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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강제 파티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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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강제 파티 증후군

입력
2015.12.2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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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에서 광고 메시지가 왔다. “솔로 친구에게도 훈훈한 크리스마스를 선물”하라는 권유였다. 매우 익숙한 이 대사에서 핵심은 “~도”다. “~에게도”가 붙는 주체는 그게 누구든 원래의 훈훈한 크리스마스에서 배제된 이방인이다. “불우이웃에게도”,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그들에게 이 복된 날을 함께 즐기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시혜적 태도는 따뜻한 미담으로 자주 출몰한다. 반면 “커플에게도”라는 말은 “만수르에게도”처럼 쓰이지 않는다. 그들의 훈훈함은 당연히 보장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훈훈한 크리스마스일까?

메리 크리스마스. 24일은 크리스마스이브이고, 25일은 성탄절이자 공휴일이다. 아마 많은 사람이 크리스마스 계획을 묻고, 또 질문 받으면서 오늘까지 왔을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인터넷에는 수면제를 먹고 자서 26일에 깨겠다는 둥, 이번 크리스마스도 케빈과 함께라는 등 한탄이 넘쳐난다. 애인과 함께할 수 없는, 혹은 어딘가로 나가서 즐길 수 없는 크리스마스는 ‘훈훈’하지 못하므로 창피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즐기는 것은 중요하다. 아직도 기억나는 카드 광고 CM송은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로, 그 당시 굉장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소비와 유흥을 죄악처럼 여겨온 한국에 도래한 메시아적 메시지…까지는 아니고, 어쨌든 당당하게 향락을 누리자는 선언은 이제 꽤 보편적인 감성이 된 듯하다. 우리는 ‘케세라세라’나 ‘카르페디엠’ 류의 잠언에 익숙하다. 온 세상이 나서서 즐기라고, 인생은 네 것이라고, 오늘의 행복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부추기며 ‘궁디를 팡팡’하니 2015년의 인간은 즐기지 아니할 이유가 없다.

크리스마스 파티. 게티이미지뱅크.
크리스마스 파티. 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이러한 ‘즐김’의 방법이나 형식이 너무나 획일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솔로가 보낼 수 있는 훈훈한 크리스마스는 보통 파티로 귀결된다. 연인과 오붓하게 보낼 수 없다면 화려한 싱글답게 렛츠 파티! 나는 내 마음대로 이걸 ‘강제 파티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그 왜 있잖은가, 맥주 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단 즐겨!” 식의 맥락 없고 마구잡이로 유쾌한 분위기. 청춘을 즐기고 ‘잘 나가’려면 꼭 방탕하게 맥주가 넘치도록 건배를 하고 뜬금없이 소리 질러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즐김’은 늘 이렇게 술, 이성, 멋진 장소, 노래, 춤, 게임 등의 스펙터클로 가득 차 있다. SNS가 활발해지면서 그렇게 즐기는 나를 전시하고 타인의 삶을 구경하는 것 또한 또 다른 차원의 파티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에게만 유효하다. 어떤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진짜 즐김’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런 식의 유흥이 전혀 즐겁지 않으며, 오히려 불편하고 답답할 수 있다. 오래 전의 한 크리스마스에, 나는 사람 많은 곳이라면 질색하는 주제에 영혼이 빠져나간 채로 콩나물시루 같은 클럽에 서서 이리저리 떠밀려 다녔다. 온 세상이 흥에 겨워 있는데 혼자 집에 있으면 어딘가 볼품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괜히 찍어 바르고 어디든 나가려고 기를 썼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때의 나는 전혀 즐기지 못했다. 즐겨야 한다는 압박에 등을 떠밀려 나 자신을 참신한 방식으로 괴롭혔을 뿐이다.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듯, 어떤 날을 어떤 방식으로 꾸려갈지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기쁨이나 슬픔, 외로움은 오롯이 당신의 것이고, 억지로 따르거나 바꿀 수 없다. 그 감정을 누군가 빼앗아서 대신 짤랑짤랑 으쓱으쓱 하게 내버려 두지 말자. 이번 크리스마스에, 나는 강제 파티에 참여하는 대신 대청소를 감행하고자 한다. 방인지 마구간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라 매일 아침 눈 뜰 때마다 아기 예수의 기분을 대리 체험하기 때문에. 아주 즐거울 것이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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