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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미생 김정은

입력
2015.01.1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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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내 체제 굳히기에는 완생 모양새

대미강공으로 외교무대 데뷔는 무리

남북대화 북중관계 회복부터 풀어야

북한이 엊그제 대미 바둑판에 미묘한 한 수를 놓았다. 올해 미국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임시 중지하면 자신들은 미국이 우려하는 핵실험을 임시 중지하겠다는 제안이다.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지 않으면 4차 핵실험을 밀어붙인다는 뜻을 담은 강수이자 이제까지 북미 바둑판에서 보지 못했던 신수다. 4차 핵실험을 강행하기 위한 포석인지 아니면 북미대화를 염두에 둔 응수타진인지 아직 분간이 힘들다.

미국의 응수에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제안을 담은 조선중앙통신 보도가 나온 지 수시간 만에 가볍게 흘려 거부하는 수로 대응했다. 통상적인 한미 훈련을 핵실험 가능성과 부적절하게 연결하는 북한의 제안은 암묵적 위협(implicit threat)이며 새로운 핵실험은 여러 개의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경고를 담아서다. 그러면 북한의 다음 착점은? 여기에 올 한 해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가 달려 있다.

기세 상으로는 4차 핵실험 수순이다. 핵실험 임시 중지를 조건으로 한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핵실험으로 가겠다고 나올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북한이 이 수순을 밟아갈 때 한미는 물론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응징은 불 보듯 뻔하다. 그로 인한 한판 싸움의 득실이 어떻게 될지 판세 및 수읽기가 난해하다. 김정은도 고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 한 수 착점에 앞서 장고가 불가피해 보인다.

내부 체제 굳히기와 3년 탈상을 마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대외행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던 바다. 20대 후반의 새파란 나이에 절대권력을 이어받았지만 그의 체제 굳히기는 상당히 성과를 거뒀다. 고모부 장성택 처형이 최대 고비였지만 이를 계기로 당ㆍ정ㆍ군 전반에 걸쳐 장악력과 리더십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경제도 권력 승계 이후 소폭이나마 플러스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내부 기반 굳히기 과정에서 그는 퍼스트레이디인 리설주 내세우기, 병사 및 일반주민들과의 스스럼 없는 접촉 등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장기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대내적으로는 김정은이 미생(未生) 단계를 넘어 완생(完生)을 이룬 모양새다. 김정은은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올해 국제 외교무대 데뷔를 본격적으로 시도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여건은 최악이다. 핵무기와 미사일 문제 위에 인권 문제가 덮쳤고, 소니 해킹 소동으로 미국의 추가 제재 행정명령까지 내려진 상태다. 이렇게 꽉 막힌 상황을 보통 수로는 타개하기 어렵다. 그래서 핵실험-한미연합훈련 연계라는 강수를 들고나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이 이를 일언지하에 거부한 상황에서 김정은이 묘수를 생각해 내지 못하면 우스운 모양이 되고 결과적으로 악수를 둔 셈이 된다.

못 두는 바둑이지만 굳이 훈수를 두자면 남북관계와 대중관계부터 풀어가는 게 수순이다. 북한은 ‘자신들에 대한 압살책동에 매달리고 있는’ 미국과의 협상을 가장 중시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대미협상에서 얻을 게 없다. 북한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인식이 최악이고 설령 오바마가 결단을 내린다 해도 야당인 공화당과 일반 국민여론의 장벽을 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미 바둑은 오바마 행정부만이 아니라 야당 및 여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김정은은 이해해야 한다.

그래도 꼭 북미관계를 개선해야겠다면 남북관계 개선과 북중관계 회복이라는 우회로를 거쳐 갈 수밖에 없다. 남북대화 여건은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신년기자회견에서도 남북대화의 최대 걸림돌인 대북전단에 대해 일정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거듭 확인했다. 5ㆍ24조치 해제도 만나서 논의하자고 했다. 내민 손은 잡아야 한다.

문제는 소원한 북중관계 회복이다. 북러 정상회담 추진을 구체화하며 중국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지만 북중 정상회담 없이 김정은이 국제외교무대에 진출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김정은이 대내적으로 어느 정도 완생 모양을 갖췄다 해도 대외관계에서 일정 수준의 성과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의미가 크게 퇴색한다.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개발특구사업도 탄력을 받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아직 정상회담 한번 갖지 못한 김정은은 여전히 미생이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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