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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쇼 탐방] 자동차 전문기자, 모터쇼 관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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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쇼 탐방] 자동차 전문기자, 모터쇼 관람하기

입력
2017.11.1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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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모터쇼를 관람하기 직전, 기념 사진을 찍었다.
/도쿄모터쇼를 관람하기 직전, 기념 사진을 찍었다.

동경모터쇼를 찾았다. 기자가 아니라 그저 즐기는 관람객의 시선으로 훑어본다. 월드 프리미어의 소개, 브랜드의 가치, 컨셉트카의 분석 등 보도 가치가 있는 많은 대상을 내려놨다는 얘기다. 오해는 마시라. 10월 25에 열린 프레스데이에는 후배 기자가 참석해 많은 기사를 토해낸 바 있다. 그렇게 부담 없이 잔뜩 남은 연차를 소진하기 위한 나흘의 도쿄 여행 중 하루를 시작한다.

/입장 티켓은 지하철 역사에서 샀다. 한적하고 더 저렴하다.
/입장 티켓은 지하철 역사에서 샀다. 한적하고 더 저렴하다.

도쿄 지하철을 탔다. 취재차 찾았을 때는 무지막지한 비용을 내고 택시를 탔지만, 지금은 바쁠 게 없는 한량이나 다름 없으니. 마치 유레일패스 마냥 스이카(Suica)를 충전해 타는 방식이라 편리하다. 마침 지하철 역사에서 모터쇼 입장 티켓을 팔았다. 금액은 1,800엔. 현장 부스에서 구매하면 아주 긴 대기 행렬을 볼 수 있으니 요령 좋은 일본인처럼 지하철 역사에서 미리 사두는 것이다. 프레스데이에 취재차 방문하려면 티켓 대신 몇 달 전 언론인 등록을 미리 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요구된다.

/도쿄모터쇼에 쏠린 인파. 이 때까지만 여유(?)가 있었다.
/도쿄모터쇼에 쏠린 인파. 이 때까지만 여유(?)가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메인 입구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내 인산인해의 쓰나미가 몰려든다. 베이징모터쇼는 이보다 더할까? 이건 물 반 고기 반, 아니 사람 꽉 찬 공간이다. 이거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그런데 풍경이 다소 낯설다. 남녀노소 고루 나뉘는 관람객 분포가 묘했다. 대포만한 렌즈를 겨눈 출사인들과 시꺼먼 남정네들 일색인 국내 잔치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미래는 가까이 다가와 있다.
/미래는 가까이 다가와 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들어간 전시장에서 처음 만난 브랜드는 폭스바겐이었다. 도쿄모터쇼 프레스데이에는 행사 도우미가 없다고 들었는데, 역시 퍼블릭데이에는 빠지지 않나 보다. 독특하게 바코드를 팔에 새긴 폭스바겐 부스 담당자가 관람객이 VR 기기를 쓰고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미 공개된 바 있는 레트로 전기버스를 실제 보는 건 처음이다. 콘셉트카의 유통기한을 넘겼기에 흥미롭지는 않았지만 승합차나 전기트럭이 출시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기에 그저 반가울 뿐이다. 디젤 게이트의 주범은 그렇게 갱생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아우디 전기차 테마로 선보인 일레인.
/아우디 전기차 테마로 선보인 일레인.

아우디 부스에서는 일레인이 눈에 들어왔다. '모터쇼의 꽃은 컨셉트카'라는 명제를 십분 보여준다.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이 가능한 전기차 콘셉트지만 정작 난 향후 아우디의 디자인 방향성에 시선에 쏠린다. 선과 면의 명암을 교차시키며 근사한 철피를 보여주는 아우디 특유의 디자인 감성이 돋아났다. 피터 슈라이어와 발터 드 실바는 아우디를 떠났지만 그들의 흔적은 아직도 아우디에 옅게 남은 느낌이다.

/르노 R.S. 브랜드를 국내에서도 만나고 싶다.
/르노 R.S. 브랜드를 국내에서도 만나고 싶다.

르노 부스에서는 메간 R.S.가 돋보였다. 국내에서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하는 차종 중 하나다. 클리오 디젤이 타석에 설 예정이지만 이제는 수명을 다한 SM3의 후속 모델로 메간이 나타나면 어떨까? 만루 역전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안타는 확실할 텐데. 까다로운 인증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망과 같다는 생각이다. 천편일률적인 자동차 고르기 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무대로 쏠리는 시선이 향하는 곳은?
/무대로 쏠리는 시선이 향하는 곳은?

문제의 스즈키 부스를 찾았다. 애초 휴가에 도쿄모터쇼를 찾은 이유가 신형 짐니에 앉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없었다. 분명 도쿄 마쿠하리 전시장에 신형 짐니가 출시된다는 국내발 기사를 봤는데 오보였던 것. “인터넷을 통한 오보 기사에 된통 당한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은 기분이 몰려들었다. 같은 업계 종사자로써 한층 신중을 기해 기사를 쓰겠다고 교훈을 다짐한다. 그와 별개로 신형 짐니에 대한 관심은 한층 증폭됐다. ‘가질 수 없는 너’라는 노래도 있잖은가!

/’영 포티’를 위한 골드윙 출시.
/’영 포티’를 위한 골드윙 출시.

혼다는 도쿄모터쇼의 주인공을 자처한 모양새다. 무려 두 대가 눈에 들어왔는데, 하나는 한층 세련된 골드윙의 존재감이요 다른 건 도심을 위한 전기 콘셉트카인 어반 EV 모델이다. 골드윙은 명실상부 럭셔리 크루저의 대명사 같은 존재감을 뽐냈지만 달리 말해 '아재스러운' 모터사이클이었는데 말쑥한 슈트를 입어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날 나는 F6B와도 궤를 달리하는 감각에 빠져든 '영 포티'를 꼭 세 명 목도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어반 EV.
/가장 마음에 들었던 어반 EV.

전기차 어반 EV 콘셉트는 단연 최고였다. 대중적인 전기차의 표본이라고 만든 모델인데 도심 주행을 위해 만들었다고. 오리지널 시빅의 레트로 모델 같은 비율이 무척 근사하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모르긴 몰라도 무대 바로 아래 쭈그리고 앉아 뱅글뱅글 돌아가는 쇼카를 휴대폰 동영상으로 찍어대는 내 모습은 아이돌 추종자의 그것과 꼭 같았을 거다. 인사이트를 단종시킨 이래 혼다의 EV 정책은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이를 계기로 알아봐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7인승 SUV가 눈에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7인승 SUV가 눈에 들어왔다.

흔히 세계 4대 모터쇼라고 불리던 도쿄모터쇼가 점차 힘을 잃는 모양새였다. 월드 프리미어는 전무하고 콘셉트카는 많지 않으며 일본 데뷔를 앞둔 신차 소개 위주로 꾸민 듯하다. 자연스레 내게는 국내 데뷔를 목전에 둔 자동차가 이내 눈에 들어온다. 푸조 5008 SUV는 11월 21일 국내 출시를 앞둔 7인승 SUV이다. 유럽에게 인기가 높은 웨건은 국내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든 장르지만, SUV만큼은 동서를 막론하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 첫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덩치인 5008은 푸조의 기함이 될 예정이다.

/분리형 시트가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분리형 시트가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모터쇼가 좋은 건 직접 앉아볼 수 있다는 것. 전시장에 있는 모든 차를 취재하며 인터뷰를 남발하는 프레스데이 취재와는 달리 무척 편하고 즐겁다. 역시 좋아하는 건 일의 굴레보다는 놀이로 즐겨야 제 맛이다. 시트를 끝까지 밀었다가 발을 뻗어보고 계기를 조작해보는 사이 시간은 쏜 살 같다. 도쿄모터쇼 전시장에 선 지금의 난 7인승 SUV를 구매할지 9인승 미니밴을 살지 고민하는 한 명의 소비자일 뿐이다.

/또 하나의 관심작, DS 브랜드의 DS7 크로스백.
/또 하나의 관심작, DS 브랜드의 DS7 크로스백.

양산차지만 콘셉트카라고 불릴법한 자동차도 있었다. DS7 크로스백이 그 주인공. 블랙 크롬 장식에 깃든 LED 조명에 눈이 부시다.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지만 그게 부담보다는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게 신기하다. 다이아몬드 패턴이 도드라진 실내는 전작 DS5의 공식을 고스란히 따랐다. 한 때 프랑스 대통령 공식 의전차로 썼던 DS5의 실질적인 후속 모델인 만큼 온갖 화려한 장치가 눈을 사로잡는다.

/테일 램프의 화려함은 운전자를 위한 장치가 아니다.
/테일 램프의 화려함은 운전자를 위한 장치가 아니다.

DS는 시트로엥의 고급 디비전으로 내년 상반기 국내 런칭을 앞두고 있다. 분명 DS7 크로스백은 그 정점에 오를 터이고, '프렌치 럭셔리'가 어떻게 해석될 지 궁금하다. 예로부터 프랑스와 일본은 어떤 의미에서 비슷한 국가였고, 디테일에 집착하는 묘한 공통성을 지녔다. 시트로엥은 자사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짰고 그게 DS 브랜드로 나타날 것이다. 현대가 제네시스 브랜드에 천착하고 토요타가 렉서스를 공고화시키는 것과 같은 논리다.

/점점 불어나는 인파의 물결.
/점점 불어나는 인파의 물결.

시간이 지날수록 인파는 점점 불어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놀러 간 당일 입장객이 11만20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프레스데이와 퍼블릭데이를 비교하자니 즐거움이란 해석하기 나름이다. 취재라는 노동은 다소 쾌적한 환경에서, 관람이라는 즐거움은 도떼기 시장에서 누려야 했기 때문이다. 프레스데이의 쾌적함을 퍼블릭데이에서 즐길 수는 없겠지? 사람 마음이란 게 이처럼 간사하다. 그래도 하나 고르라면 인파에 힘들지만 마음만은 편안한 관람객의 입장을 선택하겠다.

/소소하지만 즐거운 도쿄모터쇼 현장.
/소소하지만 즐거운 도쿄모터쇼 현장.

별다른 모델이 없는 브랜드에서는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종이로 만든 자동차를 예쁜 누나가 증정하는데 그 누가 받지 않으랴 싶다. 각종 브로셔와 브랜드 매거진, 자그마한 자동차 카드를 소중하게 받고는 "아리가또"를 외치는 일본인들의 태도도 재미났다. 수많은 사람이 뭉쳐 있는 공간에서 그 흔한 고성 한 마디 나오지 않는 시민 의식이 대단했다.

/도쿄모터쇼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토요타.
/도쿄모터쇼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토요타.

아니나다를까? 역시 토요타는 도쿄모터쇼의 터줏대감이 분명했다. 지난 르망24시 내구레이스의 드라마틱한 역전패의 주인공이 부스 입구에 보무도 당당히 전시되어 있다. 그 탄식의 순간이 머리 속에 재생되며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꼭 쥐었다. 그게 바로 진정한 모터스포츠의 힘이리라. 옆에는 가주 레이싱의 활약상을 그린 랠리카가 놓여 있었다. 누가 뭐래도 자동차 회사의 힘은 레이싱에서 비롯된다.

/수프라의 최신형은 이렇다.
/수프라의 최신형은 이렇다.

스스로도 관심이 많았던 신형 수프라의 미래적 모습을 봤다. BMW와의 협업으로 태어날 예정인 그 차의 이미지가 실제 이렇다면 예전의 아우라는 찾아낼 수가 없을 것이다. 신형 프리우스에서 촉발된 건담 프라모델을 닮은 낯선 질감에 도무지 끌리지 않는다. 차라리 원형인 86의 순수한 느낌이 훼손된 기분이다. 수프라 SZ를 잠시 몰았던 터라 큰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예상과는 너무나 다른 모양새 아닌가? 그래도 자동차란 건 직접 몰아봐야 매력을 알 수 있으니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소문에 따르면 GR HV 스포츠의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이 신형 수프라에 영향을 줄 것이라 알려졌다.

/새하얀 유니폼을 입은 토요타 부스의 담당자들.
/새하얀 유니폼을 입은 토요타 부스의 담당자들.

잠시 과거 추억에 빠져든 순간, 나도 모르게 인파에 휩쓸려 끌려갔다. 말 그대로 물결이다. 그 세찬 흐름이 멈춘 곳은 신형 센추리의 부스 앞이였다. 도쿄모터쇼의 모든 전시장 중에서 가장 붐볐던 장소였다. 천황이 타는 상징적인 차인데다 일본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모델이다. 대부분이 일본인들일 관람객의 관심이 남달랐던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담당자들은 한껏 웃으며 길을 터주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었다.

/도쿄모터쇼를 빛낸 토요타 센츄리.
/도쿄모터쇼를 빛낸 토요타 센츄리.

과거의 선명한 디테일이 우아하게 되살아나 차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닛산 GT-R이 일본 스포츠카의 자존심이라면 센츄리야말로 ‘재패니즈 럭셔리’ 후광을 덧씌운 모델이다. 내 맘대로 고르자면 올해 도쿄모터쇼의 왕관은 센츄리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월드 프리미어가 거의 없었던 도쿄모터쇼의 체면을 세워줬다. 프로토타입이라 양산이 확정된 스타일인데다 5리터 V8 엔진과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결합으로 상징성도 잡아냈다.

/모터쇼 주마간산 이후에는 도쿄의 밤이 다가온다.
/모터쇼 주마간산 이후에는 도쿄의 밤이 다가온다.

즐거운 아비규환을 벗어나니 노을의 끝이 걸렸고, 도쿄의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간다. 뿌듯했냐고? 글쎄다. 미리 출품차들의 제원과 정보를 샅샅이 체크하고 헐떡거리며 온갖 풍경을 담아내는 부담감은 없어 좋았지만, 관광 모드로 주마간산 훑어본 이번 경험은 추억으로 남기에는 다소 옅을 것이다. 이번 교훈은 역시 노력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번 여정의 목적인 도쿄체험을 떠날 준비를 맞이한다.

최민관 기자 edito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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