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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과제 수행하고 토론식 수업… 잠자던 나를 깨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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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과제 수행하고 토론식 수업… 잠자던 나를 깨웠죠”

입력
2017.11.02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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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시선, 우등생 대신 모두에게

지식 전달보다 다양한 길 제시”

학생ㆍ학부모ㆍ교사 논의도 정례화

“성적 떨어진다” 지역 시선 부담

수능시험과 교육 방식 차이도

교사 순환근무에 운영 격차도 커

10월 24일 서울 금천구의 혁신고등학교인 독산고 2학년 학생들이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나’를 주제로 논쟁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모둠 통해 미리 정리한 논거를 바탕으로 찬반 토론에 나섰고 담당 교사는 사회자의 역할만 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10월 24일 서울 금천구의 혁신고등학교인 독산고 2학년 학생들이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나’를 주제로 논쟁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모둠 통해 미리 정리한 논거를 바탕으로 찬반 토론에 나섰고 담당 교사는 사회자의 역할만 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2014년 서울 강북구의 삼각산고를 졸업한 정규민(22)씨는 대학 진학 대신 지역 청소년 단체인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에서 기획자로 활동하는 길을 선택했다. 정씨가 대학 진학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학생 개개인의 선택과 활동을 존중하고 지지해주는 혁신학교의 분위기 덕이었다.

입학 전까지 학교 수업에 흥미를 잃고 공부와는 담을 쌓았던 학생이었던 그는 학생회 활동과 학교에서 소개해 준 청소년 단체 활동을 병행하며 고교 3년을 보냈다. 정씨는 “학교는 성적뿐 아니라 학생이 가진 다양한 장점과 특징을 이야기해줬고 학생이 원하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줬다”고 말했다.

정씨가 다녔던 삼각산고는 2011년 개교한 서울 지역 첫 혁신고등학교. 개교 초기에는 ‘문제아’들이 다니는 학교로 낙인 찍혀 있었지만 졸업생이 배출되기 시작하면서 그 인식이 점차 바뀌어갔다. 이들은 현행 교육 과정과 입시제도 아래서 혁신학교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인정하면서도 대안적인 수업 방식이나 다양한 프로그램은 입시 성과 이상의 교육적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혁신학교의 수업방식이 나를 바꿨다”

연세대 사학과에 재학중인 장산들(21)씨는 혁신학교인 서울 강동구 선사고를 스스로 지원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대학 입시를 목표로 공부만 하기보다는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학교 생활에 의미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선사고의 수업은 ‘디귿(ㄷ)’자 형태로 배치된 교실에서 공동으로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자신이 아는 내용을 친구에게 가르치면서 더 확실하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고 강의식 수업이면 엎드려 잠을 청했을 학생도 스스로 수업에 참여하게 됐다. 그는 혁신학교의 수업을 겪으며 교육 현장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고 지금도 교직이수를 하면서 교사의 꿈을 꾸고 있다. 장씨는 “대학에 진학하고 보니 우리나라 중등교육이 학생들에게 좁은 세계만을 제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며 “다양한 길을 제시하며 세상을 경험하게 해 준 혁신학교의 도전이 분명 큰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혁신학교 졸업생들이 밝힌 가장 큰 변화는 ‘능동성’이다. 올해 서울 도봉구 혁신고인 효문고를 졸업한 지가영(19)씨는 “국어는 학생들이 각자 맡은 부분의 수업을 진행한 뒤 교사와 다른 학생들이 보충하는 형태로 진행됐고, 영어는 선생님이 제시한 문제를 조별로 토의한 뒤 답을 찾는 방식이었다”며 “학교 자체 프로그램인 ‘1인 1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모든 학생들이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발표하는 기회를 가졌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시선도 공부를 잘하는 특정 학생만이 아닌 모두를 향했다. 학교 운영 과정에 학생들이 고루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학생회도 실질적인 학생자치로 자리잡았다. 선사고에서는 매년 학교의 세 주체인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마주앉아 두발이나 복장 등 생활 수칙을 논의하는 ‘3주체 공동체 생활협약’이 정례화됐다.

그들 혼자서는 넘기 벅찬 벽

졸업생들이 느낀 가장 큰 부담은 지역사회의 시선이었다. 공교육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취지로 변두리 지역에 우선 지정됐기 때문이다. 서울 관악구 인헌고는 ‘아이를 망친다’는 소문이 돌면서 학생수 부족으로 폐교 위기까지 몰린 상황에서 혁신학교로 전환했다. 지원했던 학교에 배정받지 못하고 혁신학교에 배정됐을 때는 학생들의 질이 좋지 않다는 소문 때문에 꺼리기도 했다고 한다.

삼각산고 졸업생 윤세혁(20)씨는 “학생들의 학업 성적이 다른 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지 않아 주변 사람들의 편견이 있었다”며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해 준다며 두발단속 등의 규제가 없었는데 이 때문에 시선이 더 좋지 않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주입식 교육에 최적화돼 잇는 현행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가영씨는 “수능시험이 평가하는 것은 혁신학교의 교육 방식과는 맞지 않다”며 “학교에서는 개념을 정립하는 수준의 도움만 받고 실질적인 수능 공부는 혼자 해야 했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혁신중학교인 부천동여중을 졸업한 김동희(19)씨는 “해당 학년의 교과 과정을 벗어나거나 학습 내용이 부족한 경우가 있는데 보완이 필요하다”며 “혁신학교의 창의적인 수업과 기존 학교에서 주로 하는 교과서 내의 지식 전달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혁신학교 내 교사들도 수업 진행이나 학교 운영 방식에서 격차가 크다. 교사의 자율성이 높아졌지만 재교육 프로그램이나 참고할 만한 콘텐츠는 부족하다. 장산들씨는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혁신학교의 교육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는 개인차가 있다”며 “선생님들마다 들쭉날쭉한 교육방식은 혁신학교가 풀어야 할 숙제들이 아직 많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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