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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풀리자, 동네 유원지 된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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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풀리자, 동네 유원지 된 캠퍼스

입력
2017.04.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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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란듯 술 먹고 화투판 깔고

빈 강의실서 제 집처럼 다과

아이들 킥보드ㆍ개 짖는 소리에

학생들 “공부 집중 안돼” 불만

“캠퍼스가 주민들의 ‘마당’인가요.”

올해 덕성여대에 입학한 김모(19)씨는 “캠퍼스에 외부인이 너무 많아서 한번 놀랐고, 제집처럼 사용하는 데 또 한번 놀랐다”고 했다. “파우더 룸(화장대 등이 마련된 여성전용 화장실)은 중고등학생들의 놀이터로, 빈 강의실은 여유롭게 다과를 즐기는 중년 여성들의 쉼터가 됐다”는 게 김씨 설명이다. “학생들의 ‘터전’이어야 할 캠퍼스가 외부인에게 ‘점령’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요.”

완연한 봄 날씨를 즐기기 위해 캠퍼스를 찾는 주민들이 늘면서 학생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산책로를 거닐다 내친김에 학교 안 구석구석까지 자유로운 탐방(?)을 즐기는 탓이다. 대학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지 않는 데다, 2000년대 초반부터 주민들에게 캠퍼스 이용을 적극 장려하면서 나타난 일종의 부작용이다. 한국외대 졸업생 김모(28)씨는 4일 “벤치에 둘러 앉아 술을 마시거나, 심지어 화투 판까지 벌이는 주민들도 본 적이 있다”고 혀를 찼다.

재학생 상당수는 학습권 침해를 호소한다. 아이들 뛰노는 소리, 애완견 짖는 소리 등으로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게 공통된 불만이다. 서울시립대생 최모(26)씨는 “주말마다 도서관과 맞닿아 있는 공터에서 아이들이 자전거, 킥보드 타는 소리가 고스란히 도서관까지 전달돼 공부장소를 옮겨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했다. 벚꽃이 필 무렵 매년 주민들과 캠퍼스투어를 진행해온 경희대에서도 중간고사를 앞둔 학생들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불만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등산로가 연결되거나 유명세를 치른 대학의 상황은 더 심하다. 배봉산을 끼고 있는 서울시립대 관계자는 “등산객들이 지닌 휴대용 라디오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건 양반이고, 하산 후 거나하게 취해 교정에서 고성을 내지르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음주 및 소란행위 금지’ ‘평일엔 학교 출입 자제’라는 현수막 등을 학내 곳곳에 내걸었지만 소용이 없다. ‘돈을 벌게 한다’는 뜻의 중국어 ‘리파(利發)’와 발음이 비슷해 중국인 관광객이 꼭 찾았던 이화여대는 지난달 중국정부가 한국관광 금지령을 내리기 전까지 몰려드는 중국인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대학들은 자구책을 실행하고 있다. 서울시립대와 한국외대는 자체 순찰대를 꾸려 캠퍼스 치안과 환경을 살피고 있다. 이화여대는 영문과 중문으로 출입제한 표지판을 설치했다. “평일만이라도 외부인 출입을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학생들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미봉책들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결국 갈 곳, 쉴 곳, 놀 곳이 부족해 생긴 현상 아니겠느냐”라며 “주민들의 배려와 학생들의 상생정신에 기대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라고 전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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