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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인정 않는 선생님들 싫어하는 글쓰기가 나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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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인정 않는 선생님들 싫어하는 글쓰기가 나의 의무”

입력
2018.04.24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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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첫 소설집 ‘편협의 완성’

자판기로 환생한 무림고수 등

엉성한 괴짜들의 별스러운 얘기

구구절절 묘사ㆍ설명 없이 휙휙

등단 7년 만에 첫 단편소설집 '편협의 완성'을 낸 이갑수 작가. 작가의 삶이 행복한가를 묻자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삶이 즐겁다”고 했다. 김주성 기자
등단 7년 만에 첫 단편소설집 '편협의 완성'을 낸 이갑수 작가. 작가의 삶이 행복한가를 묻자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삶이 즐겁다”고 했다. 김주성 기자

생애 첫 단편소설집을 낸 어떤 소설가의 작은 ‘기행’. 수록 소설에 자기 전화번호를 공개했다. 진짜 번호다. “소설을 읽고 내게 연락해왔으면 좋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락처를 남긴다”면서. 개인정보 보호는 현대인의 생존 계명인데, 모르는 걸까. 자학적 행위 예술을 해본 걸까.

용감하거나 엉뚱한 그 소설가, 이갑수(35). 2011년 등단해 7년 만에 ‘편협의 완성’(문학과지성사)을 냈다. 그를 20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나 기행의 의도를 물었다. “소설의 안과 밖을 꼰 장치죠. 제 실제 번호를 적어 둬야 소설이 완성되거든요. 작가 전화번호는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으니 사실 개인정보도 아니고요.” 이 작가의 번호는 단편 ‘조선의 집시’에 나온다. 몇 년 전 열린 백일장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나’가 ‘조선의 집시’라는 제목의 글을 낸 학생을 찾는 이야기다. ‘나’의 번호는 ‘이갑수’의 번호. ‘나’를 ‘현실적 비현실의 존재’로 만드는 고리가 전화번호다. “아직 전화가 한 통도 안 왔어요. 전화가 오면 좋을 것 같아요. 책을 꼼꼼히 읽은 사람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아마도 전화가 많이 오진 않겠죠(웃음).”

이 작가는 ‘별스러운’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환상의 세계를 빚었다. 선의의 거짓말을 할 줄 아는 인공지능 로봇, 자판기로 환생한 무림고수, 달에 착륙하는 코카콜라, 데뷔 직전 성불구가 되는 에로배우 지망생까지, 엉성한 괴짜들이 산다. “똑똑한 존재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고, 그러면 이야기를 쓸 이유가 없으니까요.” 이 작가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 놓는 법이 없다. 묘사, 설명을 생략하고 이야기의 진도를 확확 뺀다. “모든 걸 다 설명하는 글은 힘이 없어요. 숨겨진 걸 읽어 나가는 게 독서의 기본 아닌가요. ‘진짜처럼 묘사하는 것’엔 관심 없어요. 작가가 카메라와 승부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 작가는 동국대 문예창작과 대학원 재학 중 등단한 뒤 ‘가난’이 숙명인 전업작가로 몇 년을 살았다. 문화센터 강연, 학원 강의, 백일장 심사 등으로 번 돈이 원고료보다 많았다. 그래도 그는 씩씩하다. “학교 다닐 때였어요. ‘사전 찾아보니 선생님 말씀이 틀립니다’고 알려드렸더니, ‘사전이 틀렸으니 사전 만든 회사에 전화해 알려 줘라’고 하신 분이 있었어요. 그런 ‘선생님들’이 싫어하는 걸 해 보는 게 젊은 작가의 의무 아닐까요. 어른들이 고개를 가로젓는다는 건 젊은이들이 잘하고 있다는 뜻이죠. 쓰고 싶은 걸 쓸 거예요. 젊은 작가는 잃을 게 없어요.”

그는 고집 센 작가다. “소설 완성도가 떨어진다 해도 제가 하고 싶은 걸 포기하기는 싫어요. 단편 ‘T.O.P’에 점선을 넣고 싶었는데, 출판사 편집부에서 책 만들기 어려우니 빼자고 했어요. 제가 끝까지 우겼죠. 소설집을 묶으면서 몇 년 전에 쓴 소설을 거의 손보지 않았어요. 소설 쓸 때의 제가 생각한 걸 남겨 두는 것도 의미 있으니까요. 문장이라는 게 쓰면 쓸수록 좋아지는 것인지 확신도 없고요.”

이 작가는 ‘작가의 말’에 “이제 나는 내가 읽고, 쓴 문장의 총량이 나의 재능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재능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것도”라고 썼다. 자신만만하다.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놓기 싫은 재미있는 소설, 잘 읽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누군가 제 책을 읽다 포기하고 덮는 건 제일 상상하기 싫은 장면이에요(웃음).”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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