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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8할은] 김형석 "유재하 선배가 대중음악의 길 가게 했다"

입력
2017.04.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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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삶을 바꾸는 순간이 있습니다. 유명 문화계 인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들의 인생에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남긴 작품 또는 예술인을 소개합니다.

프로듀서 김형석은 직접적으로 슬픔을 드러내는 화법을 즐기지 않는다.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처럼, 담담한 표현에서 더 절절한 아픔이 드러날 수 있다고 믿는다. 홍인기 기자
프로듀서 김형석은 직접적으로 슬픔을 드러내는 화법을 즐기지 않는다.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처럼, 담담한 표현에서 더 절절한 아픔이 드러날 수 있다고 믿는다. 홍인기 기자

직업을 선택할 때 강력한 계기는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 난 계기가 없었다. 어렸을 때 피아노 선생님인 어머니 옆에서 일어나고 잠들 때까지 피아노 소리를 들었다. 나도 따라 건반을 누르다 보니 점점 음악에 욕심이 났다. 밥을 먹고 옷을 입듯, 자연스럽게 나는 음악을 꿈꾸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음악적 정체성이나 가치관을 구축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1985년 호기롭게 한양대학교 작곡과에 입학했지만 나는 한동안 방황했다. 클래식을 공부하면서도 내가 하고 싶고, 잘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찾는 사색의 시간이 이어졌다. 나에겐 계기가 필요했다. 어영부영 2년을 보내고 난 어느 날, 카세트 테이프 하나가 손에 들어왔다. 가수 유재하의 솔로 1집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다.

아기 새가 알을 깨고 나와 처음 어미 새를 보는 느낌이 이랬을까. 벼락을 맞은 듯 전율이 느껴졌다. 오케스트라 연주에 팝적인 요소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메이저 발라드였다. 목관 5중주의 연주가 입혀진 ‘가리워진 길’, 보사노바 재즈 스타일의 ‘우울한 편지’, 미디엄 템포에 화음을 활용한 ‘지난날’까지. 사랑하는 이에게 읊조리는 고백곡 ‘사랑하기 때문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날부터 나는 그 앨범을 끼고 살았다.

유재하 앨범에는 그동안 한국 가요에서 볼 수 없던 구성이 곡곡마다 녹아있었다. 단어 사이사이 자유롭게 코드를 변형하고 독특한 변조를 선보였지만, 과하지 않게 아름다운 소리를 완성했다. 가사의 감성도 남달랐다. ‘하얗게 부서지는 꽃가루 되어/ 그대 꽃 위에 앉고 싶어라’(‘그대 내 품에’)라는 시적인 표현부터,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 내 모든 것 드릴 테요’(‘사랑하기 때문에’)라는 구어체 가사까지 짙은 서정미가 느껴졌다.

영화도 야한 장면만 반복되면 질린다. 화면 구성의 강약 조절과 감정의 포인트가 있어야 전개가 흥미진진하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 처절한 슬픔을 드러내면 자극에 무뎌져 오히려 슬픔이 반감된다. 돌아서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낭만적인 슬픔, 유재하 음악에는 그런 정서가 있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관념적이지도 않다. 이야기하는 상황과 시간대 설정이 명확하게 그려지는 가사다. 멜로디와 노랫말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로 맞물리면서 비로소 한 폭의 수채화가 완성됐다. 원곡에서 음을 하나 뺀다든가, 낱말 하나를 바꿔도 그 곡은 이상해질 것 같았다. 거기에 작곡·작사·편곡까지 작업 대부분을 혼자 진행했다니 그 음악성을 내가 어찌 평가할 수 있으랴.

가수 유재하의 솔로 1집 앨범은 1987년 발표됐으나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다. 프로듀서 김형석은 그 이유를 고급스러운 편곡과 세련된 작사의 힘으로 봤다. 씨앤엘뮤직 제공
가수 유재하의 솔로 1집 앨범은 1987년 발표됐으나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다. 프로듀서 김형석은 그 이유를 고급스러운 편곡과 세련된 작사의 힘으로 봤다. 씨앤엘뮤직 제공

대중음악을 공부해야겠다 생각한 것도 이때쯤이다. 이 음악 저 음악을 듣다 보니 내가 리듬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펑키, 보사노바, 삼바, 디스코의 다양한 리듬을 클래식 수업에서는 들을 수가 없었다. 아르바이트로 김건모, 박미경, 솔리드 등 가수들의 세션을 해주며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1989년 발표한 나의 데뷔작인, 가수 김광석의 ‘너에게’에는 유재하에게서 받은 내 음악적 정체성이 집약돼 있다. 클래식한 피아노 반주에 드럼 소리를 입혔고 ‘나의 하늘을 본 적이 있을까/ 조각구름과 빛나는 별들이/ 끝없이 펼쳐 있는’이라는 시적 표현으로 가사의 아름다움을 살리려 했다.

이후에도 줄곧 내 음악에는 유재하가 담겼다. 솔리드 ‘이 밤의 끝을 잡고’ 박진영 ‘너의 뒤에서’ 박정현 ‘편지할게요’ 성시경 ‘내게 오는 길’ 등 30여 년간 발표한 1,000곡 이상의 작품 모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발표한 세월호 참사 추모곡 ‘그리움 만진다’에도 유재하는 녹아있다. 직설적으로 슬픔을 드러내기보다 이별 속에 남겨진 아름다운 추억을 그리고 싶었다. 요즘엔 음악이 의상, 헤어, 퍼포먼스, 마케팅까지 전반적인 콘텐츠를 포괄하지만, 가요의 미학을 음악 자체에서 찾았던 이전으로 돌아가 보고자 했다. 트렌드에 맞춘 소리를 만들기보다 내가 가진 느낌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에, 음원 수익에 관해 묻는다면 확실하게 답을 못하겠다.

1970~80년대 한국 발라드는 기타로 연주하는 포크 음악이 대부분이었고 마이너 요소가 강한 장르로 취급 받았다. 그러나 유재하가 실험적인 편곡에 사랑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세련되면서도 우리의 정서가 담긴 한국형 팝 발라드가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솔리드, 김동률, 이적, 신승훈 등 이후 등장한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유재하의 음악을 모태로 변형하고 가감하는 과정을 통해 명곡들을 쏟아냈다.

나는 발라드를 노래한 음악가 중 유재하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들이 없다고 단언한다. 1990년대를 지나, 전자음악과 인디 음악이 성행하는 지금도 많은 싱어송라이터들이 그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는다. 종종 대학교 강의를 나가면 20대의 젊은 친구들이 유재하의 음악을 듣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악기 구성과 편곡이 세련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는 매년 열리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젊은 친구들의 참신한 음악에서 유재하의 정서를 발견할 때, 짜릿한 희열마저 느껴진다.

유재하는 학과 4년 선배였는데, 당시 나에겐 그 4년이 크게 느껴졌다. 학교를 다니면서 2~3번 정도 만났지만 ‘대선배’라 개인적으로 친해지지는 못했다. 만나서는 계속 음악 얘기만 나눴다. 그가 기타 코드를 잡으면 “그래 맞아, 이 소리였어”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나는 지금도 그때 왜 유재하를 귀찮게 하지 못했을까 후회가 된다. 그렇게 빨리 질 줄 알았다면 좀 더 그를 붙들고 음악에 대한 견해를 나눴을 텐데. 아쉬움은 남았지만 영원히 살아있는 비틀스의 음악처럼, 유재하는 앞으로도 나와 후배 음악가들의 작품 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음악 프로듀서 겸 작곡가 김형석의 말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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