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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아침을 여는 시] 양말

입력
2015.10.1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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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수록된 시인의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에 김민정 시인이 이런 표사를 붙였어요. 아이인데 아버지이고, 소년인데 아버지이고, 참새들에게는 비호감인 허수아비인데 아버지이며, 빗방울의 입장인데 아버지다. 여행자인데 아버지이고, 소진된 복서인데 아버지인 사람….

그가 얼마나 곤란하겠어요.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앞에서 허수아비 같아서도 안되고 어디로 무작정 떠나서도 안되며 늘 승리해야만 하는, 언제나 어른이어야 하는 사람의 기분은 양말에 뚫린 구멍처럼 무안하고 물에 젖은 양말처럼 찝찝하고 그런가요, 아버지?

가라앉는 배 안에서 배와 함께 머무는 당신의 마음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네루다가 노래했던 것과 똑같은 양말 한 켤레를 선물해드리고 싶어요. “마루 모리가 나한테 가져왔다/ 양말/ 한 켤레/ 그건 그녀의 양 치는/ 손으로 짠 것,/ 토끼처럼/ 부드러운 양말 한 켤레,/ 나는 두 발을/ 그 속에 넣는다/ 마치/ 황혼과/ 양가죽으로/ 짠/ 두 개의 상자 속으로/ 밀어 넣듯이”(‘내 양말을 기리는 노래’).

아버지, 당신의 늙어가는 두 발에는 구멍 난 양말도, 부드러운 양털 양말도 잘 어울려요.

진은영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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