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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 구해 와라" 자유시간까지 사적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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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 구해 와라" 자유시간까지 사적 통제

입력
2014.08.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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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따라 서열화한 인간관계… 상관의 불합리한 지시도 따라야

업무 무관한 가족까지 상명하복… 군 수뇌부부터 인식 바꿔라

경북의 한 공군부대 조모 소령은 지난해 전속갈 때까지 중위 김민재(가명)씨에게 2년간 야동을 다운받아 공급해 줄 것을 지시했다. 조 소령은 자신의 성적 취향에 맞는 야동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퇴근 이후 늦은 밤에도 불시에 전화를 걸어 야동을 갖다 달라고 지시했다. 지난해 전역한 김씨는 “부대 내 다른 간부들 모두가 알고 있었고, 특히 장교가 상관의 ‘야동 셔틀’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수치스러웠다”고 말했다.

당시 같은 부대에서 근무한 예비역 중위 박지훈(가명)씨는 조 소령을 위해 퇴근 후 세달 동안 꼬박 A4용지 30장 분량의 지휘성공사례 보고서를 써야 했다. 공군사관학교 출신의 조 소령이 “자료 모으기 힘들고 시간도 부족하다”며 대필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박 중위는 “명령과 다름 없는 대대장의 지시를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밤낮 없이 보고서에 매달렸지만 조 소령은 미안한 내색은커녕 “얼마나 썼냐” “언제 갖고 올거냐”며 다그치기만 했다. 보고서를 공군본부 공모전에 제출한 조 소령은 장려상을 받았고, 인사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받아 다음 해 중령으로 진급했다. 그는 “업무와 상관없는 사적인 일마저 거리낌 없이 시키는 뻔뻔함에 주위 사람들까지 혀를 내둘렀다”고 했다.

지난 5일 오전 경기도 동두천시 육군 28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윤 일병 사망 사건 가해자들이 호송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오전 경기도 동두천시 육군 28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윤 일병 사망 사건 가해자들이 호송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적 통제로 이어지는 상명하복

우리 군의 상명하복 문화는 훈련을 너머 일상과 내면까지 파고든다. 훈련과 전시 상황에서야 엄격한 위계질서가 필요하다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모든 인간관계를 계급에 따라 서열화한다. 일과 이후 자유시간에도 자유를 허용치 않고, 오로지 상관의 필요에 따라 사적 통제를 강화한다. 이 같은 서열문화는 구타ㆍ가혹행위 등 폭력을 허용하는 것으로 확대되고, 이에 시달리는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상관에게 총을 겨눈다. 지난 4월 선임병의 구타로 숨진 28사단 윤모(20) 일병과 6월 22사단 일반전초(GOP)에서 총기를 난사한 임모(22) 병장도 그 중 한 명이다.

군 당국은 사고가 터질 때마다 지휘관의 직무상 권한 남용 방지, 병 상호간 명령 금지 등과 같은 병역문화 개선책을 내놨다. 그러나 한국국방연구원 관계자는 “의견개진이 허용되지 않는 닫힌 조직에서는 상급자가 불합리한 지시를 해도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부생활을 너머 가족 관계에까지 확대되는 서열문화는 우리 군의 부끄러운 이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업무수행과는 전혀 상관없는 가족들조차 남편ㆍ아버지의 계급에 따라 위아래를 구분하고, 상급자 가족을 모시는 관행이 유지된다.

지난해 12월 충북 충주의 한 부대에서 전역한 예비역 중위 강민상(가명)씨는 “부서 회식 때마다 안절부절했다”고 말했다. 부대 내 공원에서 열린 부부 동반 바비큐 회식 때마다 부서장인 소령의 30대 부인은 자리에 편히 앉아있는데 반해 40~50대의 상사, 중사 부인들이 부리나케 움직이며 자리를 정돈하고,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그는 “폐쇄적인 부대에서 남편 계급은 곧 아내의 계급”이라며 “부서장 부인에게 밉보이면 군 생활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알아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장성들의 부인이 김장철마다 상관의 집에 가서 김장을 돕는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다. 남편의 계급이 곧 부인의 계급인 것을 당연시하는 군 문화는 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 상명하복을 강조한다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전우애ㆍ군 전력도 약화

이 같은 문화는 결코 전투력, 업무 효율성을 높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화기가 주어지면 평소 자신을 괴롭힌 상관에게 위해를 가하는 경우가 많다. 월남전에서 미군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수류탄을 던지거나 총을 쏜 사례는 1,700건이 넘는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군 실태조사를 할 때마다 전쟁이 나면 구타ㆍ가혹행위 가해자 선임병부터 총으로 쏴 죽이겠다는 답변이 상당하다”며 “무조건적인 상명하복으로 인한 병영부조리가 전우애를 갉아먹고, 군 전력까지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병무청이 올해 6월 16~29일 성인 남녀 216명을 대상으로 한 ‘공정병역 국민인식도 조사’에서 ‘상급자의 구타ㆍ욕설ㆍ인격적 모독 등 괴롭힘’(22.4%)은 가장 필요한 군 개선 사항으로 꼽혔다.

하지만 군 수뇌부는 이 같은 상명하복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김원대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2000년대부터 병사 인권에 관한 논의가 계속됐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은 것은 병사들이 제각각 의견을 이야기하면 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없다는 부정적 시각이 여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방대 관계자도 “구타ㆍ가혹행위가 군의 지휘체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사고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경직된 상명하복에서 파생된 병영부조리 근절이 열린 군대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원대 연구위원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국방 옴부즈맨제도를 도입해 군 인권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태훈 소장은 “군에서 발생한 사고를 헌병대 대신 민ㆍ관ㆍ군 합동으로 수사한다면 진상규명과 구타ㆍ가혹행위를 없애는데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임준섭기자 ljscogg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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