터 그는 주민들 사이에 '맥가이버 경찰'로 통했다.

첫 부임지는 울릉도였다. 근무를 시작한 지 몇 달도 지나지 않아 주민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 경찰이 되었다. 특기를 살린 덕이었다. 전기제품이 고장 나면 섬에 수리 센터가 없어서 그대로 방치하거나 버린다는 걸 알고 근무 시간이 끝나면 공구통을 들고 마을을 순회했다. 마을 스피커부터 라디오, 밥통까지 그가 손을 안 댄 전기제품이 없었다. 어르신들이 고맙다면서 답례로 나물이며 곶감, 무 같은 농수산물을 건넸다. 거부할 수 없는 뇌물이었다. 섬에서 나와 경북 고령에 근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순경이 아니라 마을의 전기 해결사나 다름없었다.

“오지랖이 넓다고 할 수 있지만, 독거노인이나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전기 제품을 만지는 게 재밌기도 했구요. 요즘 텔레비전에 ‘시골경찰’이라는 프로가 나오는데, 그걸 보면서 내가 저기 들어가면 하루 종일 전기 수리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지 근무가 제 적성에 딱 맞았습니다, 하하!”

그의 진가가 상부에 까지 알려진 것은 2010년 경주에서 아셈(ASEM)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였다. 당시만 해도 무전을 주고받으며 경호를 했다. 하지만 무선은 보안에 취약했다. 그는 무전 없이도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상황실에서 주요 인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을 화면으로 확인하면서 경호를 지시했다. 획기적인 변화이자 발전이었다.

이 외에도 중요 사건 현장 전화개통부터 컴퓨터 내부 망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심지어 경북청 수배검색시스템과 관내 112시스템도 직접 그가 구축하고 관리해 경찰청장 표창까지 받았다.

1993년 10월 중앙경찰학교 졸업을 앞두고 동기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1993년 10월 중앙경찰학교 졸업을 앞두고 동기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 사이 경위까지 진급했다. 그의 목표는 경사였다. 목표를 초과 달성한 셈이었다. 그래도 아직 숙제가 남았다. 스스로 만든 숙제다. 그는 두툼한 다이어리 한 권을 기자에게 내밀었다.

순경 때부터 만든 그의 노하우 백과사전이었다. 순경 때부터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한 시간 늦게 퇴근하면서 만든 작품으로 총 4권의 공책에 유선, 무선, 전산, 보안 자재, 컴퓨터 수리 등 관련 매뉴얼이 담았다고 했다. 그는 “웬만한 전기ㆍ전자 계통의 문제는 이 노트만 있으면 다 해결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김길태 대구 서부경찰서 정보화장비계 경위가 순경때부터 전자기기를 수리하는 노하우를 기록한 수첩을 보여주고 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김길태 대구 서부경찰서 정보화장비계 경위가 순경때부터 전자기기를 수리하는 노하우를 기록한 수첩을 보여주고 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이 노하우 공책을 만드는데 2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저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걸 책으로 만들어 전 경찰 조직에 배포해 전기 걱정 없는 조직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김 경위는 “경찰복을 입은 뒤로 한 번도 뒤를 돌아본 적이 없다”면서 “앞으로도 내가 가진 능력을 십분 발휘하면서 즐겁고 보람된 복무를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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