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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교육 공화국 단상

입력
2017.09.2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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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사교육 공화국이다. 사교육의 지배를 받는 연령대나 영역이 무척 광범하고 다양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영유아부터 대학생까지 어떤 형태로든 사교육에 매여 있지 않은 경우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이들은 대개 경쟁에서 남보다 좀 더 앞서 나가기 위해 사교육에 참여한다. 더욱이 인성교육조차 사교육에 의존하는 부모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기실 우리 사회에서 사교육은 교육이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무엇이 사교육을 이런 괴물 같은 존재로 키웠는가?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국민의 강고한 물질주의적 욕망과 그것을 뒷받침하기에는 너무 제한적인 기회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즉 고도 성장기에 배태된 물질주의적 욕망과 외환위기 이후 한층 열악해진 기회구조 사이의 커다란 간극이 문제인 것이다. 이 간극에서 비롯된 부모세대의 불안감이 사교육에 끝없이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금년 초에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는 우리 국민의 가치관과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괄목할 만한 소득상승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의 물질주의 가치관은 지난 30년간 조금도 변한 게 없다. 일반적으로 소득수준의 향상은 탈물질주의 가치관으로의 이행을 가져온다. 생존에 대한 불안에서 헤어나 자연스럽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가치관의 변화가 우리 사회에선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기성세대의 강고한 물질주의 가치관은 그들이 생각하는 ‘좋은 부모상’에도 명징하게 투사되어 있다. 지난해 육아정책연구소가 20~50대 성인 남녀 1013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좋은 부모가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요건이자 최대 걸림돌로 ‘경제력’을 꼽았다. 돈이 없으면 좋은 부모가 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수저계급론이 팽배할 수밖에 없는 사교육 공화국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다.

사회구조나 삶의 조건이 변화해도 사람이 바로 바뀌긴 어렵다. 사람의 가치관이나 태도는 가장 더디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수십 년 동안 요지부동 상태인 우리 국민의 물질주의 가치관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물질주의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 한 국민의 삶은 계속 고단할 수밖에 없고 행복수준이 높아지는 것도 난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숱한 사회문제를 유발하고 있는 물질주의 가치관에 균열을 가져오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이와 관련해선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더라도 최소한 생존의 위협에선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경쟁에서 실패한 사람을 따뜻하게 보듬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차제에 우리 시민교육의 현주소를 되짚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 교육이 과연 자라나는 세대를 타인과 더불어 사는 지혜와 공공성을 지닌 공민으로 양성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살펴보자는 것이다. 아울러 부모세대가 부모 된 도리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도와주는 노력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부모의 가치관은 자녀에게 오롯이 전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대다수 부모세대는 자녀가 남다른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데 진력하며 살아왔다. 빠듯한 살림에도 자녀에게 항상 뭐든지 채워주려고 애를 쓰면서 과거 어느 세대보다 사교육 투자에도 열성적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경쟁력을 높인다는 핑계로 자녀가 비움과 결핍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진 않았는지 먼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비움이나 결핍을 경험하지 못한 아동은 감사와 행복을 느끼기도 어렵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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