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감축에 전국서 3억원 미지급
"법원에 미운 털 박힐까봐" 전전긍긍
A변호사는 6개월 전 국선변호 사건 하나에 온 힘을 다했다. 의뢰인은 돈이 없어 사선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한 40대 여성이었다. 지방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작은 법률사무소에 취업한 A변호사도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의뢰인의 딱한 사정을 뒤로할 수 없어 변론에 거의 한 달을 매달렸다. A변호사는 고액 소송을 수임할 기회가 없어 최대한 많은 재판에 서야 돈을 벌 수 있는 처지였다. A변호사는 “후회 없이 일해 뿌듯하다”면서도 “변호료나 제때 받았으면…”이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에게 지급돼야 할 30만원 남짓한 국선변호료가 제때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A씨처럼 법원에서 국선변호료를 제때 지급받지 못하는 사례가 1,000건을 넘고 있다. 28일 대한변호사협회의 ‘국선변호료 연체 현황’ 조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042건, 금액으로는 3억1,260만원의 국선변호료가 연체되고 있다. 이는 조사 3일 간 집계여서, 앞으로 조사가 마무리되면 연체 건수와 금액은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경우 서부지법이 74건에 2,220만원, 서울중앙지법은 68건에 2,040만원, 서울동부지법이 51건에 1,530만원 등 211건에 총 6,330만원이 연체되고 있다. 현재까지 가장 높은 연체율을 보이고 있는 곳은 울산지법인 것으로 변협은 전했다.
국선변호료 연체 사태는 국선변호 사건은 늘고 있는데 관련 예산은 줄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국선변호료 예산은 전년보다 60억원 이상 줄어든 477억4,900만원이다. 예산이 500억원대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반대로 국선변호인 사건은 2013년 11만1,300건에서 지난해 12만4,800건에 이어 올해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국선변호인에는 매달 고정 급여를 받는 국선 ‘전담’변호사와, 관할 법원이 등록된 변호사를 상대로 국선변호를 무작위로 지정해 사건당 보수를 지급하는 국선 ‘일반’변호사가 있다. 이 가운데 법원이 연체하는 변호료는 국선일반변호사의 몫이다.
하지만 이들 변호사들은 법원의 수임료 외상에 대해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인천지법에서 1년 6개월째 소송구제 사건 변호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K변호사는 “법원에 미운 털이 박힐 수 있어 요구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국선변호인 지정권한은 법원이 가지고 있다. K변호사는 “법원 입장에선 군말 없이 일하는 변호사들에게 눈이 갈 수밖에 없다”며 “피고인이 변호사를 고른다고는 하지만 이 바닥의 상식은 그러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대법원 측은 담당 부처인 기획재정부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국선변호료 예산편성을 기획재정부가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관계자는 “올해 예산 규모가 대폭 줄어 부족할 수밖에 없지만 편성된 관련 예산은 90%이상 제대로 집행됐다”면서 “나머지는 해결할 뾰족한 수가 없어 우리로서도 난감하다”고 말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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