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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09 14:10
수정 : 2015.06.10 14:25

[이정모 칼럼] 햇볕과 정면으로 맞서는 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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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09 14:10
수정 : 2015.06.10 14:25

햇볕과맞서는낙타삽화

두툼한 입술, 요염한 콧구멍, 그리고 슬픔에 잠긴 듯한 눈망울을 가진 낙타의 고향은 놀랍게도 북아메리카다.

공룡이 멸종하고 2,000만년이 지난 후인 4,500만년 전 낙타의 먼 조상이 북아메리카에 등장했다. 처음엔 토끼만 한 크기의 동물이었다. 1,000만년이 지나자 염소만 한 크기로 성장했다. 이들은 계속 북아메리카에만 살았다.

하지만 고향에서의 삶이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몸집이 커다란 동물들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몸집을 더 키워야 했다. 340만년 전에는 덩치가 요즘 낙타보다 30%나 더 커졌다. 발에서 어깨까지 높이가 2.7m나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몸집을 더 키우는 데는 실패했다. 이제 남은 길은 두 가지뿐이다. 몸집을 줄여서 납작하게 엎드려 살든지 아니면 미련 없이 보금자리를 떠나든지.

낙타는 추운 북쪽 지방으로 점점 밀려났다. 추운 지역에 살기 좋게 굵은 털이 몸을 덮었고 발바닥은 넓적해져서 눈에 잘 빠지지 않았다. 또 등에 혹을 만들어서 지방을 갈무리했다. 낙타는 혹 속의 지방을 분해해서 양분으로 쓴다. 이때 지방이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해서 물을 만든다. 몸을 바꾸어도 살 수 있는 터전은 점차 좁아졌다.

마침 180만년 전 빙하기가 시작되었다. 빙하기의 영향으로 알래스카와 시베리아 사이의 베링해협이 육지로 연결되자 낙타는 북아메리카를 벗어나 시베리아를 거쳐 아시아로 이동했다. 빙하기가 끝난 후 북아메리카에는 단 한 마리의 낙타도 남지 않은 것을 보면 이것은 확실히 좋은 선택이었다.

아시아로 이동한 낙타는 두 종류로 분화되었다. 단봉낙타는 중동을 거쳐 아프리카에 정착했고, 아시아 초원에 머문 낙타는 쌍봉낙타로 진화했다. 북아메리카를 탈출했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라고 해서 만만하지가 않았다. 결국 낙타들은 포식자들이 더 이상 쫓아올 수 없는 사막을 선택했다.

추운 숲에 적응한 몸은 사막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두꺼운 털은 햇빛을 반사하고 뜨거운 사막 모래에서 올라오는 열을 차단했다. 단봉낙타의 넓고 평평한 발바닥은 모래 속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그리고 등에 달린 혹은 사막에서도 양분과 물의 저장소 역할을 했다.

낙타는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전세계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동물이 되었다. 나도 작년 여름 고비사막에서 쌍봉낙타를 껴안고 사진을 찍고 낙타젖 치즈를 사흘 동안이나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음을 고백한다. 영화 ‘쥬라기공원’에 나오는 공룡 티라노사우루스가 포효하는 소리의 실제 주인공인 고비사막의 쌍봉낙타를 만나자 흥분해서 저지른 일이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낙타가 이제는 멀리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바로 메르스 때문이다. 메르스가 퍼지자 당국은 낙타를 멀리하고 낙타젖을 먹지 말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덕분에 서울대공원의 단봉낙타와 쌍봉낙타가 지난 2일부터 4일 동안 자택격리 되기도 했다. 이 낙타들은 중동에 가 본 적도 없지만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영향인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도 혹시 낙타가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왔다. 없다. 있어도 죽은 지 오래된 박제일 뿐인데 그걸 왜 걱정한단 말인가. 도대체 메르스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을 만한 낙타를 가까이 하거나 익히지 않은 낙타젖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우리나라 어디에 있기나 한지 알고 싶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난 까닭이 뭘까? 전염병 그것도 새로운 전염병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초기에 막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때 기본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투명한 정보가 없으면 괴담이 퍼지는 법이다. 전염병을 통제할 컨트롤타워가 없었다. 지난 8일 청와대는 자기네가 메르스 사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친절하게 발표했다. 굳이 발표하지 않아도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작년 세월호 침몰 사고 때 청와대 스스로 자신은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발표하던 장면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시민들은 메르스 사태 정도는 청와대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극복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대통령은 메르스 사태를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외교 행보에 전력하시기 바란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메르스는 전염력도 약하고 치사율도 상대적으로 낮은 신종 독감일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퍼진 게 메르스가 아니라 탄저균이었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도 한가하게 나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면피할 생각인가?

땡볕에 쉴 만한 그늘도 없을 때 낙타는 오히려 얼굴을 햇볕 쪽으로 마주 향한다.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의 저자 최형선은 그 이유를 햇볕을 피하려 등을 돌리면 몸통의 넓은 부위가 뜨거워져 화끈거리지만 마주 보면 얼굴은 햇볕을 받더라도 몸통 부위에는 그늘이 만들어져서 어려움이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도자가 최소한 낙타 정도의 지혜와 책임감을 갖추기를 기대하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일까?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이정모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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