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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그리스식 협상술

입력
2015.07.0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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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전격 사임한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전 재무장관은 입이 험하기로 악명 높았다. 채권단을 “병든 암소를 채찍으로 때려 우유를 짜내는 테러리즘”이라고 일갈하고, 자신에 대한 채권단의 혐오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등 협상 파트너의 심기를 긁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1월 미국 CNN 방송 인터뷰에서는 “언제든지 체크아웃 할 수 있지만, 결코 떠날 수는 없다”는 미국 록밴드 이글스의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의 가사를 언급하며 유로존을 출구 없는 암울한 상황의 호텔에 비유했다.

▦ 7일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후임인 유클리드 차칼로토스 재무장관이 협상안 없이 빈손으로 회의장에 들어와 채권단의 어안을 벙벙하게 했다. 회의 발언보다 호텔방에 비치된 종이에 갈겨 쓴 그의 메모가 더 주목 받았다. 개혁에 대해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는 그리스 정부의 ‘배째라’식 태도에 유럽연합(EU) 수뇌부도 폭발했다. 장 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은 “대체 나를 뭘로 보는 거냐”고 격분했고, 도널드 투스크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제 더 이상 데드라인이란 말을 숨기지 않겠다. 분명히 말하는데 이번 주말이 마지막”이라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 1929년 대공황 때 고층객실을 예약하는 손님에게 호텔 프런트가 “주무실 겁니까, 뛰어내릴 겁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경제적 이유로 자살하는 ‘이코노사이드(Econocide)의 유래다. 그리스는 재정위기 이전 자살하지 않는 나라로 유명했다. 낙천적인 국민성, 자살을 금지하는 정교회의 규율 덕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살률이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아이슬란드나 스페인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위기를 겪었음에도 별 차이가 없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사회안전망의 차이가 컸지만 외부충격에 허약한 느슨한 체질도 한몫 했을 것이다.

▦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이 안보 변수까지 부상하면서 복잡해졌다. “그리스 국민의 뜻을 존중한다” “그렉시트는 피해야 한다”는 등 미국과 러시아에서 유로존을 압박하는 비슷한 논평들이 나오나 속내들은 제각기 딴판이다. 그리스의 명줄을 쥐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는 ‘유럽통합의 파괴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길 태세다. 정치적으로 봉합할 수 있겠지만 그럴수록 상처는 더 깊어진다는 게 문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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