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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아픔'을 먹고 자란다

입력
2015.04.0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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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내와 함께 어린이집으로 아들을 찾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아들이 시야에 들어오자 아내 표정이 사뭇 심각해졌다. 선생님한테서 아들을 넘겨받은 아내는 따지듯이 물었다. “선생님! 00(아들) 입이 왜 이래요?” 아내 말을 듣고 보니 오른쪽 아랫입술이 부어 있었다. 선생님은 어쩔 줄 몰라 하며“놀이터에서 뛰놀다 넘어지면서 미끄럼틀에 부딪혔다”고 설명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봤다. 20개월도 안된, 근육은 물론이고 운동신경이 아직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아들놈이 뛰놀기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얼마든지 넘어지고 부딪히며 다칠 수 있다고 봤다. 또 그러면서 더 잘 뛰게 되고 더 튼튼하게 클 것이라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신발장에서 자기 신발을 찾아 들어 보이며 “찾았다!”를 엄마 아빠에게 연발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별일 아니었다.

그런데 아내 생각은 달랐다. 아들 입안을 열어 보더니 “당장 병원에 가야 한다”며 유모차를 병원으로 몰았다. 동네 소아과 의사는 “더 심하게 찢어졌으면 기워야 했을 텐데 이 정도면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며 입안 연고와 약간의 소염제를 처방했다. 아내는 의사 말을 듣고서야 평온을 찾았지만 속상함은 집에 돌아와서도 한 동안 풀리지 않는 듯 했다. “애들이 그러면서 커는 거지. 뭘 그런 걸 갖고 그래.” 일부러 사고를 내서 상처를 입을 것까지는 없지만 성장 과정에서 좀 다치기도 해봐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자 아내는 서운해 했다.

양치질을 시킬 때도 ‘입안 벌레 닦아 내자’며 벌레를 팔고 있는 아빠. 아들이 이렇게 해서 이 아빠를 닮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양치질을 시킬 때도 ‘입안 벌레 닦아 내자’며 벌레를 팔고 있는 아빠. 아들이 이렇게 해서 이 아빠를 닮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주변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들을 사고 없이, 몸에 흉터 없이 곱게 키우는 데 상당한 관심과 정성을 쏟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아들의 엄마도 여느 엄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아빠의 생각은 다르다. 부모들이 신경을 쓴다고 해서 아이들 사고가 완벽하게 예방될 것도 아니지만, 과잉 보호해서 좋을 것 없다는 입장이다. 그 사건이 있은 이후 아들은 며칠 동안 자신의 입을 가리키며 시도 때도 없이 “아야 했다(다쳤다, 아프다)”를 반복했다. 그 입안 작은 상처에 엄마가 보여준 사상 최고 수준의 관심에 적지 않은 달콤함을 맛봤을 것이고, 수시로 그 영광을 재현하고팠을 것이다.

실제 최근에 만난 한 육아 대선배도 이 아빠의 생각에 힘을 실었다.(요즘 누구랑 무슨 이야기를 하든 서두에 애 키우는 이야기를 푼 후 본론으로 넘어갈 정도로 육아 이야기는 일상화 돼 있다.) 곱게 곱게 자라 아파 보지 않은 요즘 아이들은 다쳐본 적도 피가 나본 적도 없으니 아픈 것을 모르고, 남이 아파해도 그 고통을 모른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에게 해를 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반화 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아주 생뚱맞은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 이 아빠의 육아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은사님 한 분도 이번 사건을 듣고 자식에 대한 과잉 관심 경계를 주문했다. 부모의 관심 상당부분이 간섭으로 이어지게 돼 있는데 그 간섭은 부모 경험 중심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 틀 속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두 이야기는 모두 아이들을 좀 내버려 두라는 이야기. 아들 입에 생긴 상처에 엄마와 달리 쿨한 태도를 취하던 아빠지만 이 대목에선 뜨끔하다. 양치질을 시킬 땐 “입안 벌레 닦아내자”, 아들이 가지 말았으면 하는 곳을 향해선 “거긴 벌레 있어”라고 이야기 하고 아빠다. 죄 없는 벌레들을 팔아 육아노동이 잠깐 잠깐 수월했을지는 몰라도 아들은 아빠의 이 틀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잃었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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