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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아이는 왜 이모에게 맡겨져야 했을까

입력
2016.08.1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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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데리고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서울에서도 노른자 땅에 위치한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앞에서 나는 잠시 넋을 잃었다. 세련된 건물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모양새가 마치 거대한 요새처럼 느껴졌다. 까다로운 보안 절차를 뚫고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식사를 위해 지하에 있는 복합 쇼핑몰로 내려왔다. 그곳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또래 엄마들이었다. 유모차를 끌며 쇼핑몰을 활보하는 그녀들의 육아는 무척이나 우아해 보였다.

잠시 나와 내 아들의 외출을 떠올려 보았다. 뙤약볕 아래서 놀이터에 가겠다고 떼쓰는 아이와 실랑이하며 집 앞 슈퍼에만 다녀와도 금세 옷이 축축해지고 얼굴이 벌개진다. 형편없는 몰골로 집에 돌아올 때면 진이 빠져 아이가 보채는데도 달랠 힘이 없다. 불쾌지수와 함께 아이를 향한 목소리 톤도 올라간다. 하지만 이곳의 엄마들은 달라 보였다. 쾌적한 공기 안에서 여유롭게 걷는 그녀들은 곱게 차려 입고 굽 있는 구두까지 신었다. 하기야 집에서 엘리베이터만 타고 내려오면 이곳에 도착하니 어려운 일도 아니다. 에어컨의 냉기에서 벗어날 틈 없이 마트와 병원, 키즈카페에 육아용품 가게까지 다닐 수 있으니 이곳에 살면서 아이를 키우면 육아 스트레스는 없을 것 같았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아이가 자라나는 환경도 달라지지만 아이를 길러내는 엄마의 스트레스 지수도 달라진다. 엄마의 육아부담이 부익부 빈익빈 현상처럼 없는 자에게 가중되어 있다는 말이다. 부자들이 우아한 육아를 실현시킬 때 반대편 정점에 있는 자들의 육아는 필사의 전쟁터다. 푹푹 찌는 방안에서 아이를 안고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육아용품도 없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지만 아이 맡길 곳은 없다. 육아에 무관심한 남편과의 불화는 스트레스에 기름을 붓는다.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덜컥 육아라는 험난한 세계로 들어오고 만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저소득 취약계층의 육아 스트레스가 때로는 선을 넘어 아이를 향한 학대 행위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3세 아이가 이모에게 학대당하다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졌다. 물론 이모의 죄는 천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나는 그녀들의 속사정에도 관심이 갔다. 엄마는 왜 아이를 이모에게 맡겨야 했을까. 그것도 지적장애를 지닌 이모에게 말이다. 어쩔 수 없는 밥벌이의 굴레 탓이리라. 달리 방법이 없었으므로 아이는 이모와 살아야 했다. 살기 위해 내린 결정이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고 말았다. 이모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뜩이나 삶이 힘든데 아이까지 맡아야 해서 견딜 수 없었다고. 하루에도 참을 인(忍)자를 10번씩 가슴에 새겨가며 행하는 게 육아인데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아이를 키워내기는 어렵다. 누군가 그녀들의 육아 스트레스를 먼저 알고 손을 내밀었다면 아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육아에도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가 필요하다. 저소득 취약계층의 출산과 육아를 나라가 직접 나서서 관리해야 한다. 그들이 도움을 요청하길 기다리면 늦는다. 2015년부터 서울시가 행하고 있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는 그런 맥락에서 의미 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저소득 계층의 출산과 양육을 직접 찾아가 지원해 준다지만 그 대상도 한정적이고 무엇보다 서울시 일부 지역에 국한돼 있다. 하루 빨리 제도를 보완하고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 저출산 정책에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이미 태어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의 삶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급증하고 있는 아동학대 사건은 취약계층의 육아 스트레스와 직결되는 만큼 더 이상 육아를 개인에게 맡겨서는 곤란하다.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아동학대 사건들을 대할 때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울고 있을 아이들이 떠오른다. 잔인하고 무자비한 부모이지만 아동학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그 부모들의 나약한 손을 잡아주는 길뿐이다.

이정미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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