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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경청을 위한 듣는 이의 자세

입력
2017.07.3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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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참가했던 최고경영자 모임에서 경험한 일이다. 나와 한 테이블에 앉은 분들은 A씨(44세ㆍ코스닥 업체 대표이사)와 B씨(50세ㆍ세무법인 대표세무사), C씨(48세ㆍ컨설팅사 대표 컨설턴트, D씨(45세ㆍ텔레콤 상무이사)였다.

식사를 하다 A씨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지난 주말에 제가 L 컨트리클럽에서 이글(규정타수 보다 2타 적게 쳐서 홀인한 것)을 했지 뭡니까?” 주말골퍼로서 이글이라면 대단한 것이니 자랑할 만도 하다. 그러자 B씨가 대뜸 하는 말. “L 컨트리클럽 홀 길이가 좀 짧은 편인데. 그래서 이글이 자주 나오죠.” 옆에서 듣고 있던 D씨는 “하... 저는 지난 주말에 M 컨트리클럽에서 버디(규정타수 보다 1타 적게 쳐서 홀인한 것)를 두 개 했죠. 쩝…”이라고 반응했다.

약간 머쓱해진 A씨. 표정이 안 좋다. 사람 좋기로 유명한 C씨가 잠깐 심호흡을 하더니 A씨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C : 이글이라구요? 대단한데요. 몇 번 홀이었지요?

A : 아, 네 14번 홀이었습니다.

C : 당연히 파(Par) 5였을 것이고. 두 번째 샷을 칠 때는 우드 클럽 잡으셨어요, 아님 하이브리드?

A : 하하, 그게 참 고민스럽더라구요. 첫 번째 샷을 멀리 날려서 홀까지는 200야드쯤 남았는데, 아직은 익숙지 않은 하이브리드로 과감히 선택했습니다.

C : 오우, 익숙지 않은데 모험을 하셨군요. 그럼 바로 그린에 공을 올렸겠네요?

A : 예, 운이 좋은 편이었지요. 일단 온 그린. 그런데 사실 거의 끝부분이라...

C : 저런, 그럼 홀에 넣으려면 꽤 긴 퍼팅을 했었겠군요. 거리가 어느 정도?

A : 족히 8m는 된 것 같아요.“

A씨는 C씨의 질문에 침을 튀겨가며 신나게 답했다.

C : 네? 8미터라구요? 오르막? 아님 내리막?

A : 그게 말이죠. 내리막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가는... 거의 죽음이었죠.

C : 우와, 그건 진짜 힘들었겠네요. 그걸 한 방에 홀인?“

A : 네, 운이 좋았던 거죠. 흐흐.

나는 그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C씨의 내공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C는 마치 A의 판소리 공연에 “얼쑤” 하고 추임새를 넣어주는 고수(敲手)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C씨를 칭찬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A씨는 밥 먹다 말고 왜 갑자기 지난 주말에 이글했다는 이야기를 꺼냈을까? 이유는 물어보나마나 그 사실을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B씨는 그 골프장 코스가 쉬워서 이글이 많이 나온다고 김을 빼는가 하면, D씨는 자기가 버디한 이야기를 하면서 초점을 흐렸다.

하지만 C씨는 A씨의 숨은 욕구(자랑하고픈 마음)를 잘 파악하고는, A씨가 신나게 자랑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맞장구를 쳐 주었다. 마치 배구에서, 스파이크를 잘 때릴 수 있도록 멋지게 공을 보급해주는 세터처럼.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조언 중 하나. “상대방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도록 하라.” 상대방 말에 그냥 입 닫고 가만히 있는 게 경청이 아니다. 상대방이 열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경청의 경지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혹시라도 상대방이 무언가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 든다면 상대방의 욕구에 맞춰서 추임새를 넣어주고 상대방이 멋지게 스파이크를 내리 꽂을 수 있도록 예쁘게 공을 갖다 주라. 스파이크를 완성한 그 선수는 내게 달려와서 하이 파이브를 하리니. 돈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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