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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판사 중 남성이 30%...법조 문화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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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판사 중 남성이 30%...법조 문화가 바뀐다

입력
2017.09.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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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남성 위주 조직문화

소수였던 여성들은 적응 안간힘

젊은 세대 대거 들어오며 변화

회식은 필참 아닌 자율참석으로

단합모임 주말 대신 평일에 열어

여검사 출산하면 90% 육아휴직

‘월화수목금금금’ 주말 없는 야근과 잦은 회식, 상명하복과 폭탄주 문화로 표상되는 법조계 문화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법원ㆍ검찰 내 여성 비율이 늘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뚜렷해진 젊은 세대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수십 년간 다져진 법조문화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기 어려운 법조문화는 비단 여성만의 고민은 아니었다. 업무량이 많은 탓에 주말에도 법원ㆍ검찰 청사에 나와 일하는 일이 잦았고 단합대회는 으레 주말에 열렸다. ‘말 없는 강요’로 모두가 참석하는 분위기였다는 게 중견 법조인들의 증언이다. 폭탄주 문화는 말 못 할 고민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지금이야 술을 마시지 않는 검사들이 적지 않고 술을 강요하지도 않지만, 예전에는 대부분의 직역에서 술 문화가 팽배해있던 탓에 여성은 물론이고 회식과 음주를 힘들어하는 남성 검사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상명하복으로 대표되는 남성 중심적 문화에 여성 판ㆍ검사들은 문화를 바꾸는 쪽보다는 대부분 적응하는 편을 택했다고 입을 모았다. 소수인 여성들이 도드라지지 않기 위해선 기존에 형성된 법조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 드는 ‘보호색’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검찰 역사상 첫 여성 검사장에 오른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은 “제가 평검사였던 때는 지금보다 여성이 훨씬 더 적었기 때문에 남성 위주의 조직문화에 동화되고, 조직에서 살아남는데 급급했다”고 털어놨다.

과중한 업무, 늦은 귀가에 육아문제가 더해지면 어려움은 가중된다. 여성 법조인들은 회식에서 폭탄주 10잔을 마시고 퇴근해도 집에선 ‘원더우먼 엄마’로 변신했고 밤새 아픈 아이를 돌보다 출근해도 업무를 차질 없이 해내려 애써야만 했다. 검찰 출신의 한 여성 변호사는 “초임 때부터 7,8년 차까지는 한참 일을 배울 시기인 동시에 결혼하고 출산과 육아를 하게 되는 시기”라며 “이때 육아에 신경 쓰면 남들보다 뒤처지고 일에 전념하면 아이를 갖기 어려워 결국 육아와 일을 심각하게 저울질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로 분류되는 판검사들이 정작 직장에선 수직적인 문화를 고집해 적응이 어려웠다는 법조인들도 적지 않다. 10년 정도 검사 경험이 있는 여성 변호사는 “밤늦게까지 남고 주말에도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는데다, ‘끼리끼리 밀어주기’ ‘까라면 까라는 식’의 불합리한 문화가 검찰 업무시스템을 뒷받침하고 있다”며 “남성 선배들의 딸도 검사가 되면, 이런 조직문화에서 생활하기를 원하는지 궁금했다”고 전했다.

어느 업종이나 그렇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육아는 여성 법조인이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한 여성검사는 “직장에선 죄인들을 수사하지만, 집에선 죄인”이라며 “집에서는 바빠서 미안한 엄마이자 아내이고,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동료들의 양해를 구하느라 회사에서도 죄인이 되기 일쑤”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여성검사는 “아이가 어린이집 교사에게 ‘우리 엄마 아빠는 일하느라 늘 집에 없어요’라고 말한 것을 전해 듣고 육아에 소홀했던 것을 반성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가정을 방치하도록 강요했던 법조문화도 더디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다. 단합모임은 주말 대신 평일에 하고, 회식은 ‘필참’이 아닌 자율참석으로 바뀌었다. 여성 판ㆍ검사들이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남성 법조인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7년 9월 기준 육아휴직을 신청한 판사는 150명이다. 이 가운데 남성이 약 30%에 달한다. 조직 내에서도 일ㆍ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제도가 정착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정착되면서 성별에 관계없이 일ㆍ가정 양립에 대한 사법부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도 “최근 여성 검사들은 출산을 하면 90% 이상이 육아휴직을 한다”며 “남자검사나 수사관들은 일부가 육아휴직을 하고 유연근무제를 활용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문제의식이 부족했던 성차별적 발언도 자체 감시대상이 되는 식이다. 법원은 올해 4월부터 ‘여자라도 남자 못지 않게 일을 잘 한다’거나 ‘여자판사로만 구성되는 합의부는 문제’라는 식의 발언 등을 양성평등에 어긋나는 언행으로 보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양성평등 담당법관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업무를 배정할 때 여전히 성별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는 지적도 일부에서는 나온다. ‘여검사 몫’으로 인식되는 여성ㆍ아동 관련 부서에 여검사들이 주로 배치되고 특수부나 공안부 등 인지부서에 적게 배치돼 수사역량을 키울 기회가 적다는 것이다. 한 평검사는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됐다가 복귀하면 주요부서에서 일할 기회를 놓치게 되고 성폭력 사건 등을 맡게 되는 한계가 있다”고 털어놨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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