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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하나에도 시를 쓰고 그림 그리는... 그것은 동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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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하나에도 시를 쓰고 그림 그리는... 그것은 동심

입력
2017.04.2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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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서 나온 코끼리

황K 글,그림

책읽는곰 발행ㆍ44쪽ㆍ1만2,000원

시를 읽으며 마음 속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아이는 다시 코끼리를 만나고, 코끼리와 놀고, 코끼리에게 이름을 붙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동심이라 부른다. 책읽는곰 제공
시를 읽으며 마음 속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아이는 다시 코끼리를 만나고, 코끼리와 놀고, 코끼리에게 이름을 붙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동심이라 부른다. 책읽는곰 제공

‘달개비떼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 꽃 하나하나를 들여다본다. / 이 세상 어느 코끼리 이보다도 하얗고 이쁘게 끝이 살짝 말린 / 수술 둘이 상아처럼 뻗쳐 있다. / 흔들리면 / 나비의 턱더듬이 같은 수술! / 그 하나하나에는 작디작은 이슬 한 방울이 달려 있다. / 혼처럼 박혀 있는 진노란 암술 / 그 뒤로 세상 어느 나비보다도 파란 나비! / 금방 손끝에서 날 것 같다. / 그래, 그 흔한 달개비꽃 하나가 / 이 세상 모든 꽃들의 감촉을…… // 상아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 풀잎 끝에서 꼭 한 바퀴 구르고 / 사라진다.’ (황동규 시 ‘풍장58’ 전문)

시인이 꽃을 보고 시를 썼다. 화가가 그 시를 읽고 그림책을 지었다. 책 속의 아이는 들길을 따라 집으로 가는 중. 산들바람 불어 풀숲을 스치는 소리가 들리고, 거기 처음 보는 꽃 하나 피어 있다. 상아처럼 기다란 수술이 참 예쁘다. 그런데 ‘어, 수술이 움직인다! 벌레가 있나?’ 꽃 속에서 뭔가 살금살금 걸어 나온다. ‘저…… 저건?’ 코끼리다!

꽃에서 나온 코끼리는 아이가 내민 손바닥 위로 톡 떨어진다. 눈을 깜빡깜빡, 귀를 팔랑팔랑, 긴 코를 살랑살랑. ‘와아, 살아 있는 진짜 코끼리다!’ 아이는 쿵쾅쿵쾅 가슴이 뛴다. ‘어쩌면 이렇게 작을까? 꽃 속에 사는 걸까?’ 눈을 마주치며 아이는 생각한다. ‘코끼리는 뭘 좋아할까? 무슨 풀을 먹을까? 코끼리에게 무얼 보여 줄까?……’ 아이는 가방에서 바람개비를 꺼내 코끼리와 함께 논다. 민들레, 엉겅퀴, 강아지풀을 뜯어 먹인다. 필통을 꺼내 보여 준다. 초록색 자로 코끼리의 키를 재어 주고, 학용품들의 이름을 알려주고, 진짜 아끼는 구슬을 놀잇감으로 내어 준다. 그러다가 코끼리가 필통 속에서 잠들자, 깨지 않게 꼼짝 않고 곁을 지켜 준다. 아이는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다. 별똥별을 처음 봤을 때처럼 신비로우면서도, 별이 모두 떨어져 버리면 어쩌나 싶었던 그때 심정처럼 조마조마하다. 아! 화가가 그려낸 이 장면이란……! 잠든 코끼리를 바라보는 아이의 까만 눈동자에 별 같은 동심이 아롱지는데, 해 기울어 붉어진 하늘도 숨죽이고 있다.

아이 얼굴에 시인이 겹치고 화가가 포개진다. 문득 알겠다. 화가와 시인과 아이는 하나였구나! 그림책이 시에서 불러 온 것은 코끼리만이 아니었구나! 작디작은 이슬을 단 나비의 더듬이, 금방 손끝에서 날 것 같은 파란 나비, 이 세상 모든 꽃들의 감촉, 떨어져 풀잎 끝에서 꼭 한 바퀴 구르고 사라지는 물방울……. 이 모든 생명의 은유들은 곧 동심의 은유들이었구나!

한참 만에 깨어난 코끼리는 자꾸만 꽃 있는 데를 쳐다본다. 말을 안 해도 아이는 안다. 코끼리를 살포시 들어 올려 꽃으로 데려간다. 그때, 부아아앙- 빵빵! 오토바이 달려온다. 깜짝 놀란 코끼리 바동거리자 아이가 몸을 던진다. “어, 어어? 안 돼!” 정강이가 욱신거리고 손바닥도 따끔거리지만, 코끼리는 괜찮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윽고 아이는 코끼리와 작별인사를 나눈다. “내 이름은 한별이야. 너는…… 꽃에서 나왔으니까 꽃끼리라고 부를게.” 꽃끼리가 코를 뻗어 인사하고 꽃 속으로 뒷걸음질 친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마침내 기다란 상아만 꽃 밖에 남는다. “잘 있어! 내일 또 올게.” 아이는 천천히 돌아선다. 등 뒤로 산들바람이 분다. 아이는 내일 또 코끼리를 만날 수 있을까?

달개비 떼 앞에 쭈그리고 앉아 꽃 하나하나를 들여다볼 수 있다면, 시를 읽으며 마음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렇게 설레는 가슴 간직하고 있다면… 아이는 다시 코끼리를 만나고, 코끼리와 놀고, 코끼리를 돌보고, 코끼리에게 이름을 붙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동심이라 부른다. 동심 앞에서, 오토바이는 천천히 달려 주기를.

김장성 그림책작가ㆍ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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